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각은 기존 축산 브랜드와 결이 다르다. IT기술을 바탕으로 '전에 없던 신선함' 즉, 초신선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 브랜드 로고가 완성되고 시각적 방향성을 고민하던 시점에 든 몇 가지 생각을 써볼까 한다.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의 아이덴티티(BI)를 구축할 때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동일 카테고리 속 차별화를 시각적으로 확연히 다르게 인지시켜야 하는 점이다. 다르다는 기준은 서비스 정체성이 되어야 설득력이 생긴다. 좋은 예로 현대카드는 새로운 카드가 나올 때마다 조형적 실험을 거친다. 일반적인 가로형이 아닌 세로형 카드 디자인을 받아 든 소비자들에게 '세로'라는 정체성은 서비스 혁신성을 알리는 시그널인 셈이다. 만약 유기농 카테고리에서 전에 것들을 뒤엎을만한 혁신적 브랜드가 나왔는데, 초록 잎사귀와 지구 모양으로 뒤덮여 있다면 혁신성은 반감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속담은 여전히 강력하다.
정육각 BI를 세팅할 때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동종업계의 시각 경향성 파악이었다. 정육점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계열 색과 스크립트 서체(손글씨)로 만든 로고가 대부분이었다. 카테고리와의 연관성을 완전히 끊지 않으면서 갈 수 있는 시각적 방향이 필요했다. 다른 해결과제를 가진 브랜드들과 로고만 보고 혼동되지 않았으면 했다.
식품같이 고착화가 심한 카테고리는 어느 나라던 시각적 관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가까운 편의점 과자 포장지만 봐도 시각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관습적 패턴이 싫어 혁신성만을 앞세운다면 소비자 심리 장벽이 높아지고 만다. 문제의 답을 관습 혹은 혁신에 놓자 해결은커녕 문제에 한 발자국도 접근할 수 없었다. 언젠가 티브이를 보다 혁신적 브랜드 'A'에 관해 누군가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문득, 프레이밍 된 혁신성 밑으로 몇 퍼센트의 관습성이 침전돼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은 선다형이 아닌 함량의 정도에 가깝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세웠다. 리브랜딩을 시작하는 시점의 나는 70%의 혁신과 30%의 관습 정도로 정육각이라는 브랜드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기술발전으로 가능해진 빠른 배송을 접목해 신선함을 추구하는 브랜드들이 국내에도 많이 생겨났다. 대표적 브랜드로 '마켓컬리'와 '헬로네이처'가 있다. 두 브랜드는 현재 '내일의 장보기'나 '잠들 때 주문, 눈뜨면 도착'같이 빠른 배송을 부각 중이다. 이 둘 브랜드가 자신들 철학에 맞는 상품들의 '큐레이션 커머스'로서 역할이 강하다면, 정육각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제품에 방점이 찍혀있다. 소비자가 주문하면 얼마 안돼 생산이 들어가고, 소비자에게 문자가 간다. 발송이 되면 생산 당일이나 다음날에 주문자가 받아볼 수 있다. 소비자는 마트에서 유통되는 오래된 고기 대신, 도축 후 1-4일 내의 돼지고기를 받아볼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리브랜딩 후 로고는 기존 축산 브랜드와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붉은 톤과 스크립트 서체를 배제했다. 로고 자체만 보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전략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축산업의 시각 패턴과는 다른 경향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고 외의 디자인 에셋들(사진, 아이콘)은 심리적 보완물로써 축산 카테고리와 멀어지지 않게 최대한 본딩 시킨다는 디자인 전략을 가지고 있다. 카테고리에 머물되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정체성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싶었다.
현재 정육각 디자인팀은 3월을 목표로 '초신선'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메인 이미지를 작업 중에 있다.
'정육각의 시각 정체성'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