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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Jul 13. 2021

디지털 제품 디자인 시 가져야 할 윤리의식

우리는 무엇을 위해 디자인할까?

해당 아티클은 디자인 플랫폼 [노트폴리오]에서 열린 "우리는 무엇을 위해 디자인할까?" 세미나 발표 내용입니다. 목차 전반부는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디자이너가 알아야  인지적 취약점과 다크 패턴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이후 챕터는 디자인 윤리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자 했습니다.


목차

도구란 무엇일까?

파충류의 뇌

대표적인 인지적 취약점들

다크넛지 패턴

디자인 목표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을까?

윤리를 고려한 프로세스를 생각할 수 있을까?

KPI에 대한 맹목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도구란 무엇일까?

세미나를 앞두고 도구의 의미에 대해 궁금함이 생겼다. 검색창에 "도구"를 검색하니 생각보다 더 많은 검색 결과가 나왔다. 그중 나는 다음 정의가 마음에 들었다.

도구란 사용하고자 하는 주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존재 가치가 달라지는 것.


해당 정의에 따르면 도구에는 쓰임을 기다리는 수동성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말을 거는 도구를 도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위 이미지에는 두 가지 도구가 존재한다. 좌측 자전거는 주행을 위해 사람의 쓰임을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인테리어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와 관련 있다. 하지만 핸드폰은 어떨까? 이 도구는 쉴 틈 없이 알림과 푸시 메시지를 보내며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건다. 하지만 먼저 말을 거는 도구를 도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초기 인스타그램은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드는 필터를 입혀서", “업로드”하는 것이 기능의 전부였다. 하지만 현재 인스타그램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누가 누구와 사귀는지, 누구는 어디로 여행을 갔는지, 누구의 결별 사실까지 알 수 있다. 인스타그램은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전 트위터 제품 이사인 '제프 세버트(Jeff Seibert)'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온라인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은 감시되고, 추적되고, 측량됩니다. 무슨 이미지를 얼마나 오래 봤는지도 말이죠.


우리는 모바일 속 다양한 앱들을 도구라고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그 도구들에 의해 감시되고 또 추적당하고 있는 셈이다. 구글의 전 디자인 윤리학자였던 트리스탄 해리스는 지금의 시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술에 의해 인간성이 체크메이트 된 시대


트리스탄 해리스는 더불어 다음과 같은 부분에 대해 두려움을 표한다.

싱귤래리티와 취약성

보통 우리가 싱귤래리티(singularity) 즉, 기술적 특이점이라고 부르는 지점은 초록색에 해당한다. 전 인류의 지성을 합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 지능이 출현하는 시점이다. 다행히 아직 저 시기가 오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트리스탄 해리스는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시기보다 더 중요한 시점은 "기술이 인간의 취약성을 압도하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시점을 인류가 잘 넘기지 못한다면 인간성의 후퇴가 상당 부분 진행될 것이고, 그렇게 다운그레이드화 된 인간성으로는 초록색 부분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트리스탄 해리스가 말하는 시점은 이미 스마트폰의 출현과 함께 상당히 진행됐고 또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트리스탄 해리스가 말하는 "취약성"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파충류의 뇌

인류는 진화과정에서 자연스레 인지적 취약점들을 얻었다. 누군가는 진화과정에서의 상흔이라고도 말한다. 다음은 신경과학자 폴 뉴먼이 만든 삼위일체 뇌(Triune Brain)라는 모델이다.

폴 뉴먼이 만든 삼위일체 뇌 모델


폴 뉴먼은 우리 뇌를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눈다. 가장 아래는 우리의 본능이나 원초적 감각 등을 맡고 있는 파충류의 뇌다. 이 영역은 약 3억 년 전에 생성돼 원시 뇌라고도 불린다. 그 위에는 포유류의 뇌라고 불리는 영역이 있다. 이 영역은 슬픔이나 분노, 즐거움 등의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가장 상단에는 영장류의 뇌라고 불리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영역은 복잡한 추론이나 이성적인 판단 등을 내린다. 우리의 하루는 이 세 영역이 부대끼며 내린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이 세 영역이 공평하게 의견을 내느냐. 그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 내리는 하루의 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80~90% 정도를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가 맡고 있다. 인지 과학자 개리 마커스의 저서 '클루지'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나눈다.

