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각 로고는 축산 카테고리와의 차별화와 여러모로 사용 가능한 호환성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되었다. 그래서 첫인상이 다소 중립적 [neutral]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내용이 형식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보는 이에게 낯선 느낌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 표면에서의 친절함이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처음 로고를 기획할 때 '정육점'이라는 현실 장소(place)가 아닌 온라인에 위치한 '정육각'이라는 추상적 공간(space)으로 느껴지길 바랬다. 브랜드가 가진 뾰족한 정체성이 로고 때문에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육류 외 기타 상품도 브랜드 철학에 부합하면 취급할 예정이라는 계획도 반영되었다.
육류뿐 아니라 당시 예정이었던 쌀이나 우유가 같이 배치됐을 때,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다양한 상품들이 정육각이라는 상징 안에서 개성을 잃지 않고 고유성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로고를 공간화해 상품을 위에 놓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기본 로고는 편안한 인상을 위해 약간 두껍게 디자인되었는데 크기가 커지자 두께 균형이 이내 무너졌다. 스케일에 비례해 로고 두께를 조절하는 가이드 하나가 이때 추가됐다. 현재 이 디자인 기법은 브랜드 스토리와 메일링 서비스에서 사용되고 있다.
리브랜딩 후 누군가 '브랜드에 유머가 부족해 보인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배달의 민족'같은 펀[fun]한 톤 앤 매너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이 부분이 소비자 심리 장벽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트 있어 보이는 건 브랜드도 바라는 방향이었다.
로고를 프린트해 가위로 잘라 겹쳐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보았다. 로고 여러 개를 45도씩 돌려보자 정지 이미지에서 시간성이 느껴졌다. 영상이 재생되는 느낌이 들었다. 간격을 일정하게 두며 회전시켜보니 무한히 생성되는 시각 규칙이 생겼다.
이 당시 중요했던 고민 하나는 브랜드의 온-오프라인 경험을 시각적으로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웹사이트 디자인의 경우 BI를 녹일 수 있는 영역을 염두에 두고 구조를 짜서 문제가 없었다. 오프라인이 문제였다. '회전 로고'라는 개념을 적용시킬 수 있는 에셋[asset]들이 있을지 살펴보았다. 카톤박스, 스티로폼 박스, 테이프, 상품 패키지, 보냉팩 등이 있었다.
배송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브랜드에서는 고객의 오프라인 경험도 온라인만큼이나 중요하다. 가끔 집 앞에 버려져있는 타 브랜드 택배박스를 주의 깊게 볼 때가 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박스에도 그들만의 강력한 BI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공부가 된다. 특히 박스 테이프는 색에 대한 자유도가 높아 브랜딩에 자주 사용된다. (민트색의 배민찬, 보라색의 마켓 컬리, 초록색의 헬로네이처 등.)
정육각은 '회전 로고'를 이용해 색이 아닌 시각적 위트로 타브랜드와 차별화를 주고자 했다. 특히 너비가 얇고 길이가 긴 에셋에서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시각 규칙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로고와 비주얼 콘텍스트'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