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원인을 찾아서
나는 디자인에 설득력이 부족해 보일 때 종종 5 Whys(5 Why Analysis)를 떠올려본다. 이는 어떠한 문제 발생 시 해결 방안에 앞서 ‘근본 원인’을 추적해보는 방법론이다. '왜'에서 나온 답변에 다시 '왜'를 물으면 점점 더 근본적인 물음이 가능하다. 그런데 하나의 문제에 대해 5번 묻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예시를 살펴보자.
문제: 최근 준비된 시간보다 회의가 계속 지연된다.
1 WHY : 왜 회의가 길어졌을까?
- (원인) 회의와 관련 없는 내용이나 그때그때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너나 할 거 없이 말했다.
- (단기적 해결) 발언시간 타이머를 도입한다.
2 WHY : 왜 참여자들은 관련 없는 내용과 각자의 아이디어를 말했을까?
- (원인) 회의 전 어젠다에 대한 공통 인식이 부족했다.
- (단기적 해결) 회의 전 어젠다를 공유할 수 있는 미팅 노트를 도입한다.
3 WHY : 왜 회의 전 어젠다에 대한 공통 인식이 부족했을까?
- (원인) 회의 주체자가 미리 어젠다를 공지하지 못했다.
- (단기적 해결) 회의 전 미리 팀 채널에 미팅 노트를 공유한다.
많은 경우 3번째 물음까지 도달 후 '미팅 노트 도입'이라는 단기적 해결책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점에 찾은 원인이 근본 원인인지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
4 WHY : 왜 회의 주체자가 미리 참여자들에게 공지하지 못했을까?
- (원인) 최근 회의 주체자 'A'의 업무가 과부하돼 여유가 없었다.
- (단기적 해결) A의 업무량을 조율한다.
5 WHY: 왜 주체자 A의 업무가 과부하됐을까?
- (원인) 최근 팀원들의 잇따른 퇴사로 인해 업무량이 A에만 집중됐다.
- (근본적 해결) A의 업무를 팀원들이 함께 나눈다 or 팀원 충원 전까지 일정 부분을 외주화해 A의 회의 준비 시간을 확보한다.
위 예시처럼 회의가 길어진 표면적 이유는 관련 없는 내용이나 아이디어를 참여자 모두가 말해 시간을 낭비한 것이지만, 계속해서 물음을 던지다 보면 최근 팀원들의 잇따른 퇴사로 주체자 'A'에게 작업량이 집중돼 '회의 준비의 여유 없음'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 경우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면 A의 작업량을 부서 사람들이 나누거나, 새로운 팀원이 충원되기 전까지는 일부 작업물을 외주화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한 가지 현상(미팅이 길어진다)에서도 여러 개의 원인(어젠다 인식 부족, 업무 과부하)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이 개념은 일본의 '도요타 인더스트리' 창립자 '사키치 도요타'가 1930년대 개발했다. 특히 1970년대 인기를 얻었고 현재도 여전히 도요타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도요타는 문제 발생 시 '현장 확인'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회의실 책상에서 문제 발생의 원인을 파악하기보다, 해당 문제에 대해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직접 현장에서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요타의 철학은 문제 해결에도 효과적이지만 '같은 문제의 재발 방지' 측면이 강하다. 때문에 5 Whys는 '솔루션'이 아닌 '대책'을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뿌리가 있다.
아래는 과거 한 커머스를 대상으로 5 Whys를 적용해본 케이스 스터디의 일부분이다. 고객 리뷰와 사용성 테스트를 바탕으로 '상품 구매 과정에서 자주 멈추는 경험을 했다'라는 문제를 발견했다.
최초 질문인 '왜 자주 멈췄을까?'에 대한 원인으로 '상품 검색의 어려움'이 나왔다. 자연스레 검색 기능 강화와 검색 시 추천 기능 추가 등의 단기적인 해결방안이 나왔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일까라는 물음이 들었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보니 해당 서비스는 최근 상품 카테고리의 폭발적 증가로 검색바 활용률이 급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서비스 내 상품 카테고리가 적어 한눈에 파악돼 검색바 활용이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품 카테고리 증가로 인해 기존 UX로는 뎁스가 깊은 상품까지로의 진입이 쉽지가 않았다. 단기적 해결방안인 검색 기능 강화와 더불어, 카테고리가 확장된 현재(당시) 기준으로 전반적인 UX 재설계(근본 원인)가 절실했다.
커뮤니케이션 시 5 Whys는 대화를 깊은 단계로 이끄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래는 '센서티브'라는 책의 일부분이다.
만약 대화 상대가 피상적인 대화를 이어간다면, 그 대화의 주제에 대해 실제적인 질문을 하면 된다. 대화가 구체적인 내용으로 이어지면 상대방도 대화에 더 몰입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모두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 상대방이 "어떤 일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요?라고 대답하면 "어제 친구에게 전화해서 내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는 그 일에 전혀 관심이 없더라고요"하면서 구체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 뒤에는 다시 "왜 그 친구가 그 일에 관심이 없었을까요?"로 대화를 이어가 볼 수 있다. 이런 대화는 내가 무관심한 친구에게 느낀 감정을 다시 떠올리고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반화시키는 대화는 감정을 차단하지만, 구체적인 대화는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센서티브] 115p
센서티브의 저자 일자 샌드(ilse sand)는 대화의 깊이를 위한 물음은 추궁이 되어서는 안 되며 타인의 감정에 대한 존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실무에서는 케이스 스터디에서 활용한 '단일 레인'기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가 빈번히 발생한다. 한 가지 문제에 두 가지 이상의 원인이 존재할 때는 '다중 레인' 기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5 Whys를 바탕으로 인터페이스를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아래는 미국 메신저 서비스 'Snapchat'의 회원 가입 시 생일 선택 화면이다. 왜 디폴트 나이가 10대(2001년/좌측)로 지정돼 있을까? 이는 미국 젊은 층(13~24세) 90%가 스냅챗을 설치했고, 하루 평균 30회 Snapchat에 접속했기 때문이다. 만약 Date Picker의 디폴트가 엉뚱하게 1970년대에서 시작했다면, 안 그래도 참을성 없는 미국 10대들의 짜증을 유발했을 것이다.
의사결정에 있어 확률상 높은 쪽으로 인터페이스를 미리 결정해두면 유저의 고민을 줄일 수 있다. 아래는 미국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Cash App'이다. Cash App은 카드 발급 시 다수의 선호를 반영해 블랙 색상을 디폴트로 설정했다고 한다.(참고로 Cash App은 국내에는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다양한 예시를 바탕으로 '5 Whys' 기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분명 접근성이 좋은 개념이지만 특정 프레임 워크에 대한 신봉은 자칫 함정에 빠질 수 있으니 일정 거리를 두고 활용하는 편을 추천한다.
'5 whys로 디자인에 설득력 더하기' 끝
참고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