자동 시스템 VS 숙고 시스템


파충류의 뇌는 좌측 자동 시스템에 해당한다. 우리가 익숙한 길을 무의식적으로 걷거나, 귀여운 동물을 보면 반사적으로 웃음이 지어지는 등 우리의 본능적인 의식행위 대부분이 자동 시스템에 해당한다. 숙고 시스템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거나 토론에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등 우리의 의식행위 전반에 해당한다. 여기까지 듣다 보면 왠지 하루를 숙고 시스템으로 살아가는 게 더 이득일 거란 생각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뇌는 고민을 지독히 싫어하는 인지적 구두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가 만약 숙고 시스템으로 하루를 산다면 반나절도 못 가 금방 방전돼버리고 말 것이다. 웹과 모바일 사용성을 다루는 책인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 마"의 저자 스티브 크룩은 사용자가 웹사이트를 볼 때 읽는 것이 아니라 "훑는다"라고 표현한다. 우리 하루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고민하지 않고 버튼을 클릭하거나 웹 페이지의 문장 도입부만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티브 크룩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웹을 경험하는 순간은 일종의 오토파일럿(autopilot)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숙고 시스템이 아닌 자동 시스템과 관련이 깊고, 수많은 인지적 취약점들에 노출된 상태다.




대표적인 인지적 취약점들

지금부터는 대표적인 인지적 취약점들을 UX와 연결해서 살펴보겠다.


1) 간헐적 보상 심리

간헐적 보상 심리는 우리 뇌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인지적 취약점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험이 있다.

심리학자 프레드릭 스키너는 쥐가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자동으로 급여되는 "스키너 상자"를 고안해냈다. 스키너는 쥐의 선호도를 알아보기 위해 패턴을 두 가지로 나눠 분석한다. 분석 패턴은 다음과 같다.

1. 버튼을 누르는 데로 먹이가 나오는 상자
2. 버튼을 누르면 무작위로 먹이가 나오는 상자


모두의 예상을 깨고 쥐는 2번 케이스에서 미친 듯이 버튼을 눌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동일한 행동에 대해 지급되는 보상이 가변적일수록 그 대상이 더 중독적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간헐적 보상”이라고 한다. 슬롯머신은 이러한 심리를 잘 이용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간헐적 보상 심리가 잘 녹아있는 슬롯머신


한 통계에 따르면 슬롯머신이 한 해 거두는 수익은 미국 내 영화, 야구, 테마파크의 모든 수익을 합친 것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그리고 카지노 내 존재하는 다른 게임과 비교해도 약 4배 정도 높은 중독성을 가진다. 그런데 슬롯머신의 메커니즘과 매우 유사한 인터페이스가 존재한다. 바로 당겨서 새로고침(Pull to Refresh)이다.


당겨서 새로고침과 간헐적 보상 심리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 이메일까지 우리 일상에 널리 퍼져있는 이 인터페이스는 슬롯머신과 메커니즘이 거의 동일하다. 당겨서 새로 고칠 때 현재 보고 있는 피드가 랜덤 하게 바뀌는 느낌을 준다. 이는 슬롯머신과 같이 매우 중독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2) 정지신호의 부재

정지신호가 없는 것은 우리의 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음식 섭취 행동 전문가인 브라이언 완싱크 교수는 이와 관계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교수는 그룹을 두 개로 나눠 한 그룹에는 정량의 수프를 줘서 먹게 하고, 다른 한 그룹에는 바닥에 장치를 해서 수프가 줄어들면 자동으로 보충되는 형태로 실험을 개시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자동으로 수프가 보충되는 그룹이 약 73% 더 음식을 섭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지 신호의 부재는 더 많은 정보를 소비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정지신호가 없는 인터페이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자동 재생 기능


아마도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자동 재생 기능을 걸어놓고 시청을 하다 보면 세, 네 시간이 금방 증발해버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닥에 정지신호가 없는 무한 스크롤


