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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연 Apr 26. 2020

한국에서 글로벌 앱 디자인 하기

픽소의 사생활

현재 재직 중인 픽소는 글로벌을 위한 앱을 개발한다. 입사를 위해 대표님들과 미팅하기 전만 해도 한국에서 글로벌을 겨냥하는 것에 반신반의했다. 내가 경험한 한국 회사들의 세계시장 진출은 대부분 구호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사 후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픽소 매출 대부분은 북미와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대표님들의 특수한 이력 때문인 것 같다. 엔지니어/디자이너 출신 대표님들은 회사가 탄생하기 전부터 다양한 국가에서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했다. 그 속에서 현재 픽소를 대표하는 앱들이 출시되었다.


글로벌 사용자 추이(보안상 수치는 모자이크 처리)


미팅 중 대표님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발리에서 앱 출시를 해야 하는데 와이파이가 안 잡혀 노트북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이야기. 디지털 노마드중 출시된 앱에서 첫 매출이 발생한 이야기. 미국에서 열린 대규모 콘퍼런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팀 쿡 뒤로 픽소 앱 중 하나인 로고샵이 지나간 이야기. 돌아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용보다 말을 전하는 표정들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팀쿡 뒤로 보이는 로고샵



픽소 입사 전 상황

그즈음 나는 신선 식재료를 다루는 '정육각'이라는 브랜드의 디자인 디렉터로 근무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막 나온 참이었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정육각의 브랜딩, 사용자 경험, 전체 콘셉트 등을 구축했고, 작지 않은 규모의 디자인 팀도 이끌었다. 이후 독립도 잠시 생각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픈 충동이 더 컸다. 그 후 나는 이직을 위한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많은 회사와 또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했다. 당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던 것 같다. 대부분 스타트업이었고 산업군도 다양했다. 면도 용품 구독 서비스, AI와 결합한 금융, 패션 B2B, 화덕 피자, 전자책, 카셰어링, 중고물품 거래, 홈클리닝 등이 있었다. 당시 만난 대표들과 디자이너, 마케터들은 각자의 전장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큰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고, 보기에 따라 외골수 같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스타트업 세계의 방대함에 어안이 벙벙하던 시기였다.


정육각의 시각 정체성



CAC와 한국이란 시장

그 시기 한 대표는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주로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 국민들은 비슷한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어, 시장의 선두 주자(예를 들어 배민)가 아닌 후발주자(예를 들어 요기요)로 뛰어들어도 CAC(Customer acquisition cost) , 신규 고객 획득 비용이 선두주자와 3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같이 국민 정체성이 다양한 사회는 한국과 비교도 안될 만큼 CAC 비용이 높다고 했다.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아무리 고 뾰족하게 마케팅하려고 해도 정체성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렵 막연하게 세계 시장을 위한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 하는 것은 브랜드가 다루는 타깃을 이해해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정육각에서 디렉팅 했던 결과물들은 다분히 한국적 시각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당시 설정했던 타깃은 한국에서 생활하는 30대 초/중반의 모바일 친화적인 주부였다. 때문에 디자인을 위한 모든 시각언어(Visual Language)는 그들을 위해 세팅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지금과 비슷하게 디자인할 것 같다.

    픽소 입사 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무의식에 묻어있던 한국적 필터들을 걷어내는 것이었다. 한글 아티클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를 모두 영어로 바꾸었다. 내가 구사하고자 하는 시각언어들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에 살지만 내 생활 반경을 국제적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세팅하고 싶었다. 오래돼 굳은 자세를 바로 잡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정육각 앱 디자인
정육각 제품의 시각 경향성



