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해석이 없는 영어 자료를 접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모범 번역본과 자체 해석을 비교하기 전까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기분이다. 그러다 혼자 영어를 읽고 듣는 인풋 과정이 익숙지 않은 학습자는 벽에 부딪히고 만다. 영어를 접할 ‘가짓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말 번역이 없는 원서를 영어로 이해하기란 요원하고, 강사의 설명이 없는 영어 팟캐스트를 듣기란 아득하기만 하다. 인터넷에 콘텐츠가 넘쳐도 내가 고를 수 있는 자료는 한정돼 있다. 일상회화, 패턴, 문법을 다룬 종이책이나, 유튜브에서 배우는 오늘의 표현과 짤막한 문법 설명이 고작이다. 해석도 있고, 질리지도 않으며, 시의성 있는 영어 자료가 있을까.
한 번쯤 영화로 영어를 늘렸다는 소식을 들어봤을 것이다. 영화는 영어학습의 ‘보고’란 말도 있다. 내용도 알차고, 등장인물도 다양하며, 무엇보다 흥미 있는 소재를 다룬다. 게다가 특정 시점을 다룬 영화가 아닌 이상 모두 ‘일상생활 영어’가 담겨있다. 영어권 원어민의 자연스러운 영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다. 요새 넷플릭스, 아마존, 유튜브를 통해 한글/영어 자막과 함께 무제한으로 영화를 접할 수 있다. 잘만 활용하면 영어학습에 보물 같은 자료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평균 2시간이다. 아무리 흡입력 있는 영화도 ‘감상’이 아닌 ‘공부’로 접근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2시간이 20시간처럼 체감된다. 내용을 따라가며 영화를 즐기기보다 안 들리는 대사를 소위 ‘무한 반복’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테이크를 그렇게 접근하면 10분도 채 안 돼 지치기 십상이다. 또한, 강요와 재미는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억지로 영화를 반복하면 영화 속 멋진 역할의 주인공이 급기야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영화 플롯에 집중하긴커녕 저 배우는 왜 이렇게 말이 빠르냐며, 말투가 거슬린다며, 억양이 들쭉날쭉하다며 타박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이렇게 온전히 2시간을 집중할 수 있을까.
나는 본편이 아닌 예고편을 택하겠다. ‘영화 트레일러’야 말로 본편의 장점을 갖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일단 영화 트레일러는 짧다. 짧으면서 지루하기 쉽지 않다. 보통 2분 내외며 길어야 3분이다. 영어 공부라는 본 게임에 들어가기도 전에 2시간이라는 숫자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첫날은 동기가 충만해 넘어가더라도 이튿날부터 제동이 걸린다. 하지만 2분은 부담이 덜하다. 중간에 포기할 정도의 길이가 아니며 2분은 즐기기 적당한 분량이다. 내가 끌리는 3편의 예고편으로 영어 인풋을 늘려보자. 모두 합쳐 10분이면 넉넉하다.
영화 트레일러의 강점은 사실 길이가 아닌 ‘미끼’에 있다. 미끼가 갸우뚱하게 들리겠지만, 현실적인 영화 산업을 생각해보자. 수억, 수십억 예산을 들인 영화는 사력을 다해 홍보해야 한다. 특히 영화 예고편에는 사활을 건다. 목 좋은 대로변 전광판에 광고를 걸어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홍보 글을 올려도, 관객 대부분은 예고편을 보고 나서야 예매를 결정한다. 예고편에 ‘미끼’를 심어야 한다. 예고편은 본편을 뛰어넘는 수준의 재미를 담보해야 한다. 이것만큼 흥미진진한 인풋 자료가 있을까? 오늘부터 영화 예고편으로 인풋을 넣어보자.
아래 링크는 영화 예고편에 한글 자막은 달아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나도 즐겨 인풋을 넣었고, 수업시간에도 간간 활용했다. 적극 추천한다.
한반지 영화 예고편 처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