과거에는 스크롤을 하다 보면 바닥에 "더 보기"버튼이 있었다. 콘텐츠를 더 보기 위해서는 버튼을 눌러 영역을 확장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바일 환경에서 스크롤 시 바닥에 더 보기 버튼이 없는 "무한 스크롤"이 인터페이스의 표준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무한 스크롤의 창시자인 아자 래스킨은 한 인터뷰에서 사용자의 원활한 경험을 위해 만든 무한 스크롤이 인류의 너무 많은 시간을 정크 콘텐츠와 광고를 보게 만든 것에 대한 책임감을 내비친다. 그는 현재 트리스탄 해리스와 함께 "Center For Human Techonology"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스크롤 시 바닥에 정지 신호를 복원하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3) FOMO(Fear of Missing Out)

포모라고 불리는 이 인지적 취약점은 어떤 경험이나 정보에서 나만 소외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다. 데이팅 앱 틴더(tinder)는 서비스 탈퇴 시 곧 만날지도 모를 운명에 대해 언급한다.

    아래는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트위터에 클럽하우스 출현 공지를 하는 모습이다. 일론 머스크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포모 마케팅을 가장 잘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4) 사회적 승인(Social Proof)

사회적 승인은 어떠한 의견에 대한 유효성을 군중 속에서 찾으려는 심리다. 아래는 한 웨딩 사이트에서 찾은 버튼 디자인이다. 만약 버튼 아래 문장이 없었다면 유저는 클릭을 보류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해당 서비스를 이미 사용해본 사람들의 구체적 수치를 보여줌으로써 유저로 하여금 “이 서비스는 쓸만하겠구나”라는 어림짐작(휴리스틱)을 주게 된다. 이 외에도 소셜 미디어에서 내가 업로드한 콘텐츠가 사람들의 라이크를 많이 받을 때의 기분이나 반대로 관심이 아예 없을 때의 박탈감 모두 사회적 승인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지적 취약점들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 않다. 인류가 진화과정을 겪으며 자연스레 얻은 상흔에 불과하다. 때문에 UX 설계 시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사용자의 고민을 대폭 줄여주기에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만약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 코로나 관련 공지로 사회적 승인 개념을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아래는 현재 페이스북 피드에서 제공하는 코로나 관련 링크 모습이다.

현재 페이스북 피드에서 제공하는 코로나 관련 링크 디자인


어째서인지 페이스북은 자사의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에 비해 이러한 사회적 차원의 정보 전달에 있어서는 인지 심리에 대한 고려가 다소 부족해 보인다. 다음은 내가 시도해 본 디자인이다.

친분이 높은 친구들이 집에 머무는 것을 보여준다.


코로나 시기 외출보다 집에 머무는 것을 독려하는 형태로 피드를 설계해보았다. 그리고 유저와 관계가 깊으면서 이미 집에 머물겠다고 한 친구들을 노출시키면서 소셜 프루프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배지를 부여한다.


만약 집에 머문다고 승낙한 사람에게는 위 이미지처럼 특별한 배지를 부여한다. 코로나 시기에 집에 머문다는 긍정적인 일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다크넛지 패턴

인지적 취약점을 영리적인 목적만을 위해 악용한 사례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를 다크넛지 패턴 혹은 다크 패턴이라고 한다. 지금부터는 대표적인 다크 패턴 등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위장 광고(Disguised Ads)

대표적인 다크 패턴으로 콘텐츠나 내비게이션으로 위장한 광고를 뜻한다.


미끼와 스위치(Bait and Switch)

사용자가 의도를 가지고 어떤 옵션을 선택하려 하지만 의도와 다른 일이 발생한다. 아래 예시는 업데이트를 나중에 하기 위해 X 버튼을 클릭했는데 의도치 않게 업데이트가 시작해버린 경우다.


부끄러운 선택(Confirshaming)

사용자에게 특정 선택에 한해 부끄러움을 심어 주는 다크 패턴이다. 아래는 웹에서 수집한 팝업인데, 유저는 5,000원 할인 쿠폰을 받고 싶지 않아 버튼을 누르려고 하자 전액 다내는 걸 선호하는 바보가 되어버리는 경우다.

