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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l 12. 2019

[쓰기 12일] 단상

[쓰기 12일]




시차 덕분에 매번 오늘이 몇 번째 글쓰기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면 달력을 본다. 보름 작가님의 선견지명으로  날짜 그대로 제목을 적으면 된다. 다행이다. 다른 분들과는 달리, 쓰기 그 이외의 어떤 주제를 정하지 않아서 글쓰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쓰기가 반복될수록 의미 없는 것을 적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 섬세하게 주제를 정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힘을 뺀 글쓰기 자체는 좋은데, 뭐랄까 조금 결이 다른 글들을 보면 정리해서 하나의 이름 아래 묶고 싶다는 충동이 자주 든다. 

나는 정리벽이 좀 있다. 






한국에서나 타지에서나, 카페에 가서 사람 구경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드문 것 같다. 

한국에서 역시, 이건 한국인이다 싶은 점들이 있는 것처럼, 더치(네덜란드 사람)들도 더치의 특징이 있다. 이건 뭐라 말로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여튼 그런 것이 있다. (하하하...)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눈 파랗고 금발이면 전부 '서양인'의 느낌이겠지만, 유럽에서 살다 보면 북미와 유럽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고, 또 유럽 안에서도 북쪽에 가까운지 남쪽에 가까운지, 서유럽에 속하는지 동유럽에 속하는지에 따라 다른 점이 많이 있다. 개중에 가장 딱 붙어있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만 하더라도 상당히 (실은 완전) 다르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벨기에는 프랑스를 닮았고 네덜란드는 독일을 더 닮았다. 벨기에 음식은 프랑스 음식처럼 맛있고, 분위기가 훨씬 더 자유분방한 느낌이라면, 네덜란드는 독일처럼 모든 것들이 다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고 사람들이 키가 크다. 아,, 겨우 이렇게 밖에 설명을 못하다니.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것들이 많지만, 진짜 살아보면 느낌적 느낌(?)이라는 게 있는데. 



오늘은 빛이 좋았고, 이렇게 가끔 빛이 좋은 날엔 세상 온갖 더치들이 전부 카페나 레스토랑, 바의 테라스에 모여 먹고 마시고 떠든다. 이게 한국인들의 먹고 마시고와는 조금 다른 느낌인데,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그런데 또 내가 더치(언어)를 완전히 이해해도 그렇게 느껴질까 싶기도 하다. 애초에 환경과 문화가 달라서 그렇지, 삶 자체는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비슷하기도 하니까. 아직은 제3의 언어는 아무리 들어봤자 나에게 그저 느낌만을 전하는 음성모음일 뿐이다. 



구경하면서 하는 생각과 감각들을 전부 적어 내려갔다면 섬세한 글이 되었겠지만, 멍 때리고 바라만 보는 시간도 중요하기에 그렇게까지 나를 구속하고 싶지 않아서 오늘은 이것으로 끝. 다만 매일 보고 듣는 것들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더 이상 새롭지 않다고 느껴질 때면 처음 이곳에 도착했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유럽에서 살고 있다니! 숨만 쉬어도 공기가 새로운 것 같고, 인생에 더 이상의 염원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세상에 파라다이스는 없다는 것을. -벌써 두 번째 깨달음인데, 물론 그 당시 깨달았다고 해서 그 깨달음이 천년만년 가는 것은 아니다. 후후.- 다만, 그것을 직접 경험하고 느껴 보았기 때문에 적어도 남은 평생, 그 당시에 헬조선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유럽에 가서 살아보는 꿈을 이뤄보지 못하다니! 하고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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