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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May 26. 2020

디폴트를 어떻게 디자인할까?

The Power of Defaults

사람들은 새로운 출근길을 걸고 내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회사가 적성에 안 맞아도 애써 감내한다. 집안 가구 배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익숙함에 대한 관성을 심리학에서는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고 부른다. 이를 진화의 흔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동굴 속 수염 덥수룩한 원시인이 보인다. 모닥불이 피어오른다. 매일 잠을 청하는 동굴 안이 오늘따라 더 아늑해 보인다. 하지만 비축해둔 식량이 곧 바닥나 원시인은 늦지 않게 동굴을 나서야만 한다. 두려움이 앞선 표정이다. 바깥은 태어나 본 적도 없는 독풀과 맹수들로 가득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소나기로 인해 평소 다니던 길도 망가져 버렸다. 원시인은 크게 한 숨 내쉰 뒤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동굴을 나서기로 한다.



디폴트(Defaults)의 힘

원시인에게 새로움은 언제나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시시대에 비해 새로움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현대인도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도전은 늘 부담스럽고, 익숙함은 포근하기만 하다. 문명의 발달 속도를 우리의 뇌는 따라 잡지 못했다.

    하지만 현상유지 편향이 부정적이기만 한 걸까? UX Planet의 편집장 Nick babich는 자신의 블로그에 'The Power of Defaults'라는 글을 실은 바 있다. 그는 기본 설정과 입력 필드 같은 디폴트를 잘 활용하면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조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조사에 따르면 5% 미만 사용자만이 인터페이스 기본 설정을 바꾼다고 한다. 즉, 95% 사용자는 현상유지 편향을 가진 셈이다.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다수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기본설정을 설계하는 편이 좋다.


95%의 보수적 사용층



인터렉션 비용

고대의 어느 부족은 아무것도(Void) 없는 벽에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들은 두려움을 쫓기 위한 방편으로 벽에 점을 찍었다. 광활한 여백에 시선 둘 곳이 생기자 비로소 그들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인터렉션에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고대 부족 이야기처럼 바라보게 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시선을 머물게 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선, 기호, 색을 활용한 시각적 구두점(Visual Punctuation)을 화면에 배치한다. 시선을 머물게 했다면 이제는 무언가를 누르게 해야 한다. 클릭은 시선보다 더 많은 인터렉션 비용이 들어간다. CTA 버튼의 *어포던스(Affordance)가 보편적으로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끌게 하는 것은 클릭보다 더 높은 비용이 발생한다. 클릭이 운동에너지만 발생시킨다면, 드래그는 이에 더해 대상의 위치에너지까지 바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선 모든 것을 다 합쳐도 사용자에게 무언가를 입력하게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잘 설계된 입력 필드라 해도 다른 요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높은 이탈률을 경험해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인터렉션 비용을 낮추는 방법은 다양하다. 예컨대 입력 폼을 비워두는 것보다 사용자가 입력할만한 내용을 미리 제공해줌으로써 '입력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선택될 확률이 높은 사항을 미리 체크해 둠으로써 ‘클릭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이렇듯 디자이너는 다양한 인터렉션 비용을 낮춤으로써 더 높은 사용성을 제공하는 것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어포던스 : 어떤 행동을 유도한다는 뜻으로 행동 유도성이라고도 한다.



생각 비용

사람들은 질문이 명확하더라도 텅 빈 입력 폼 앞에서 망설이는 경향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답에 맞는 ‘형식’까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잠깐의 머뭇거림은 '생각 비용'을 발생시키고 이탈률에 영향을 미친다. 디자이너는 '힌트 텍스트'를 넣어주는 것으로 사용자의 생각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클라우드 기반 협업 툴인 'Slack'은 회사 이름을 적는 입력 폼에 적절한 힌트 텍스트를 던져줌으로써 사용자의 생각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클라우드 기반 협업도구 Slack의 가입 장면


클릭 비용

의사결정에 있어 확률상 높은 쪽으로 인터페이스를 미리 결정해두면 클릭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 'Cash App'은 카드 발급 시 다수의 선호를 반영해 블랙 색상을 디폴트로 설정했다. 참고로 Cash App은 국내에는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앱스토어 설정시 국가에서 미국을 선택해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선택 확률이 높은 쪽을 미리 체크하는 라디오 버튼(Radio Button) 역시 클릭 비용을 줄여주는 대표적 인터페이스라고 할 수 있다.

Cash App은 2018년 7백만명의 액티브 유저를 확보했다.


스크롤 비용

과거에는 서비스 가입 시 사용자가 직접 생일을 타이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높은 ‘입력 비용’을 치른다. 아래는 미국 메신저 서비스 Snapchat의 생일 선택 화면이다. 생일 선택 UI를 Date Pickers로 사용했다. 흥미롭게도 디폴트 나이를 10대로(2001년) 지정했다. Snapchat은 미국 스마트폰 사용자 중 유독 10대에게 인기가 많은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만약 타깃 연령을 고려하지 않아 엉뚱하게 1970년대에서 시작했다면, 안 그래도 참을성 없는 미국의 10대들에게 큰 스크롤 비용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Snapchat의 생일 선택 인터페이스


입력 비용

모바일 작은 화면에서 일일이 숫자를 입력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Cash App’은 카메라 스캔 기능을 활용해 카드 번호가 자동 입력되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촬영의 인터렉션 비용이 입력 비용보다 더 낮기 때문에 편리함을 느낄 수 있다.

아래는 승차 공유 서비스 UBER의 화면 중 하나다. 목적지 입력을 시작하는 동시에 제공되는 각종 자동완성 기능은 입력의 번거로움을 상당 부분 줄여준다. 입력이 불가피하다면 타이핑해야 할 절대적 양을 줄여나가는 방향도 UX적으로 고려할 대상이다.



'디폴트를 어떻게 디자인할까?' (끝)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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