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다크 모드를 좋아한다. 사실 눈이 편안하다던지 배터리가 절약되는 실용적 이유는 아니다. 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제한된 컬러 팔레트 안에서 디자이너가 배색을 하면 자연스레 화면이 미니멀해진다. 이러한 단순함에는 자유도가 있는 배색과는 다른 미적 지향이 깃든다. 사진을 보더라도 컬러 사진은 전체 색상과 빛에 집중되는 반면, 흑백 사진의 경우 피사체가 가진 오돌토돌한 질감에 더 눈길이 간다. 컬러가 시각적이라면 흑백은 촉각적이다. 이 때문인지 다크 모드일 경우 노멀 모드보다 콘텐츠 하나하나에 시선이 멈추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측면은 내 술자리 주장인데, 브랜드의 '흑화' 버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흑화라는 개념은 일본 아니메에서 자주 등장한다. 선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정신 붕괴를 겪고 나면 괜히 '크큭' 웃으면서 동공 크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노멀 버전에서 존재하지 않던 긍극의 기술들로 적을 순식간에 처리하고 '크큭' 웃는다. 옆에 있던 동료들은 저 새끼가 동료인지 나쁜 놈을 죽인 나쁜 놈인지 모르는 어색한 상황이 되고 만다.(아이돌에서는 소녀시대같이 밝은 이미지를 고수하던 그룹이 'Run Devil Run'같은 앨범을 들고 나오면서 뭔가를 바꾸려 할 때 팬들은 갈때가되었 흑화 되었다고 한다.)
'흑화'한다는 것은 원본이 보존되면서 잠시 왔다 갔다 하는 모드 전환에 가깝다. 흑화를 한 번 겪은 캐릭터는 정서적 토글 버튼이 생긴다. 기본적으로는 노멀 모드에 머무는 성향이 강하다.
사실상 애플이 ‘다크 모드'라는 개념을 설정하기 전에는, 한 브랜드가 인터페이스를 어두운 톤 앤 매너로 디자인한다는 것은 곧 '리브랜딩'을 뜻했다. 그것은 단순히 표면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방향성까지 존트큰일 바뀌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개념이 제시된 후 브랜드들은 사실상 어둡게 채색된 '브랜드 표면'을 '애플’을 경유해 추가할 좋은 구실이 생긴 셈이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브랜드에서 어두운 인터페이스가 제공되어도 바로 '리브랜딩'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크 모드가 브랜딩의 테스트 베드 역할로 기능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크 모드가 론칭되면 시장 피드백을 바탕으로 조심스레 브랜드 포지셔닝의 이동 가능성을 검토해볼 수 있다.(기본을 고급화로 가는 그런) 그런데 유독 다크 모드에 대한 논의가 기능(배터리 절감, 눈의 피로도 감소, 시안성 상승 등)에 한정되서만 이루어지는 것 같아 조금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것들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만들어 보는 것만큼 잘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내가 좋아하는 앱 몇 가지를 '임의로' 흑화 해보았다.(정확한 가이드를 지키면서 하진 않았기 때문에 디자인 디테일이 아주 떨어질 가능성 있습니다. 아니 떨어집니다. 그냥 개인이 스터디한 스케치북 정도로 면피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좌측이 현재 배달의 민족 메인 화면이고, 우측이 임의로 흑화 시켜 본 버전이다. 인터페이스를 어둡게 바꾸니, 배민의 키치함이 묻히는 것 같았다. 왜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문 듯, 배민의 톤 앤 매너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시각언어가(Visual Language)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키치한 일러스트를 타고 도는 굵은 아웃라인 이었다. 다크 모드가 되니 자연스레 검정 아웃라인이 옅어졌다. 디자인적으로는 기법이 약해진 것이지만 브랜딩 차원에서는 페르소나가 흔들려 보인다. 다크 모드 메뉴 영역을 조금 더 밝게 할 수도 있겠지만, 흰 배경만큼 아웃라인이 잘 살지는 않았다. 뭔가 키치 하긴 한데 엄숙한 브랜드가 된 것 같아 죄송했다. 에라 모르겠다 메인 배너에 있는 캐릭터 얼굴에 음영을 강하게 줘보니, 돈을 많이 조금 더 내면 배달이 30분 빨리 온다던지 하는 극한의 서비스가 제공될 것만 같았다.
개인적으로 국내 호텔 앱들 가운데 데일리호텔 디자인을 가장 좋아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이 브랜드 디자이너분들은 아이콘을 사뭇 진지하게 대하는 것 같다. 아이콘들이 하나같이 완성도가 있다. 콘텐츠 안에 녹아든 아이콘과 하단 내비게이션에 존재하는 아이콘 구별도 시각적으로 설득력이 있다.(콘텐츠 아이콘은 선, 하단 내비게이션 아이콘은 색면)
데일리호텔은 메인 배너 이미지 때문인지 다크 모드시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하게 덧입혀지는 것 같았다. 앞서 배민처럼 페르소나가 너무 강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크 모드는 브랜드를 조금은 경직되고급져 보이는 방향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저 가격에 ~가 의심스럽지만 다크 모드 UI라면 인터컨티넨탈 라운지 바에서 젓지 않고 흔든 마티니 한 잔 마실 의향이 생긴다.
