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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May 24. 2021

브런치로 셀프 브랜딩 시작하기

유튜브는 조금 부담스럽고

‘글이나 한 번 써볼까?’

제 브런치는 머릿속에 맴도는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됐어요. 하지만 회사 업무는 너무 많았고, 브런치에만 오롯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낸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어요. 가장 어려웠던 것은 주제를 잡는 거였어요. 가뜩이나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 따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저는 반쯤 포기 상태에서 제 하루를 관찰해보았어요. 프로덕트 디자이너인 제 일상은 크게 보면 '디자인'을 하는 것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업무 진행을 위한 리서치 시간과 그렇게 모인 자료,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재직 중인 회사 문화 등. 조금 달리 보니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글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잃어버린 글감을 찾아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저는 진행 중인 태스크가 끝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양손 가득 들려있는 느낌을 받아요. 바로 리서치 과정에서 생긴 자료 더미예요. 우리는 어떤 일을 완료하기 위해 열심히 레퍼런스를 찾고 관련 글들을 읽어보게 되죠. 과거의 저는 하나의 태스크가 종료되면 관련 자료들을 제대로 아카이브 해놓지 않았어요. 이렇게 수집된 자료들은 휘발성이 강한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자료들을 글감으로 바라보고 이리저리 구성해보니 전혀 새로운 방향의 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태스크가 끝나도 관련 자료들을 아카이브 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아래는 앱 내 결제 페이지 리디자인을 위해 당시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발행한 아티클이에요. 자연스레 구매 유도를 위한 심리학 자료나 관련 사례 등을 찾아보게 되었고, 얼마 안 가 꽤 방대한 자료를 모을 수 있었어요.

 

이 방식의 글쓰기에서 중요한 점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수집된 자료들 간의 숨은 연결고리를 파악해 보는 거였어요. 전혀 다른 맥락에 있던 문장들을 한 자리에 모은다고 바로 글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제가 발행한 [구매유도를 위한 심리학]이라는 아티클 도입부에 있는 '카너먼과 트버스키 실험'은 우리 생각이 누군가 미리 짜 놓은 틀에 영향받는다는 '프레이밍’과 관련이 있어요. 그리고 ‘확실한 이득이 예상될 때는 긍정적 메시지가 효과적'이라는 내용이 나와요. 저는 이 내용 다음에 다른 맥락에서 수집된 실험 사례를 붙여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래 예시는 위키에서 수집한 스팸 메일을 막아주는 프로그램 판매와 관련된 A/B 테스트 사례예요.


대충 우측이 더 긍정형이라 구매 유도가 잘된다는 뜻

좌측은 프로그램이 전체 메일 중 스팸의 4%만을 막아준다고 했고, 우측은 내 파일 96%가 스팸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했어요. 같은 내용이지만 우측이 더 긍정형이에요. 이는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말하는 긍정형 프레이밍 효과와 관련 있다고 생각했어요. 앞 뒤로 연결해보니 신기하게 말이 되었어요.

     이처럼 서로 다른 맥락에서 수집된 정보들의 순서를 어떻게 배치하냐에 따라 다양한 주제를 만들 수 있어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은 글쓴이의 관점이 되겠죠.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말하는 방식은 특히 에세이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워요. 대신 객관적인 정보를 다루는 전문 분야의 글쓰기에는 활용할 수 있겠죠. 자신이 현재 일하고 있는 분야의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데,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나쁘지 않은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요.

 


지옥에 이르는 길은 부사로 포장되어 있다

'지옥에 이르는 길은 부사로 포장되어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adverbs)' 공포 소설의 대가 스티브 킹이 작가 지망생을 위해 쓴 말이에요. 글쓰기에서 부사는 군더더기니 모조리 걷어내라는 뜻이죠. 생각보다 이 방법은 빠른 시간에 글을 좋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저희같이 전문 라이터가 아닌 사람들에 한해서는요. 예를 들어 볼게요.

