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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Jan 14. 2020

구찌피케이션과 림빅 맵

스타트업에 맞는 브랜딩을 찾아서

최근 5년 간 패션계 가장 큰 화두는 구찌의 리브랜딩이 아니었을까. 성공요소로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가장 돋보이는 것은 주 타겟층 변화와 그들과 호흡할 수 있는 시각 정체성의 재정립을 들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구찌의 시장 포지셔닝 변화를 한스 게오르크 호이젤의 저서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에 나오는 림빅 맵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림빅 맵은 뇌 속 변연계라는 무의식적 감정중추를 탐구한 결과이고, 이 무의식 영역을 이용해 많은 마케팅 전략과 페르소나를 만드는데 활용된 바 있다. 우선 구찌의 포지셔닝 변화에 관해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자.


마케팅 방법론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림빅 맵'


구찌와 구찌피케이션

구찌는 2014년까지 5년 넘게 20퍼센트씩 매출이 하락하는 낡은 브랜드였다.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 브랜드 사이에서 애매한 포지셔닝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15년 신임 CEO로 부임한 마르코 비자리는 구찌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였던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이때부터 변화는 시작되었다.

    구찌는 주 소비층이었던 40~50대가 선호할만한 브랜드 이미지를 20~30대 즉, 밀레니얼 세대에 맞게 대대적으로 리브랜딩 했다. 소비자는 변화에 열광했고, 구찌 브랜드를 소유한 케링(Kering) 그룹은 2017~2018년 매출이 각각 42%, 33% 증가했다. 구찌 사례는 명품 브랜드의 규범이 되었다. 이에 버버리는 전 지방시 아트디렉터였던 리카르도 티시를 영입했다. 그는 고루한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해 위기를 넘겼다. 반면 2016년 캘빈 클라인 아트디렉터로 임명됐던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많은 수상 경력과 조형적 가치를 인정받았음에도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해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브랜드를 떠나게 된다. 많은 명품 브랜드가 구찌와 비슷한 전략을 펼쳤고 명암이 갈렸다. 이로서 럭셔리 브랜드 생태계에 구찌피케이션이 도래한 것이다.


좌측-마르코 비자리/우측-알렉산드로 미켈레


림빅 맵으로 보는 구찌의 포지셔닝 이동

2015년 이전 구찌는 림빅 맵상 우측 하단의 통제/규율 부근 키워드를 많이 가진 브랜드였다. 보통 이 위치의 림빅 스케일은 '규율형 소비자'라고 지칭된다.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소비자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에 브랜드가 쌓아온 전통적 가치와 믿음을 구입하는 셈이다. 전통적인 규율형 소비자는 명품 브랜드가 갑자기 창조성이나 변화, 유머적 가치를 표방한다면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와 중국의 도약, 빅데이터, 알고리즘과 자본의 연대, 레거시 미디어의 붕괴 등과 더불어 시대는 현재와 어울리는 럭셔리 브랜드를 요구했다. 파편화된 매체에서 재현되는 기존 명품 이미지는 고루해졌고, 예전처럼 아우라를 보존하기 힘들어졌다.

    미켈레는 오히려 전통과 현대, 히피, 하위문화 등을 마구 섞어 브랜드의 주요 시각 커뮤니케이션 툴로 활용했다. 그는 진심으로 밀레니얼 세대와 호흡하길 바랬다. 구찌 인스타그램 피드에 등록된 이미지들은 제품 구입 능력이 안 되는 뉴 제네레이션 세대의 핸드폰 배경이 되어갔다. 전통 럭셔리 브랜드가 고수하던 키워드, 만족/믿음/도덕/자부심/정밀성/고품질 등으로는 이 세대의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었다.


키워드에 따라 달리 분포되는 림빅 스케일과 유형


    구찌는 림빅 맵상 통제/규율의 반대 지점인 모험과 개방 쪽으로 위치를 이동했다. 이를 정확하게 목격할 수 있는 것은 구찌의 서브 그래픽 엘리멘트 세트인 구찌 가든(Gucci Garden)으로 디자인된 제품들이다. 매미, 새, 꽃, 호랑이, 식물 등 자연을 모티프로 한 디자인 요소는 '자수'라는 기법을 통해 기성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와 궤를 달리한다. 구찌 가든을 통해 도출된 림빅 키워드를 살펴보면, 도덕이나 믿음 신뢰보다 예술/유머/꿈/상상/자연/즐거움/창조성/향유에 가깝다. 기존 럭셔리 브랜드가 보여주던 이미지보다 상대적으로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구찌 가든 속 이미지는 소셜미디어와도 공합이 잘 맞았다. 구찌 가든의 매미와 나비는 다른 소셜미디어 사이를 떠다니며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이미지로 대중들 머릿속에 포지셔닝되고 있다.


