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탄 해리스와 디자인 윤리학
실리콘 밸리의 양심이라 불리는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3년간 구글의 디자인 윤리학자로 일했습니다. 스탠퍼드에서 행동경제학, 사회심리학 등을 연구한 그는 기술이 수십억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윤리적으로'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한 프레임 워크를 개발했습니다. 현재는 구글을 나와 ‘Center For Humane Technology’라는 비영리 단체를 조직해 활동 중입니다. 이 조직은 기술을 인간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해당 글은 트리스탄 해리스가 출현한 두 편의 TED 영상과 그의 미디엄 아티클 기반 위에서 작성됐음을 미리 알립니다. 링크는 글 하단에 남겨두었습니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두 편의 TED 강연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페이스북의 무한 피드부터 스냅챗의 SnapStreak, 유튜브 자동재생 기능 등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표했다. 이러한 UI 목적 대부분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경쟁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상에서 중독적 UI가 대중 심리를 자극해 잔존율을 높이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심리와 설득 전문가인 트리스탄 해리스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인간이 '쉽게 설득당하는 존재'라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페이스북 피드를 밑으로 당겨 새로운 뉴스가 없는지 확인한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이러한 새로고침(Pull to Refresh)과 슬롯머신 원리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여기에는 심리적 요인인 가변적 보상(Variable Reward)이 포함된다. 쉽게 말해 사용자의 간단한 행동(레버를 당기는 일)이 다양한 보상(새로운 피드)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보상이 가변적일수록 중독성은 극대화된다. 인스타그램의 무한 피드나 틴더의 좌/우 스와이프도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슬롯머신은 미국에서 야구, 영화 및 테마 파크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수익률을 내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도박보다 4배 더 중독성이 높다고 한다.
사용자의 긴 체류시간을 추구하는 앱일수록 제품 전반에 '가변적 보상'이 녹아들어 설계된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에도 슬롯머신 UI가 등장하는 것은 '관성’에 가깝다. 오늘날 많은 메일링 서비스가 새로운 메일을 보기 위한 UI로 슬롯머신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되지 못한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슬롯머신 대신 새로고침 하고 싶은 날짜를 미리 지정해 해당 시간을 설정하고, 새로운 메시지가 '배달되는 방식’의 UI를 제안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중요한 정보를 놓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진다. 소셜미디어를 탈퇴하기 어려운 마음 이면에는 '중요한 뉴스 기사를 놓치거나, 회사 동료들과 말하는데 뒤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1%의 두려움(Fear of Missing Something Important)이 녹아있는 셈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끝없이 팽창되는 속성이 있다. 데이팅 앱 사용자의 ‘언젠가 만날 수 있을 인연의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까'라는 불안감은 탈퇴율의 감소로 이어진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다시 질문한다.
'무언가를 놓칠 염려가 있는 순간을 사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 맞습니까?'
친구가 내 사진을 태그 했다는 메시지는 가장 거절하기 힘든 유혹 중 하나이다. 인간은 타인의 승인과 인정에 대해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기게끔 진화했기 때문이다. 과거 페이스북은 사진 속 얼굴을 자동 인식하여 태그 하는 기능을 개발했다. 이 방식으로 태그를 일일이 입력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고, 수억 명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통한 소셜 승인을 경험하는 중이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사회적 승인이 성인보다 청소년기에 훨씬 더 취약하다는 통계를 보탠다.
넷플릭스 디자인 다큐 'Abstract'의 이안 스폴터편에는 무한 스크롤을 디자인한 '에이자 래스킨'의 인터뷰가 짧게 등장한다. 그는 '스크롤하고 있다는 건 이미 화면을 더 보고 싶다는 증거인데, 굳이 더보기 버튼을 하단에 배치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과감히 화면에서 바닥과 버튼을 걷어내 버렸다. 에이자 래스킨의 가설은 적중했고, 무한 스크롤은 현대 UI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다큐 말미 그는 자신이 만든 UI에 강한 윤리적 경각심을 내비친다. 정지신호가 사라진 이 UI가 사람들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에이자 래스킨은 현재 트리스탄 해리스와 함께 ‘Center For Humane Technology’의 핵심 멤버로 활동 중이며, 정지신호를 복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몇 해 전 코넬 대학의 브라이언 완 싱크(Brian Wansink) 교수는 정지신호의 부재와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실험자에게 자동 보충되는 그릇에 수프를 담아 먹게 했다. 놀랍게도 실험자는 평소보다 73%가량 수프를 더 섭취하게 되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한 영상이 끝나면 카운트 다운 후 사용자의 의식적 선택을 기다리지 않고 다음 영상을 자동 재생한다. 현재 자동재생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트래픽 중 상당히 높은 부분을 차지한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뉴스피드에 의도적으로 스크롤을 복원하고, 스트리밍 시 자동 재생이 아닌 일시 중지를 기준으로 디자인하기를 권한다. 의도된 불편함을 제공해 선택의 권한을 사용자에게 이양하자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선택하고 있는 것들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예시로 채팅(문자 보내기)이 있다.