비용 숨기기(Hidden Cost)

실제 지불할 가격이 광고된 가격이나 최초 과정에 비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를 말한다. 여행이나 숙박 관련 서비스에서 종종 보인다.

친구 스팸(Friend Spam)

이메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크 패턴. 친구가 나를 특정 서비스에 초대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인데 클릭하면 엉뚱한 곳으로 링크되어버린다.

개인정보 쥬커링(Privacy zuckering)

이름에서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의 이름에서 기인한 다크 패턴이다. 서비스를 사용하다 보면 정보 공유에 동의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해당 다크 패턴은 약관을 읽기 위해 자세히 알아보기를 클릭하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약관으로 이동한다. 유저는 약관의 방대함에 질려 그냥 '네'버튼을 클릭하지만 예상과 달리 너무 많은 양의 개인 정보가 공유돼버린다. 저커버그는 실제로 이러한 다크 패턴 때문에 법정에 선적이 있다.

로치 모텔(Roach Motel)

바퀴벌레를 잡기 위한 트랩이라는 뜻이다. 아래 예시처럼 서비스에 들어가긴 쉽지만 탈퇴가 매우 복잡하게 되어있는 경우를 말한다.

트릭 질문(Trick Question)

의도적으로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방식으로 UX 라이팅이 작성된 다크 패턴을 말한다.



디자인 목표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는 디자인 윤리적으로 우리가 상상해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첫 번째는 "디자인 목표" 설정에 관한 것이다. 존과 낸시 이야기로 시작해보겠다.

*해당 시나리오는 구글의 전 디자인 윤리학자인 트리스탄 해리스의 TED 강연에 나온 예시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음을 미리 알립니다.


존과 낸시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다.

낸시는 위 이미지처럼 갑자기 존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우리가 회사에서 매일 겪는 일상이다.



그런데 이 짧은 예시는 글로리아 마크라는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의 컴퓨터 과학부 부교수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협업한 연구한 사례 일부다. 이 연구는 업무 진행 시 동료의 방해로부터 집중력을 완벽히 회복하는 시간을 다루고 있다. 낸시가 존의 방해로부터 집중력을 완벽히 회복한 시간은 놀랍게도 "23분"이나 걸렸다. 문득 낸시가 사용한 채팅 인터페이스의 "디자인 목표"가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메시지를 보내기 쉽게 한다.

채팅 인터페이스를 아름답게 한다.


메시지를 보내기 쉽게 하거나 채팅 인터페이스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채팅을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고 했을 때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가 과연 저것이었을까? 나는 디자인 목표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싶어졌다. 낸시의 사례를 고려해 다시 생각해본 채팅앱의 디자인 목표는 다음과 같다.

서로를 배려한 최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한다

새로운 디자인 목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서로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새롭게 설정한 디자인 목표로 다시 인터페이스를 설계했다.


낸시는 다시 30분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디자인 목표로 설계된 인터페이스에는 집중하기 버튼이 존재한다. 버튼 클릭 시 집중 시간을 고를 수 있는 피커가 나온다. 낸시는 30분을 선택했고, 우측 화면처럼 안내가 나온다. 아주 중요한 메시지 외에는 화면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존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메시지를 낸시에게 보내려고 마음먹는다.

새로운 인터페이스에서는 한 사람이 집중모드일 때 상대에게 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내용일 수 있으니 가장 하단에 "정말 중요한 일인가요?"라는 버튼을 배치했다. 하지만 시각적 위계는 의도적으로 낮게 설정했다. 버튼 클릭 시 우측과 같은 안내 팝업이 나온다. 해당 팝업에서도 "나중에 보낼게요” 버튼의 *어포던스(Affordance)를 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버튼보다 높게 설정했다.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보다 집중하는 사람을 더 우선순위에 놓고 경험을 설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포던스(Affordance): 어떤 행동을 유도한다는 뜻으로 행동유도성이라고 한다.