[구찌 가든 아트 필름]

https://www.youtube.com/watch?v=vIX6z0B7Uj8

 

리브랜딩 후 구찌의 림빅 스케일 이동



벤츠와 BMW로 살펴보는 림빅 스케일

브랜드 초기 포지셔닝 설정시 종종 헷갈리기 쉬운 것이 '동일 카테고리 내 브랜드는 서로 비슷한 지향성을 가진다’라는 점이다. 아래 림빅 맵을 보면 동일한 자동차 카테고리지만 BMW와 벤츠, 아우디와 복스바겐은 서로 다른 림빅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벤츠를 구입하는 소비자는 '규율형 소비자'에 가깝다. 그들은 고품질과 정확성, 엘리트 정서를 가지며 자부심을 추구한다. 벤츠는 아래 림빅 맵에 위치한 네 브랜드 중 가장 가격이 비싸고 큰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또한, 상대적으로 타깃층의 연령대가 높다. 반대로 BMW는 벤츠에 비해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 측면이 강하다. 주요 타깃 연령대가 낮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한다. 광고에서 정교한 기술력과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벤츠에 비해 BMW는 모험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다. 이처럼 림빅 맵 속 서로 다른 자동차 브랜드는 '자동차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확연히 다른 시장 포지셔닝을 지향한다.


림빅 맵 내 서로 다른 자동차 포지셔닝

 


토스와 국민은행으로 살펴보는 시각 경향성

본론으로 돌아와 국내 스타트업 프로덕트 브랜드 포지셔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살펴보고 싶은 카테고리는 '금융'이다. 보수적 관점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금융 브랜드는 '국민은행'이고, 스타트업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토스이다. 토스는 기성 금융 브랜드들이 표방한 시각 경향성을 젊고 쿨한 이미지로 탈바꿈하고자 했다. 거기에 단순하고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UX/UI)이 더해져 1조 가치의 유니콘이 되었다.

    토스 앱을 실행시켜보면 단순한 심벌로 디자인된 스플래쉬를 지나 감정적 수사가 아예 전무한 홈 화면으로 떨어진다. 유저는 수행해야 할 업무를 형용사의 방해 없이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중간중간 위치한 카피성 문구는, 꼭 할 말만 하는 친구 같다. 문장에서 뼈대만 남긴 느낌이다. 토스카드와 관련 있는 페이지에서 그들의 비주얼 지향성을 느낄 수 있는데, 그들이 차용하는 이미지는 손그림 같은 일러스트(기존 금융권에서 보편화된 디자인 패턴) 같은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모델링 된 3D 형식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기성 금융 브랜드들 대부분이 손글씨나 따뜻한 일러스트로 자신들의 톤 앤 매너를 꾸리는 것은, 금융이 어렵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라도 심리적 허들을 낮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토스는 이와 정반대로 정확하고 신속함만을 시각언어로 표현한다.


두 브랜드의 시각 경향성 차이를 잘 보여주는 페이지들 (좌측-토스, 우측-KB)


    40~50대도 많이 사용하는 국민은행 앱은 림빅 스케일상 '개방/관용'과 '통제/규율' 사이에 걸쳐 있다. 유저는 국민은행 앱에 접속하면 '아무개'님의 행복한 일상을 응원합니다.'라는 카피를 통해 평화와 아늑함, 배려와 믿음 등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유저에 대한 감정적 배려를 고려한 시각화는 상대적으로 정확성/신뢰/고품질이라는 키워드를 건드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국민은행 앱의 품질이 실제로 높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직도 한국 내 많은 사람들은 기존 금융 프로덕트를 공인인증서나 복잡한 절차와 연관 지어 피로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토스의 성공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금융 하면 한 가지 이미지만을 떠올리지는 않게 되었다. 적어도 토스가 주는 쿨한 이미지와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이 공인인증서와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에.



Enlight로 보는 멀티 프로덕트 브랜딩

Lightricks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이미지나 영상을 가공'하는 프로덕트를 지속적으로 만든다. 앱스토어 접속 후 Enlight(회사의 주력 프로덕트)를 검색하면 비슷한 형식으로 디자인된 올빼미와 여우 로고 등을 만날 수 있다.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프로덕트가 하나의 시각적 형식으로 인해 질서를 가지는 셈이다. Enlight의 하위 프로덕트로는 애니메이션을 쉽게 만드는 것도 있고, 사진 편집을 쉽게 하는 것도 있다. 예술적 이미지를 쉽게 만들 수 있는 프로덕트도 존재한다. 프로덕트명은 각각 Quickshot, Photofox, Pixaloop 등이지만 항상 Enlight라는 브랜드명이 같이 쓰여진다. 유저는 앱스토어나 웹서핑 중 이런 디자인의 여우나 올빼미를 만나면 프로덕트보다 Enlight라는 브랜드를 먼저 상기시키게 된다. 새로운 프로덕트가 출시됐을 시 기존 브랜드가 쌓아놓은 명성을 이용하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신뢰성 확보에 용이하다. 하위 프로덕트를 관장하는 모체 브랜드(Enlight)가 단일한 조형언어(Visual Language)로 시장에 포지셔닝된 셈이다. 림빅 맵상 Enlight 심벌에 사용된 조형언어는 예술, 꿈, 상상, 즐거움 등으로 키워드화할 수 있다. 이는 이미지 편집을 즐기는 젊은 '향유형 소비자'에게 던지는 시선이기도 하다.


