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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Jul 24. 2019

[드로잉 24일] 계속하는 것의 힘

지난주엔 수영장 에세이를 한 권 읽었다. 저자가 수영장에 다니면서 쓴 일지를 묶은 책이다. 올해 초에 쓰기 시작한 킥복싱 일지도 그렇고, 또 이번 달에 시작한 드로잉 일지도 그렇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싶어 읽은 책이었다. 단지 글 쓰는 기술(?)을 염탐하려고 읽은 책인데, 읽다 보니 기술이고 뭐고 나는 어느새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저자를 따라 수영을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나도 얼른 수영복을 마련해 몇 년 전 아침마다 수영을 배웠던 수영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워워, 나는 요즘 킥복싱을 련 중이니 샛길로 빠지면 안 되지.


물에 뜨지도 못했던 사람이 며칠간 유아풀에서 발차기 연습을 하고, 이어 간신히 자유형을 익인 후 뒤이어 배영, 평영, 접영까지 섭렵해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힘이 되는 이야기였다. 못하던 걸 하게 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냥 매일 아침에 수영장에 나가 코치님이 하라는 대로 발을 차고 팔을 뻗으면 될 뿐.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 이게 되네?' 하는 순간을 반복적으로 맞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수영장 이쪽에서 저쪽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물에 뜬 채 건너갈 수 있다. 몇 개월간의 꾸준한 훈련 끝에 이제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신도 믿지 않고, 운명도 믿지 않고, 텔레비전 속 연예인의 이미지도 믿지 않고, 자본주의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말도 믿지 않지만 '계속하는 것의 힘'은 믿는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하는 푸시업 20개의 힘을 믿고, 점심 식사 후에 하는 산책 30분의 힘을 믿고, 매주 3일 영어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의 힘을 믿고, 주말마다 카페에 나가 읽는 책 한 권의 힘을 믿는다(제가 이걸 다 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에요). 사실상 내가 믿고 의지할 것은 이것뿐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불안할 때면 뭐라도 하나를 시작해 그것을 계속해나가는 걸로 구멍 난 마음을 채우곤 다. 무언가를 규칙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서서히 진정되고는 했었다.


매일 20분 드로잉을 하다 보니 내 손 끝이 처음과 비교해 아주 조금 여유로워진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 그리면서 느꼈다. 예전보다 조금 더 수월하게 따라 그리게 된 것 같다고. 매일 20분이 24번 반복된 끝에 만들어낸 작은 변화다. 수영으로 치자면 난 이제껏 유아풀에서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던 것쯤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발차기를 하다가 문득 이젠 어떻게 발차기를 해야 하는지 뭔가 조금 감을 잡은 것 같은 그런 기분. 아직 코치님은 내게 유아풀에서 나오라고 허락해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금 신이 난 상태다. 이렇게 계속 발차기를 하다 보면 언젠가 유아풀을 벗어나 성인풀에 발을 담그게 될 테니까. 물론, 성인풀에 들어가도 얼마간은 발차기 연습을 계속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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