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경쟁력이 도구에서 판단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4월 1일, 토스가 디자인 직무 6개를 2개로 통합했다.
Product Designer
Visual Designer
기존에 있던 Product Designer, Tools Product Designer, Platform Designer, Interaction Designer, Graphic Designer, Brand Designer가 딱 두 줄로 정리됐다. 이 소식을 보고 나서 며칠간 계속 생각했다.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업계 전체가 가고 있는 방향의 신호탄이라는 느낌이 든다.
토스 테크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면, 이 변화의 배경이 꽤 솔직하게 적혀 있다. 디자인 시스템에 인터랙션을 넣어야 할 때 Platform Designer가 할 일인지 Interaction Designer가 할 일인지 애매했다고. PC 제품을 모바일로 넓힐 때, 맥락을 가장 잘 아는 건 Tools Product Designer인데 모바일이라는 이유로 Product Designer가 맡아야 했다고.
결국 잘하는 사람이 하게 되더라는 거다. 토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많은 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Figma, Lottie, 코드 인터랙션. 도구 기준으로 역할을 나누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AI가 그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으니까. 결국 오래 남는 건 하나다. 이게 좋은 유저 경험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감각.
앤트로픽에서 Claude 디자인을 이끄는 Jenny Wen이 Lenny's Podcast에서 꽤 강한 이야기를 했다. 디자이너들이 교과서처럼 따르던 디자인 프로세스가 사실상 끝났다는 것. 자극적인 제목이긴 한데, 맥락을 들어보면 훨씬 구체적이다.
변화의 시작점은 디자인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이었다. 엔지니어가 AI 에이전트 여러 개를 동시에 돌리면서 기능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환경이 됐다. 그러자 디자이너가 리서치-발산-수렴 사이클을 3개월 돌리면서 앞을 막고 있을 수가 없어졌다. 목업 넘기고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엔지니어가 만든 걸 옆에서 같이 다듬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실제로 Jenny Wen 본인의 업무 비중도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업무 시간의 60~70%가 목업과 프로토타이핑이었는데, 지금은 30~40%로 줄었다고. 나머지는 엔지니어랑 붙어서 코드 위에서 직접 구현을 다듬는 데 쓴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Figma의 디자인 디렉터 자리를 놓고 앤트로픽에서 다시 실무자로 돌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디자인에서 가장 치열한 자리는 관리직이 아니라 제품과 코드 바로 옆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2~5년짜리 디자인 비전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했다. 대신 3~6개월 단위로 방향을 잡아주는 프로토타입으로 팀을 맞추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거다. AI 제품은 매번 결과가 달라지니까 모든 상태를 목업으로 그릴 수가 없고, 실제 모델과 실제 유저를 가지고 디자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스파르타 디자인팀이 최근 공개한 사례도 흥미로웠다. Claude Code를 활용해서 팀 전용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구조가 무척 체계적이다. 리서치, UX 라이팅, UI 디자인, 크리틱, 핸드오프. 이 다섯 가지 기능을 에이전트로 만들고, 상위에는 제품 원칙과 디자인 시스템이 담긴 중앙 정책을 두는 방식이다.
핵심은 기존 디자인 프로세스처럼 순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 AI가 개입하면 최소한의 기획 후 바로 프로토타입을 배포하고, 결과를 보면서 역순으로 기획서를 다듬는 것도 가능해진다. Figma 없이 바로 개발된 페이지로 UT를 돌릴 수도 있다. 그래서 순서가 아니라 기능과 목적 단위로 에이전트를 나눴다고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었다. 이 에이전트는 디자이너만 쓰는 게 아니다. 디자인을 해본 적 없는 동료도 팀의 디자인 원칙이 녹아든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는 거다. 누구나 빠르게 실험하고, 품질은 시스템이 잡아주는 구조가 견고해 보였다.
이 세 가지 사례를 놓고 보면, 앞으로의 변화가 좀 보인다.
첫째, 직무 경계는 계속 얇아진다. 토스처럼 공식적으로 통합하는 회사도 늘겠지만, 그보다 먼저 실무에서 경계가 사라진다. 디자이너가 코드를 만지고, PM이 디자인 시스템 위에서 시안을 뽑고, 엔지니어가 UX 판단을 하는 일이 일상이 된다.
둘째, 프로세스보다 판단이 중요해진다. 더블 다이아몬드 같은 틀을 충실히 따르는 것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지 빠르게 읽는 능력이 더 값어치가 있다. AI가 실행 속도를 올려줄수록, 방향을 잡는 사람의 몸값이 올라간다. 모두가 디렉터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셋째, 에이전트를 설계하는 디자이너가 나온다. 화면을 설계하는 것에서, 에이전트가 어떻게 행동하고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지를 설계하는 쪽으로 역할이 넓어진다. 사용자가 AI와 어떻게 대화하고, AI가 어떤 기준으로 결과물을 내놓을지. 이건 새로운 종류의 UX 설계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늘 나오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나는 뭘 해야 되지?
먼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다시 봐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화면을 예쁘게 만드는 데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제품의 방향을 같이 잡고 있는지. 그 차이를 인식하는 게 출발점이다. 앞으로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건 시안을 잘 그리는 능력이 아니라, 이 기능이 왜 필요한지, 지금 이걸 해야 하는 게 맞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AI 도구를 적극적으로 써봐야 한다. 안 써본 사람과 써본 사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Claude Code든, Cursor든, v0든 좋다. 한번 써보면 디자인 프로세스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직접 만들어보면 엔지니어와 나누는 대화의 깊이가 달라지고, 제품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도구가 평준화되는 시대에, 결국 남는 건 판단력이다. 그리고 그 판단력은 직접 만들고, 부딪히고, 실패하면서 쌓인다. 디자이너의 타이틀이 뭐로 바뀌든, 좋은 경험을 만드는 사람은 계속 필요하다. 달라지는 건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와 쓰는 도구뿐이다.
'토스가 디자인 직무를 2개로 줄였다. 다음은 뭘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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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