하위 브랜드를 엮는 Enlight의 상위 심벌

   

    Enlight 전략은 우리가 자주 봐오던 국내 대기업이 계열사를 시각적으로 통일시키는 방식과 유사하다. 처음에는 신선했지만 이내 작위적인 통일로 피로도가 생긴 브랜딩 방법론이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는 방법론이 앱 시장으로 옮겨가 성격에 맞게 적용되니 아주 새로운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익히 자주 봐오던 계열사 브랜딩, 많아도 너무 많다.



자원과 시간이 언제나 부족한 스타트업과 림빅 맵

다양한 마케팅 활동에 적용되는 림빅 맵을 아직까지 스타트업 프로덕트에 성공적으로 적용시킨 사례를 보지는 못했다. 림빅 맵은 오래된 방법론이지만 그만큼 철저히 검증된 이론이기도 하다. 딱히 카테고리 내 포지셔닝에 대한 묘안이 안 떠오른다면 림빅 맵을 기준으로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방법은 간단하다. 프로덕트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잠깐 모여 유저가 떠올릴만한 이미지를 키워드화한 후 림빅 맵에서 찾는다. 분포되는 키워드를 이어 스케일을 만든다. 만약 스케일이 비슷한 곳에서 형성된다면 이미 그 프로덕트는 시각적 형식과 커뮤니케이션 톤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약 모두가 다른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프로덕트는 시장에서 단일한 이미지를 획득하지는 못한 셈이다.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를 탐구하는 림빅 맵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를 진행하다 보면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사용자 경험과 인터페이스에 비해 브랜딩 즉, 유저가 시장에서 프로덕트를 상기시키는 이미지에 대해 덜 고민한다는 점이다. 스타트업 프로덕트팀의 시작이 보통 기술 중심으로 편성되고 그 논리를 따라가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까지 논의가 안 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몇몇 규모 있는 스타트업에서 BX팀을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기술 기반이 다져진 후 고려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흐름은 개발 비용을 줄이는 것이 브랜딩에 대한 고민보다 현실성의 저울에서 더 무겁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브랜딩과 포지셔닝 전략은 유저 플로우와 IA가 그려지기 전 아니면, 늦더라도 거의 동시에 고민되는 편이 옳다.



로고 디자인이 아닌 브랜딩

단순히 로고가 있기에 브랜드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프로덕트는 무조건 브랜드성을 획득해야 할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다'이다. 브랜드성을 획득한 프로덕트는 상대적으로 CAC(1인 고객 획득 비용)가 낮아지고, LTV(고객 생애 주기)가 높아지는 형태가 된다. 바이럴 루프가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CAC를 낮추기 위해 저렴하고 품질 낮은 광고 상품을 찾는 것보다 브랜딩에 투자하는 것이 결국에는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에서 대중이 명확하게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는(BX) 시각 경향성의 통일과 카피의 톤 앤 매너가 한 곳을 바라봐야 형성된다. 그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고안된 인터페이스여야(UI) 비로소 좋은 사용자 경험(UX)이 형성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브랜드화된 프로덕트 이미지는 추후 광고 이미지로 확산되고 계속해서 대중과 부딪히는 작업을 거친다. 배민과 야놀자, 마켓 컬리는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브랜드성을 획득했다. 이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모두 끝낸 뒤 부가적으로 문구를 통일하거나 이미지를 수정하는 정도로 얻을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구찌는 주요 타깃층의 변화와 그들에 맞는 시각체계를 재정립했다. 이는 시장에서 커다란 경제적 소득으로 이어졌다. 허투루 쓰이는 이미지나 문구 하나 없이 브랜드를 이루는 시각/정서/문자적 체계가 구찌피케이션이 표방하는 표상을 향해 정확히 호를 그리며 날아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내가 속한 프로덕트팀에 아무도 포지셔닝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어쩌면 기회일 수 있다. 림빅 맵을 띄우고 프로덕트 이미지를 키워드화 해보자.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참고자료]

1) BOOK JOURNALISM - 구찌피케이션

https://www.bookjournalism.com/contents/8542/chapters/8554


2)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구찌피케이션과 림빅 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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