    일상에서 '너무'는 습관처럼 사용되는 부사 중 하나죠. '이 음식 너무 맛있다', '이 음악 너무 좋다', ‘색이 너무 예뻐요.'

    사실 너무에는 '지나치다'는 부정적 어감이 포함되어있어요. 이 경우 '정말'을 사용하는 것이 맞죠. 하지만 많은 경우 부사를 빼도 의미 전달에 크게 문제가 없어요. 따라서 글을 쓸 때 첫 번째 할 일은 '너무', '매우', '우아한', '사랑스러운' 같은 형용사와 부사를 문장에서 추방해버리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주어와 서술어 간격이 더 붙게 되어 문장에 힘이 실리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디자인은 회사에 매우 좋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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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붉은색 버튼은 구매 유도에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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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과 관련 있는 채널 찾아 공유하기

브런치에 드디어 힘겹게 글을 올렸어요. 그 후에는 내 글을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게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해요. 저는 브런치에 업로드한 글의 특성상 이미지 중심의 인스타그램 보다는 페이스북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SNS를 안 하던 제가 페이스북에 가입하고 공유에 적합한 커뮤니티를 찾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페이스북에는 국내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커뮤니티가 많았고, 현재까지도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면 요약본과 링크를 각 채널에 공유하고 있어요. 이처럼 글을 쓴 후 자신의 상황과 글 주제에 적합한 플랫폼이나 커뮤니티를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발행한 글 중 하나의 데이터. 생각보다 브런치 유입외 검색이나 기타를 통해 유입되는 사람 수가 많다.


저는 공유 과정에서 브런치에서는 받을 수 없었던 피드백을 커뮤니티를 통해 받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글을 더 고도화할 수 있었어요. 브런치는 글 발행 뒤에도 수정이 쉽기 때문에, 너무 오래 고민한 뒤 글을 발행하는 것보다는 발행 후 피드백을 받으며 완성도를 높이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출퇴근 시 지하철 안이나,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 핸드폰으로 글을 수정했어요.



시각적으로 통일시켜 주기

공유를 위한 채널이 마련됐다면, 브런치와의 시각적 형식을 통일해 주는 것이 필요해요. 저는 여기서부터 셀프 브랜딩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채널(페이스북, 커리어리)에 시각적 형식 통일 시켜주기


브런치에서 시각적 형식을 통일시킬 수 있는 요소는 두 가지가 있어요. 바로 커버 이미지와 프로필 사진이에요. 저는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노란색으로 배경을 통일하고 누끼 컷으로 커버 이미지를 디자인했어요. 누군가에게 '아 그 노란 배경?' 정도로만 기억돼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죠. 이런 통일성을 얻기 위해서는 대단한 디자인 감각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스스로 지속할 수 있는 형식인지를 묻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주제에 맞는 이모지만 활용해 디자인할 수 있고, 흑백사진으로만 커버를 만들 수도 있겠죠. 여기에 정답은 없지만 시각적 통일성은 강력한 힘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꼭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하나의 디자인으로 두 형식에 최적화시키기


커버 이미지 제작 시 팁이 하나 있어요. 저는 브런치 메인 커버를 1600x570 px으로 먼저 디자인해요. 그리고 글 발행 후 자동으로 생성되는 우측 썸네일의 가로폭을 고려해 주제가 되는 누끼 이미지를 파란선 안으로 디자인했어요. 만약 누끼가 파란 선 바깥으로 나간다면 우측 썸네일에서 양 옆이 잘려 보기 싫게 되겠죠. 저는 이런 간단한 방식을 통해 통일성 있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어요.