연극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을 낯설게 보게 만드는 기법이 있다. 이를 "소격 효과"라고 한다. 새로운 디자인 목표에 맞게 수정한 인터페이스에서는 설계상 서로의 입장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인터페이스를 아름답게 만든다", "사용하기 쉽게 만든다", "구매를 유도한다"등 그간 내가 설정해온 디자인 목표들이 떠올랐다. 이러한 디자인 목표들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는데도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경향이 있다. 어떤 디자인 목표를 이루는 데는 무조건적인 편리함이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윤리를 고려한 프로세스를 넣을 수 있을까?

실무를 진행하다 보면 윤리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애매할 때가 많다. 하지만 디자인 프로세스에 윤리적인 측면을 고려할 수 있는 과정이 처음부터 포함된다면 어떨까? 이번 챕터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하는 윤리 원칙을 실행하는 팀 기반 활동인 "Judgement Call"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윤리 원칙을 실행하는 팀 기반 활동


Judgement Call은 TRPG 게임의 외형을 띄고 있어 심리적인 장벽을 낮춘다. 더불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관련 페이지에 가보면 Judgement Call에 사용되는 카드들을 출력할 수 있는 PDF를 제공하고 있어 접근성도 용이하다.

PDF 다운로드후 출력 후 컷팅하는 모습


이쯤에서 Judgement Call을 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파트너 이사인 미라 레인(Mira Lane)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해 관계자의 관점에서 서비스를 리뷰하기 위한 활동

미라 레인이 말하는 "이해 관계자"란 유저가 아니라 서비스에 영향받을 수 있는 다양한 사람을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뒤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걸로 하고 과정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가장 먼저 진행자를 설정한다. 진행자는 디자이너나 엔지니어처럼 자신의 고유 영역에 대한 전문성이 깊은 사람보다는 서비스나 프로덕트에 대해 두루 알고 있는 프로덕트 매니저나 프로덕트 오너가 하는 편이 유리하다. 게임은 1~10명의 플레이어가 참여할 수 있고, 시간은 정하기 나름이지만 60~90분 정도로 제한하는 것을 추천한다.

다음은 진행자가 제품 시나리오를 제작한다.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과 포함된 기능, 주로 사용되는 시기와 용도, 유용성 등을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제작한다.


Judgement Call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과정이다. 바로 이해 관계자(Stakeholder)의 확인이다. 예를 들어 배달 앱 서비스를 리뷰한다고 했을 때 이해 관계자는 주문자가 아니라 음식을 배달하는 "이동 근무자"나 "아파트 경비원"이 해당한다. 이해 관계자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좋은데 예를 들어 키오스크 관련 서비스를 리뷰한다고 했을 때 그냥 "노인"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눈이 불편한 노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


다음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미리 정해둔 6가지 윤리원칙을 확인한다. 해당 기술이나 서비스가 공정한가?, 개인정보나 보안에 사각이 있지는 않은가?, 기술이 신뢰할 만하고 투명한가?, 서비스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없는가?, 기술에 대해 사회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등을 중점적으로 리뷰한다.

위 이미지는 과거 내가 한 배달 플랫폼을 직접 Judgement Call 해본 과정의 일부다. 해당 플랫폼은 이동 근무자와 일거리를 단순 연결만 해주고 있었다. 이는 일자리의 유연성을 증가시켜 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해당 서비스의 이동 근무자 인터페이스 화면을 살펴보면 과도한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으로 인해 근무자 간의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었고, 실제로 근무자들의 위험이나 사고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참고로 우측의 "1"이라는 숫자는 등급 카드로 Judgement Call에는 총 1~5점까지 점수를 매길 수 있는데 5점은 매우 높음, 3점은 보통, 1점은 매우 낮음이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게임화라고도 부른다. 소비자 대상 웹이나 모바일 사이트 등 게임이 아닌 애플리케이션에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 기법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아래처럼 좋은 리뷰를 쓸 수 있는 팁도 제공하는데 꼭 Judgement Call이 아니라도 서비스 리뷰 시 참고할만하다.

