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를 거치며 누구도 내게 '형용사'를 배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8품사 가운데 '동사'가 으뜸이다, 문법은 '관계대명사'를 정복해야 한다,라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형용사만 보이면 무시하고 지나가기 바빴다.
그 결과 나처럼 국내에서 영어 교육을 착실히 받은 사람은 형용사의 중요성을 알 도리가 없다. 결국 내 입에 붙어있는 형용사는 고작 10개를 밑돈다. good, bad, easy, hard, difficult, tired, happy, fast, excited, interesting... (정말 그렇지 않은가?)
15년 차 영어강사인 나도 형용사에 눈을 뜬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동사에 관심이 쏠려 지나쳤거나, 내 감정을 묘사할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7년 차 강사가 되었을 무렵에 문득 형용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운명과도 같은 형용사를 만났기 때문이다.
만만해 보이는 형용사 'familiar'이다. 토익 500점, 수능 5등만 넘어도 누구나 아는 단어다. 우리말로 '익숙한, 친절한'이라고 외우고 있는 형용사인데, 영어 강사인 내겐 너무 쉬운 단어여서 굳이 사전을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마침 초급 학습자를 위한 영어 교재를 제작하던 중 familiar의 영영사전 정의를 찾아볼 기회가 생겼다. 나는 영어로 풀어봤자 'get used to something' 정도로 쓰여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to know something or someone well'이 떡하니 보였다. 뭐지? 내 입에 붙어있는 familiar는 "I'm not familiar with this area."뿐이었는데,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형용사 덕질을 시작했다. 우선 familiar가 쓰인 예문의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영영사전 10군데를 뒤지며 '형용사'의 예문을 수집하고, 미드와 영화를 볼 때 온통 '형용사'에 관심을 쏟았으며, 원어민 친구와 말할 때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형용사'를 쓰는지에 집중했다. 당시 형용사를 모았던 메모장을 보니 이런 예문들이 적혀있었다.
ex1) Sounds familiar?
ex2) That voice sounds familiar.
ex3) I’m pretty familiar with the staff.
위 문장에 '익숙한, 친숙한'이라고 끼워 넣어도 얼추 이해가 된다. 하지만 백지상태에서 스스로 familiar를 떠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하나씩 살펴보자.
1번 예문 'Sounds familiar?'부터 보자. 이런 상황에서 '친숙하게 들려?'라는 번역투 말 대신 '들어본 적 있지?, 남의 얘기 같지 않지?'가 머릿속에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2번 예문 'That voice sounds familiar.'도 마찬가지다. '그 목소리가 익숙해'도 나쁘지 않지만, '그 목소리 들어본 것 같아, 목소리가 귀에 익어'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3번 예문 'I’m pretty familiar with the staff.'도 역시 familiar의 핵심 뉘앙스인 'to know something or someone well'로 그쪽 직원을 잘 알고 있다는 뉘앙스로 쓴 문장이다.
내가 시도했던 방법을 간략히 요약하면, 영영사전과 구글링을 통해 형용사의 찐 뉘앙스를 파악했고, 이후에 사전, 미드, 영화 등에서 형용사가 들어간 문장을 모았고, 이걸 영어권 원어민에게 직접 써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렇게 형용사에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내가 그동안 형용사를 얼마나 소홀하게 대했는지 알게 됐다. 내가 얼마나 형용사의 애정이 없었는지... 형용사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형용사에 집착(?)하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다음 글에는 형용사를 배워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 5가지와 그 장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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