다양한 채널에 하나의 프로필 사진으로 통일한다

    

다음은 프로필 사진이에요. 프로필의 경우 비용이 들더라도 스튜디오에서 공들여 촬영한 사진이 한 장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한 번 촬영해 놓으면 저처럼 디지털 풍화 작용이 올 정도로 많이 활용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다양한 채널에 통일하면 되는데, 간단한 것 같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프로필 사진이 제각각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채널별 프로필 사진 통일은 노력 대비 각인 효과가 강하기 때문에 셀프 브랜딩에 있어 추천하는 방법이에요.



1년만 버텨보기

저는 약 2년간 총 60개의 아티클을 브런치에서 발행했어요. 제가 브런치에 처음 글을 쓴 날짜는 2019년 2월 7일이에요. 이후 15번 글을 발행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브런치는 냉혹합니다 여러분!) 물론 공유나 좋아요 개수가 그 글의 훌륭함을 모두 대변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내 글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면 지속하기란 쉽지 않겠죠.

    그러다 아래 글이 운 좋게 디자이너들이 많이 보는 커뮤니티에 소개되면서 제 글 중 처음으로 공유수가 세 자리가 넘게 되었어요. 이 글이 작성된 날은 2019년 12월 18일이에요. 첫 글 발행으로부터 약 10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죠.

신기하게도 이후 발행 글들은 전과는 확연히 다른 데이터를 나타냈어요. 저는 이 한 번의 모멘텀이 브런치를 성장시키는데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당장 사람들이 많이 봐주지 않더라도 다양한 형식 실험을 해보며 1년 정도는 기다려보는 것을 추천해요. 내 관심사와 글의 완성도, 독자들의 수요, 그리고 브런치와 구글의 알고리즘이 일직선상에 설 때가 분명 올 거예요.



의외의 제안들

브런치는 다른 소셜 미디어에 비해 다양한 제안들이 오는 것 같아요. 구글 검색에 잘 잡힌다는 것과 출판/방송 관계자들이 많이 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중 가장 의외의 제안은 아래 이모지 관련 글에서부터 시작해요.

위 글은 코로나 전과 비교해 동료들의 채팅량과 감정 표현량이 급격히 줄자 슬랙 내 이모지 사용량을 늘린 회사 경험을 토대로 작성되었어요. 그런데 이 글이 발행되고 한참 뒤 EBS에서 연락이 왔어요.

EBS에서 신설된 '딩동댕 대학교'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모지가 가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심리적 측면'에 관해 디자이너로서 이야기해줄 수 있냐는 제안이었어요. 저는 흔쾌히 수락했고 결과적으로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어떤 날은 아래 글을 통해 제가 전문 UX 라이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업체에서 관련 강의 제안을 받기도 했어요. 물론 감사한 제안이었지만 저보다 해당 지식과 경험이 많은 분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거절했던 기억이 나요.


제가 운영 중인 디자인 윤리 커뮤니티도 아래 글 [구글의 디자인 윤리학자]에서부터 출발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관련 주제에 관심만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 글이 발행된 뒤 다양한 사람들의 격려와 메일을 받기 시작했어요. 저는 국내에 디자인 윤리 관련 정보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관련 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생각은 커뮤니티 운영으로 연결되었어요.

이후 약 반년 간 커뮤니티를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됐고, 또 다양한 것들을 배우게 됐어요. 이후 커뮤니티 멤버들과 함께 클럽하우스에서 세션을 열거나,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디자인 윤리 관련 연사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어요.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세션과, 디자인 스펙트럼 출현


그리고 브런치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꿈꾸는 출판 제안 역시 약 1년 전에 들어와 현재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책 쓰는 건 또 완전히 다른 영역인 것 같아요. 어렵고 힘들고 축축해요)

    브런치를 연재하며 겪은 다양한 경험과 기회들은 모두 ‘글이나 한 번 써볼까'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작게나마 한 발 내디뎌 보는 용기’인 것 같아요. 써놓고 보니 무척 진부하네요.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걸요. 만약 주저하는 분이 있다면 글의 힘을 믿고 한 발 내디뎌 보길 바라봅니다.



'브런치로 셀프 브랜딩 시작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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