존과 낸시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다. 낸시는 서류를 작성 중이다. 갑자기 존은 낸시가 작성 중인 서류에 대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존은 낸시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낸시는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존의 메시지에 반사적으로 응답한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설문조사 내용 중 일부다. 내용에 의하면 낸시가 흐트러진 집중력을 다잡고 다시 업무로 집중하는 데 23분이 걸렸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3분 30초마다 스스로 자신을 방해한다고 한다. 이러한 집중력 분산은 개인의 안 좋은 습관으로 연결된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디자인적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아래 예시에서 낸시는(좌측) 서류 작업 중 30분 정도 집중하고 싶어 '포커스 모드'를 클릭했다. 이때 낸시에게 보낸 존의 메시지는 보류(Pending) 상태가 된다. 보류된 메시지는 30분 뒤에야 낸시에게 전달된다. 만약 존의 메시지가 긴급하다면 판단에 의해 'interrupt' 버튼을 누르고 낸시에게 바로 전달할 수도 있다.
그가 제시한 인터페이스는 낸시와 존에게 기존에 없던 감각들을 일깨운다. 평소 의식하지 않던 행동이 타인을 침해할 수 있는 요소로 시각화되는 것이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UI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가령 채팅 UI를 디자인할 때 보편적으로 세울 수 있는 목표는 '메시지를 간편하게 보낼 수 있는 디자인을 한다'정도가 있을 것이다.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잘 정리된 시각적 위계가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만약 디자인 목표가 '존과 낸시의 관계에서 가능한 최상의 인터렉션을 찾아보자'로 바뀌면 어떨까. 디자이너가 시간을 쏟아야 할 부분이 달라질지 모른다. 이처럼 트리스탄 해리스는 우리의 목표가 지금보다 조금 더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고 전한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기술이 인류의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니라, 잘 쓰게 하는 것(Time Well Spent)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크 저커버그는 이를 받아들여 2018년 1월 페이스북의 디자인 목표를 ‘Time Well Spent’로 지정했다. 2018년 5월 애플과 구글은 ‘Digital Well-being’을 중요한 디자인 의제로 채택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글들은 보통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시점’에 초점 맞춰져 있다. 하지만 트리스탄 해리스는 ‘기술이 인간의 취약점을 능가하는 시점'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 시점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이고, 많은 부분들은 이미 도착해있다.
기성세대가 스냅챗 세대를 이해하는 방식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문자 메시지에서 스냅챗으로의 기술발전은 단순한 매체 변화가 아니다. 전 세계 스냅챗 사용자 뒤에는 영리한 방식으로 UI를 설계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소수의 페이스북 직원들은 10억 명이 넘는 사용자 경험을 선택 설계한다. 소수가 절대적 다수의 행동 패턴을 조직하는 현재 같은 상황은 과거에는 볼 수 없던 특이한 지형이다.
트리스탄 해리스가 말하는 진정한 두려움은, 디자이너 스스로 결과물이 세계에 끼칠 파장을 예측할 수 없는 지점이다. 모든 것이 너무 과열됐다. 기업은 더 본능적인 것을 자극해 관심을 끌어야 한다. 당장 디자이너가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윤리적 경각심을 가지는 것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 같다.
다행히 자본은 선/악 구도가 아니다. 자본은 오직 팽창에만 관심이 있다. 때문에 기업은 언제든 대중의 수요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 만약 대중의 요구가 없었다면 맥도널드의 샐러드 메뉴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파타고니아가 버틸 수 있는 까닭도 브랜드와 환경을 연결 지을 수 있는 소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러쉬(Lush)가 오랫동안 동물실험을 반대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터페이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점점 더 다운그레이드화 되어가는 인간성의 회복은 핵문제나 환경오염보다 더 시급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문제의 중심에 디자이너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