개성 넘치는 픽소의 프로덕트들

개인적으로 내가 참여하지 않은 픽소 앱들도 좋아하는 편이다. 매출을 견인하는 앱은 아니지만 쉬프트 데이즈(Shift Days)는 교대근무자의 일정을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캘린더 앱이다. 주/야간이 스위치 되는 직업군(예를 들면 의사)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생산성 앱이지만 픽소 특유의 감성이 있어 딱딱하지 않고 UI도 핵심만을 위해 존재해 지금도 좋아하는 앱이다. 픽소 매출을 견인하는 앱 중 하나인 베이비 스토리(Baby Story)는 임신, 출산, 아기가 쑥쑥 커가는 소중한 하루하루의 과정을 의미 있게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앱이다. 베이비 스토리 SNS에는 다양한 국가의 엄마와 아이들이 추억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임신 중인 엄마들은 뱃속 태아 크기와 비슷한 앱 내 과일 스티커를 배 옆에 붙인다. 베이비 스토리의 오래된 문화 중 하나다. 엄마들은 태아가 아직 작으면 아보카도나 포도 같은 스티커를 배 옆에 붙이고, 출산이 임박하면 수박처럼 큰 스티커를 붙인다.


육아의 순간을 기록하는 '베이비 스토리'
집중력 향상을 위한 '포커스 키퍼'


로고샵(Logo Shop)은 비 디자이너를 위한 앱으로 빠른 시간에 프로페셔널한 로고를 만들 수 있다. 참고로 픽소에서 가장 큰 매출을 내는 앱이기도 하다. 베이비 스토리와 로고샵은 초기 픽소의 시각적 지향성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포커스 키퍼(Focus Keeper)는 집중력을 위한 시간관리 앱이다. 엔지니어 출신 대표님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앱이기도 하다. 이상하게 픽소에 지원하는 디자이너들은 포커스 키퍼를 가장 관심 있어하는데, 목적에 부합하는 단순하지만 명료한 인터페이스 때문인 것 같다.


비 디자이너를 위한 '로고샵'
디바이스에 저장된 픽소 앱들



글로벌을 대상으로 일하기

픽소는 앱의 정량적 데이터를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툴을 사용하고 있다. 마케팅팀을 중심으로 구글 애널리틱스와 페브릭, 파이어 베이스를 주로 사용한다. 내가 경험했던 한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는 데이터가 쌓이는 양상이 상당히 틀리다. 출근하면 애널리틱스에서 특정 페이지의 클릭률이나 이탈률 대신 세계지도를 먼저 보는 버릇이 생겼다. 앱별로 기대하는 국가별 상황을 먼저 살피는 것이다. 특정 국가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의견을 모으고 해결책을 마련한다. 최근에는 코로나 영향으로 베이비 스토리의 중국 매출이 갑자기 급증하기도 했다.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내부에서 판단했다. 당시 앱스토어 스크린샷은 중국인들이 보는 페이지라도 북미용 디자인밖에 없었는데, 이를 계기로 중국 사용자만을 위한 스크린샷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과거가 좁은 시장을 위한 이쑤시개 같이 뾰족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면, 현재는 세계적 표준을 맞추기 위해 넓지만 공리적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앱스토어 스크린 샷을 지역화 한 사례



픽소 디자인팀에 관하여

현재 픽소 디자인팀은 디자이너 출신 대표님을 중심으로 나와 디자이너 한 분이 더 계신다. 현재 디자인팀 메인 툴은 기존 사용하던 스케치와 제플린을 대신해 피그마로 바꾼 상태다. Hi-Fi 한 프로토타이핑은 페이스북사가 개발한 ‘오리가미'를 사용 중이다. 몇 달 전 베이비 스토리의 대대적인 리뉴얼이 있었는데, 이때 오리가미를 도입해 개발팀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률을 올리는데 기여한 바 있다.