에어비앤비가 한국에 상륙했을 당시, 각종 경제 관련 뉴스들에서 '국내 호텔산업이 전부 망할 것이다'라는 예측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몇 년 뒤 현재, 국내 주요 호텔 브랜드 매출/이익 그래프들을 살펴보면 지금이 전에 없던 호황임을 알 수 있다. 뉴스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그렇다. 호텔 갈 사람들은 호텔을 가고, 에어비앤비 갈 사람들은 에어비앤비에 간다. 애초부터 에어비앤비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감성적 측면의 고관여 상품인 '호텔'을 떠올리지 않는다. 에어비앤비에서는 호텔보다 저렴하지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경험'을 얻고자 한다. 예전에 홍콩 여행 중 묵었던 에어비앤비에서 타월이 없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호스트에게 문자를 했더니 실수라며 미안하다고 그냥 묵어줄 수 웨?없겠냐고 했다. 나는 별 말없이 ok 했고, 호스트의 티셔츠를 타월로 사용해버렸다.(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30만원 넘어가는 호텔에 묵으려 한다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
흑화된 에어비앤비에서는 실수할지 모르지만 자유분방한 페르소나가 흰바탕 일때보다 적게 느껴지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타깃 연령층도 올라가 보인다. 왠지 노멀 에어비앤비에서 취급하지 않는 럭셔리 숙박도 있을 것 같다. 인터페이스 톤 앤 매너만 떼놓고 봤을 때 '안전함'이나 '신뢰감'은 흰색 배경이었을 때 보다 더 올라가 보이는 것 같긴 하다.(어쨌든 예약을 한다는 것은 신뢰감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UI 형태나 레이아웃 때문인지 스트리밍서비스가 연상되기도 했다.
마켓 컬리는 강남 아줌마들의 팬덤이 만든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지금은 전지현이라는 빅모델을 기용해서 매스로 타겟팅을 옮긴 듯 보이지만, 초기 브랜딩이 구축될 때 쌓였던 프리미엄 DNA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큐레이션 되는 상품들이 조금 많이 쿠팡스러워지긴 했지만)
마켓 컬리 다크 모드를 만들어 놓고 보니 한 학기 내내 어두운 색상과 퍼플 계열이 만나면 고급스러운 배색이 된다고 강조하셨던 4학점 D+ 디자인 교수님 생각이 났다.
추석이나 설날 시즌에 컬리에 뙇 접속했는데, 극강으로 고-급스러워진 다크 모드 UI만 유저에게 강제 제공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어두운배경위로흐르는보라색설날패턴 근사할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그런 상상을 하는 내가 다소 위험해 보였다.
원티드는 뭔가 신비로운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분명 A라는 기업은 내가 알기로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었고, 그다지 호감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티드 리스트에 뜨니, 이내 뭔가 참신하고 젊은 기업일 것 같은 착시가 생겼다. 실제로 젊고 참신한 스타트업들이 원티드를 통해 공고를 많이 올렸고, 플랫폼과 함께 성장했던 부분이 원티드에게 긍정적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닌가 싶다. 사실 A잣같은 기업들이 원티드를 통해 젊은 이미지로 리브랜딩 하려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이를 브랜드의 플랫폼 세탁이라 부르고 싶다.)
원티드가 다크 모드화 되니 젊고 캐주얼한 느낌보다는 안정적이고 중후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 같았다.(개인적으로 원티드의 아이콘 스타일과 색상 때문인지 예전에 만든 삼성 사이트가 암울 떠오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원티드가 속한 비즈니스 영역에는 어두운 인터페이스가 기준인 경우를 못 본 것 같다. 이는 우리나라 채용 시장이나 업무환경이 내/외부에서 개혁의 압박을 꾸준히 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일반화 하긴 힘들지만 밝은 인터페이스가 어두운 것보다 더 유연한 사고방식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2019 스펙트럼콘 최대 수혜주가 토스였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디자이너가 있을까? 애플의 팀 쿡 애니모티콘이 스케치 화면 옆으로 소환될 때 뭔가 시대의 초침이 한 칸 옆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사람들도 웃고 화기애애한 상황이었는데 뭐랄까 약간 슬프기도 하고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원티드와 마찬가지로 포인트 컬러를 순색에 가까운 블루로 사용하는 브랜드는, 의지와 상관없이 젊은 이미지로 평가받기 쉽다. 원티드나 토스는 실제로도 젊고 혁신적인 브랜드라 그런지 몰라도, 인터페이스를 다크 하게 구성해놓으니 브랜드 정체성과 잘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노멀 모드의 매력적인 이면으로 비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금융 쪽도 어두운 컬러가 기본으로 브랜딩 된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다. 가뜩이나 공인인증서같이 장벽 많은 국내 뱅킹 시스템에, 심리적 문턱까지 높이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뭔가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면 탈잉에 접속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조금 덜 공식적으로 뭔가 배울 때 좋은 것 같다.
탈잉이 다크 모드화 되니 튜터들 경험치가 +10 정도 상승해 보였다. 그러한 측면이 완벽한 프로가 아닌 사람들도 이 플랫폼 내에서는 튜터가 될 수 있다는 브랜드 정체성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개인적으로 어떤 튜터를 보면 커리큘럼은 좋으나 아마추어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있다.) 브랜딩 차원에서 다크 모드가 노멀의 매력적 이면이라고 한다면, 유저는 튜터를 기존보다 조금은 엄격하고 전문가스러운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재미로 시작해본 것이 일이 약간 커진 것 같았다. 야매지만 애정돋는 브랜드의 다크 모드를 만들어보며, 인터페이스 색상은 단순히 기능과 미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유저는 프로덕트가 다크로 전환됐을 때 노멀과 똑같이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하지는 않는 것 같다. 바뀐 것이 인터페이스뿐이라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