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라는 말에 묻어있는 특유의 모호함이 있다. ‘안다’라는 말이 ‘정도’를 포함하고 있지 않아서일까. 알긴 아는데 잘 알지 못하는 예도 있고, 잘 모르는데 알 것 같기도 한 사례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말을 사용할 때 이런 모호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대화 안에 맥락이 깔리고,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상 가능한 전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어로 소통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지난주에 분명 미드에서 봤던 표현인데, 며칠 전에 틀림없이 뉴스에서 밑줄 그은 단어인데, 오늘 아침에 내 입에서 직접 튀어나온 이디엄인데, 도통 ‘지금’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 자리에서 당장 뽑아 쓸 수 없는 표현, 단어, 이디엄을, 내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눈과 귀로 아는 단어일 뿐이다.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방대한 양의 노출이다. 쉽게 말해, 무수한 양을 읽고 들으면서 머릿속에 저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모국어를 익힌 방법과 같은 이치다. 생물학적인 부모가 아니어도 소위 ‘언어 부모(language parents)’가 옆에서 말하고 쓰면, 언어를 처음 배우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습득할 수 있다. 그렇게 머릿속에 언어를 넣는 인풋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계속 넣기만 하면 언제 입으로 빼낼 수 있을까?
생활영어는 가능하다. 반복되는 일상 대화 환경은 피할 수 없으므로 자연스레 체득된다. 하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긴 힘들다. 언어는 양방향 소통이다. 듣고 읽은 내용을 자기 입으로 아웃풋을 해야 한다. 아웃풋이란, 머릿속에 쌓인 언어를 손과 입으로 출력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를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 아웃풋을 이해하기 위해, 인풋이 아웃풋으로 바뀌는 과정을 쪼개어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자기 머리 탓할 시간에 해당 표현을 머릿속에 꾹 눌러 한 번 더 각인시키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
모든 정보는 ‘뇌’가 관장하겠지만, 나는 언어를 처리하는 과정을 편의상 눈, 귀, 입으로 분류하겠다. 영어에 ‘claustrophobia’란 단어가 있다. 우리말 뜻은 ‘밀실 공포증, 갇혀 있는 듯한 느낌, 폐소 공포증’ 쯤 된다. 발음하기 힘들고 철자도 어려운 이 단어를 아웃풋으로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눈’으로 자주 목격해야 한다. 미드 건, 뉴스건, 라디오 프로그램이건 상관없다. 좌우지간 눈으로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주 봐야 한다. 시쳇말로 ‘눈으로 찍어 발라 즉각 이해하는’ 정도로 노출해야 한다. 눈으로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를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한다? 기적을 바라는 편이 낫다.
다음은 ‘귀’로 이해하는 단어다. 다른 언어는 예외가 있겠지만, 영어는 철자대로 발음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 언어다. 받아쓰기를 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눈으로 분명 봤고 뜻도 정확히 아는 ‘쉬운 단어’인데 ‘귀’로 듣고 받아 적으면 안 들리는 단어가 있다. 단어와 소리를 연결하는 작업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또한, 연음도 한몫 거든다. 특정 발음 기호들이 연달아 나오면 혀와 구강구조가 그 단어들의 이음새를 발음하기 수월한 소리를 바꿔버린다. 결국, 입이 불편하지 않게 소리가 뭉치게 된다. 간혹 아나운서들이 모든 단어를 또박또박 말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 개별 단어의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되 그 이음새 발음까지 바르게 훈련한 결과다.
이제 최종 단계인 ‘입’이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 영어 ‘귀’만 뚫어도 상당한 영어실력을 갖춘 것이지만, 언어의 완성은 아웃풋에 달렸다. 눈과 귀에 대입했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오면, 아무리 눈에 익숙하고 귀에 꽂혀도, 반드시 입으로 꺼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아직 입으로 ‘아는’ 정도에 미치지 못한 결과다. 많이 보고 많이 들으면 자동으로 출력할 수 있으나 영어를 쓰지 않는 국내에서만 공부하는 처지라면 별도의 연습이 필요하다. 수시로 말해보고, 자주자주 써보고, 꾸준히 반복해야 한다. 10번 써본 걸 100번 써보고, 100번 써본 걸 1000번 써봐야 한다. 서서히 눈에서 귀로, 귀에서 입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경험할 것이다. 나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끝에 가면 ‘입에 붙은 영어, 믿을 만한 영어, 자기 영어’가 대기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