오리가미로 제작된 Hi-fi Proto Type


내부적으로는 오리가미 도입 전과 비교해 구현율이 상당히 상승된 것에 기뻐하는 분위기다. 타 팀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노션과 아사나를 사용한다. 예전에 잠깐 컨플루언스와 지라를 연동해 일한 경험이 있는데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노션과 아사나의 부드러운 브랜딩 덕분인지 현재 일하는 방식이 더 캐주얼하다는 기분이 든다. 픽소는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툴이나 기술 선택에 있어 자유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누구라도 프로젝트에 도움될만한 기술이라고 생각되면, 비치된 법인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 회사의 메인 툴이 될만하다고 판단되면 복잡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용해본다. 그렇게 결정된 툴이 피그마(Figma)/오리가미(Origami)/로티(Lottie)/오버플로(Overflow)/줌(Zoom) 같은 것들이다. 픽소 구성원 대부분은 변화에 발맞춰 기술을 도입하고, 낙후된 것은 빠르게 폐기해야 한다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최근 출시되는 툴들의 러닝 커브가 전체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는 반가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코로나 이후 줌에서 열린 첫 공식 회의
디자이너들을 겁먹게 만드는 오리가미의 흉악한 인터페이스



2020 Awwwards Tokyo 참가

Awwwards.는 behance와 함께 디자이너들이라면 대부분 북마크 해놓았을 플랫폼 중 하나다. 주로 미학/기술적으로 우수한 웹사이트를 피처드 시키는 역할을 한다. 피처드 된 사이트는 각국 디자이너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Awwwards.는 매년 도시를 정해 콘퍼런스를 여는데, 작년 말에 도쿄에서 콘퍼런스 일정이 잡혔다. 대표님들의 제안으로 디자인팀은 올해 초 3박 4일간 '2020 Awwwards Tokyo'에 참가했다. 콘퍼런스에 연사로 참여한 각국을 대표하는 에이전시와 디자이너들의 프레젠테이션은 지극히 동시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많은 영감을 주었다. 원래 글로벌 에이전시 F-I(Fantasy-Interactive)의 광팬이었는데, F-I의 Global Design Head인 Peter Smart가 콘퍼런스 사회를 맡아 신기했다. 주니어 시절 F-I 작업 중 하나를 그대로 카피해 사수한테 왕창 깨졌던 일이 생각났다. 불 꺼진 콘퍼런스장에서 혼자 조용히 웃음을 삼키느라 애썼다.


https://www.youtube.com/watch?v=I8QlyPyU1Xc&feature=youtu.be


개인적으로 콘퍼런스도 좋았지만 직전 열린 워크숍 참가가 더 좋았다. 페이스북, 드롭박스, 구글, 라인 등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글로벌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하고 또 의미 있는 교류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워크숍에 참가한 각국 디자이너들과 미션을 해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동시에 모두 다른 해결책을 내놓아 놀랐던 기억이 난다.


2020 awwwards. Tokyo



픽소 기술의 집대성이 될 ‘GRAPIC’

픽소 대표 앱인 베이비 스토리와 로고샵은 사용자가 이루고 싶은 목적을 위해 '시각적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공통된 미션이 있다. 이러한 솔루션은 'Photo Edit' 시장과 잘 어울린다. 현재 디자인팀은 이러한 픽소 기술이 집대성될 'GRAPIC'이라는 앱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라픽은 Unfold나 Canva처럼 SNS에 자신의 콘텐츠를 쉽지만 근사하게 업로드할 수 있도록 돕는 앱이 될 예정이다. 북미의 힙한 20대 여성들이 주요 타깃이 될 것 같다. 시장 자체가 어느 정도 성숙해 있는 단계기 때문에, 후발주자로 진입하기에는 베이비 스토리나 로고샵보다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된다. 프로젝트를 리드하고 있는 입장이라 심적으로 부담도 큰 상태다. 하지만 현재 이 시장은 Adobe 같은 거대 기업이 독점하던 파이가 아이폰의 포토샵이라 불리는 Lightricks 제품들이나 스케치, 피그마 같은 프로덕트들에 의해 점차 세분화되어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진입에 성공만 하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픽소 모두는 생각하고 있다.


그라픽의 초기 비주얼 방향성.


덧붙이며

입사 후 정신없이 반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리할 시점이 한 번 된 것 같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추가로 현재 픽소 디자인팀은 함께할 수준 높은 디자이너를 찾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디자이너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해당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제 브런치 메일로 문의하셔도 좋습니다.


회사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



https://www.wanted.co.kr/wd/1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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