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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Jun 06. 2020

한국인으로서 처음 쓴 서양 디자인사?

'최범의 서양 디자인사'를 읽고

이 책은 디자인 평론가 최범이 한국인으로서 처음 쓴 서양 디자인사입니다. 이미 많은 디자인사 서적이 존재하는데 무슨 말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 저자는 대부분의 디자인사 서적이 서양인이나 일본인이 쓴 원전의 번역본에 지나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이 책의 논의는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저자는 시작부터 서양 디자인사를 동양의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자 노력합니다. 물론 서양이 현대 디자인에 많은 것을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서양 디자인사를 비판 없이 당연한 세계의 ‘보편사'로 받아들이는 것은 건강한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서양 디자인사가 세계 디자인사에서 중요한 것과, 서양 디자인사=세계 디자인사인 것은 매우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 쓴 서양 디자인사

저자는 서양 디자인사를 서양 디자인사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동양 디자인사가 생기고, 한국의 디자인사도 생길 수 있다고 전합니다. 당연한 공식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양 디자인사는 우리와 너무나도 밀접합니다. 저는 책을 통해 가까스로 서양 디자인사가 타자의 역사일 뿐이라는 생각의 첫걸음을 뗄 수 있었습니다.


ⓒ 권민호


최초의 전문직 디자이너의 탄생

디자인은 현대사회의 특징을 드러내는 징후적 성격이 강합니다. 아이폰이 가진 매끈한 표면과 대중이 소비하는 방식은, 전통적 관점으로는 잘 설명이 안됩니다. 이는 후기 산업사회와 포스트모던 사회를 거쳐 획득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을 회화, 조각, 건축 등과 같은 전통적인 조형 예술의 장르적 틀 안에서 보는 것 역시 지나치게 형식적인 접근일 수 있다.(15p)

최초의 전문직 디자이너의 탄생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방식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문직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해 판매를 촉진합니다. 더불어 디자인은 시장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마케팅 툴로도 적절했습니다. 현대 미국 디자인은(혹은 세계) 철저히 이 생각들 위에 지어졌습니다. 디자인이 철저히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은, 정신적 측면이 강한 전통적 조형예술과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 권민호



대립하는 양식이 공존하는 시기

기존 디자인사는 마치 바우하우스나 아르데코 시대에 하나의 양식만이 존재했다는 식으로 서술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립하는 양식이 공존하던 시기가 적지 않았습니다. 회화의 경우 인상주의 시대에 전통적인 아카데미즘(Academism)이 공존했었고, 포스트모던 양식 건축이 즐비한 오늘날에도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성당들이 지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한 시대에 하나의 양식만이 존재했다고 믿는 것처럼 우매한 태도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흔히 고전주의-낭만주의-사실주의-인상주의-입체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미술의 양식적 발전 경로는 허구일 수 있다. 물론 한 시대에 단 하나의 양식만이 존재했다고 지나치게 단순화하지만 않는다면, 비교적 지배적인 하나의 양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41p)



윌리엄 모리스의 모순

디자인사에서 *윌리엄 모리스의 위상은 특히 남다릅니다. 대부분의 디자인사에서 그는 근대 디자인의 아버지로 추앙됩니다. 하지만 그가 전개한 공예의 중요성과 기술에 대한 부정은 현재의 상황과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칭호가 보통 아들에 직접적 유전자를 전달했다는 은유로 사용된다면, 윌리엄 모리스의 사상은 현대에서 철저히 비주류로 느껴집니다.


윌리엄 모리스가 즐겨 사용했던 유기적 패턴


역사학자 아르놀트 하우저는 모리스의 모순이 복고주의, 엘리트주의, 기계의 부정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그는 쾌락적 *딜레탕트(dilettante)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1861년 윌리엄 모리스가 동료들과 런던에 설립한 모리스마셜포크너사(Morris, Marshall, Faulkner & Co.)는 생활용품을 가히 예술품 수준으로 내놓습니다. 하지만 수공업 방식으로 정성스레 만들어진 포크너 사의 제품을 일반 대중이 구매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가격이 문제였습니다. 반면, 품질이 조악해도 기계로 대량 생산한 제품들은 가격만큼은 합리적이었습니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기계에 대해 긍정적인 독일 공작 연맹과 바우하우스의 탄생은 이때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윌리엄 모리스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품었던 생각들은 마냥 무시될 수 없는 것들이긴 합니다. 최범은 그의 진정한 현대적 의의를 아래와 같이 정의합니다.

 모리스에게는 몇 가지 중대한 모순과 한계가 있었지만 디자인의 본성과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후대 디자이너에게 그의 이름은 언제나 잊히지 않고 빛을 비추는 등불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 역사에서 그가 미친 진정한 영향력이다.(66p)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 영국의 공예가, 시인, 사상가. 중세를 동경하였고, 산업혁명으로 인한 예술의 기계화에 반발하여 손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포크너 상회를 설립하였고 도판, 벽지, 직물, 스테인드 글라스 등을 디자인하였다. 켈름 스코트 프레스를 창설하였고, 3개 서체를 고안하기도 하였다.(출처:미술대 사전-인명편)

*딜레탕트(dilettante) : 예술 애호가



대중의 취향과 변용

사실 장식은 인간의 기본적 조형 의지로써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습니다. 어쩌면 장식을 배제한 모던 디자인의 탄생이 더 예외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모던 디자인은 엘리트 디자이너가 주창하고 실천한 양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형식과 장식의 배제는 당시 대중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고상한 것이었습니다.

대중의 취향은 절충적이고 타협적이기 쉽다. 따라서 모던 디자인 양식이 단지 양식상의 실험작이 아닌 이상, 대중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변용이 불가피했다.(135p)

저자에 따르면 대중의 무의식에는 원래 장식적인 것을 좋아하고 원하는 속성이 있다고 합니다. 초창기 모던 디자인 역시 이러한 현실 속 타협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우하우스나 러시아 구성주의도 초기 순수한 사상을 온전히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기존 서양 디자인사에는 장식의 선호를 매도하는 뉘앙스가 서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말대로 대중 취향은 매도되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디자인의 최종 선택자는 대부분 대중입니다. 오늘날 서구 모더니즘은 길고 치열한 실험을 거친 뒤, 장식미술과의 결합을 통해 대중화된 것입니다. 우리가 애정 하는 애플 제품들 역시 치열한 사투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엄격한 모더니즘조차 대중들의 감각에 맞게 변용되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쓴 최초의 서양 디자인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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