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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Jul 17. 2019

[드로잉 17일] 실력에 맞게 욕심도 알맞게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구청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배운다. 수다에 약한 엄마는 세 시간 동안 말없이 그림만 그린다는데, 입을 꾹 닫는 대신 귀는 활짝 열어 놓는지 엄마는 문화센터에 갔다 오면 거기서 들은 이야기나 대화를 한 두 개씩 들려주곤 한다. 얼마 전엔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신경전이 있었다고 했다.


수업에서 선생님이 주로 하는 일은 붓을 들고 다니며 학생들 그림을 수정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엄마 말로는 선생님이 들고 다니는 붓이 손바닥만 하단다(그럴 리가!). 그 큰 붓으로 물감을 대충 척척 묻히고 스케치북에 역시 대충 척척 덧칠을 해주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덧칠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살아난다는 이야기. 괜히 선생을 하는 게 아니라고 엄마는 말했다.


그 선생님의 단점을 굳이 하나 찾자면, 짜증이 잦다는 것. 뭔가 마음에 안 들면 "그걸 그렇게 그리면 어떻게 해요! 그럴 거면 나오지 마세요!"라고 학생에게 짜증을 확 낸단다. 요즘이 어느 땐데 그렇게 마음껏 짜증을 부리는 선생이 있을까 싶지만, 그 선생님은 실제 존재하는 분이니,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대신, 울 엄마한테는 부디 짜증을 내지 마시길!


얼마 전에도 선생님이 학생에게 짜증을 확 부렸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학생의 짜증이 앞섰다는 것이 달랐다. 선생님이 그 큰 붓으로 학생 그림을 수정해줬는데, 학생 입장에서는 그 덧칠에 마음이 많이 상한 모양이었다. 집에서 심혈을 기울여 그려온 그 그림엔 학생 나름의 철학과 가치관이 새겨져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 고귀한 이상을 망쳐버렸다 생각했나보다. 그러자 학생은 선생님에게 거길 그렇게 칠하면 어떡하느냐고 신경질을 확 부렸고, 학생이 선생님에게 신경질을 부리니 선생님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렇게 쏘아붙였다는 거였다.


완벽한 그림이 그리고 싶으신 거예요? 완벽한 그림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지 알아요? 그림 몇 개 그린다고 그게 될 줄 알아요? 수십 개 그림을 그리고 그려야 좋은 그림 하나 나오는 거예요. 지금은 배우는 단계예요. 그림 하나하나에 너무 안달하지 말라는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그릴 거잖아요. 완벽은 더 뒤에, 더 뒤에 바라세요.


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그 학생이 참 무안했겠다 싶었지만, 한편 선생님 말이 맞다고도 생각했다. 그림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 하는 자세는 좋지만, 그 하나하나에 너무 안달을 하다 보면 괜한 집착만 생길 것 같았다. 어차피 즐기기 위해 배우는 거 집착길을 걷기보단, 여유길을 걷는 게 낫지 않을까. 여유 있는 태도로 시선은 저 멀리에 두고 눈 앞의 그림 즐기기. 실력에 맞게 욕심도 알맞게 키워가며 조금씩 완벽에 가까운 그림 그리기. 짜증 많은 선생님 덕에 미리부터 시선을 저 멀리에 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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