최대한 내가 아닌 이해 관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기능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많은 고민 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서술하기


참여자들이 서비스에 대한 리뷰가 끝났다면 이제 진행자의 지시에 따라 토론을 할 시간이다. 여기서는 어떤 이해 관계자에 가장 큰 타격이 있을지, 어떤 기능이 핵심 문제일지, 잠재적이고 반복되는 문제는 없는지에 관해 논의한다. 만약 명확한 해결 방안이 떠오른다면 좋지만 꼭 해결책을 찾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해 관계자를 고려한 윤리적 프로세스를 거치며 다 함께 더 나은 서비스란 뭘까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KPI에 대한 맹목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당 챕터는 베를린 출신 디자이너 요하네스 이펜의 아티클을 바탕으로 쓰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흔히 "사용자 경험"이라고 불리는 용어는 도널드 노먼의 저서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에서 시작한다. UX라고 불리는 이 개념의 기본 콘셉트는 다음과 같다.

시각과 기능적인 측면을 넘어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할 때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집중해보자.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언듯 보면 복잡한 개념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것에서부터 가로막힌다. 바로 실무 용어이다. 실무에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다 보면 특정 어휘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 관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사용자(유저), 구독자, 방문자, 트래픽, 설치율, 리텐션...

이러한 용어들은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을 "독립된 목표를 가진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구독을 한 사람", "방문을 한 사람", "설치를 한 사람"처럼 사람에게 특정한 역할을 할당한다. 베를린 출신 디자이너 요하네스 이펜은 이러한 접근을 "고립되고 기울어진 세계관"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사용자라고 불리는 인위적인 집합을 개별적 목표를 가진 존재로 되돌리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관성적으로 사용하던 용어들의 대안을 찾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인다.


관점 전환하기(Switch Perspective)

우리는 고객이 프로덕트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동안에만 그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는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만약 고객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을 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 어떻게 될까? 요하네스 이펜은 관점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이 질문을 바꿔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 고객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대체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서비스가 고객의 일상적인 삶에 어떻게 통합되나요?
• 고객은 서비스를 통해 삶을 더 가치 있게 느끼게 되나요?
• 그리고 고객이 더 나은 삶을 계획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


KPI를 위한 디자인?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는 내가 만든 기능의 영향에 대해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가 영향을 주는 사람을 "사용자"라고 통칭해서 부른다. 사용자에게 하는 질문들은 대개 다음과 같다.

• 빨간색 버튼이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하나요?
• 세련된 모달 창을 통해 별 5개짜리 리뷰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나요?


이를 측정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핵심 성과 지표라고 불리는 KPI(Key Performance Indicator)이다. 여기에는 설치수, 일일 활성 사용자, 유지율 같은 수치가 들어간다. 3일 후 혹은 14일 동안 몇 명의 사용자가 다시 방문할까 같은 질문도 여기 포함된다. 물론 KPI는 사용자 경험과 디자인 변경이 미치는 영향을 측정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며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이 이러한 수치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큰 함정이 존재한다.

바로 KPI가 실제 성공 지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정확히 말하면 '성과 지표'로서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대부분은 이 수치가 비즈니스 목표와 동일시된다. 잘 디자인된 모달이 가져오는 많은 리뷰나 높은 클릭률을 부르는 버튼 등은 물론 가치가 없지 않지만,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변 50킬로 미터 남음"이라고 적힌 [고속도로 표지판]을 향해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해변"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표가 아니라 표지판을 향해 달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KPI 최적화는 도로에서 표지판에 얼마나 가까이 근접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좋은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을 판매하고,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부하거나 가입하게 하는 것은 결국 개별적인 사람들이 삶을 살아나가는 과정에 존재하고 그들의 행복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KPI는 여행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와 혼동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하네스 이펜은 설계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무엇이고 또 그들이 삶에서 어디로 향하는지를 조용히 응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계획은 무엇이고 또 목표는 무엇일까. 아마 친구와 더 나은 관계를 꿈꾸고 또 좋은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좋은 미래를 물려줄 수 있기를 원할 것이다.



'디지털 제품 디자인 시 가져야 할 윤리의식'(끝)


(참고자료 및 관련 자료)


[브라이언 완싱크 박사의 바닥이 없는 수프 실험]


[아자 래스킨: 무한 스크롤 관련 인터뷰]


[다크 패턴 관련 참고 자료]


[Judgement Call 설명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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