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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Jun 10. 2020

파충류 설득하기

자동 시스템 vs 숙고 시스템

인간의 뇌는 다양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진화 과정에 따라 각각 형성된 시기가 다르다. 우리가 하루 동안 내리는 무의식적 의사 결정 대부분은 이중 가장 먼저 생성되고 오래된 ‘파충류의 뇌'가 담당한다. R-영역이라고도 불리는 이 부분은 생존과 관련된 행동과 직관적 사고를 수행한다.




자동 시스템 vs 숙고 시스템

넛지(Nudge)의 저자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자동 시스템(Automatic System)'과 '숙고 시스템(Reflective System)'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자동 시스템은 직관적이고 자동적 사고방식을 뜻하며, 숙고 시스템은 분석적 사고를 뜻한다. 물론 인간에게 이 두 시스템은 모두 중요한 것이다.

    익숙한 출근길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모퉁이를 돌 때나 조금 복잡한 골목길이 있어도 대부분 깊은 고민 없이 걸어갈 수 있다. 음악을 듣거나 딴생각이 가능한 이유도 자동 시스템 덕분이다. 운동선수들 역시 훈련을 통해 자동 시스템을 강화한다. 1초로 승부가 판가름 나는 스포츠 경기에서도 자동 시스템은 빛을 발한다. 산책길에서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반사적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숙고 시스템은 신중하고 의식적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714x433이라는 문제를 내면 숙고 시스템이 가동된다. 복잡한 금융 업무를 볼 때나 연봉 협상을 할 때도 우리는 숙고 시스템의 신세를 진다.


자동 시스템과 숙고 시스템의 특징



파충류의 뇌 퀴즈

리처드 탈러의 저서 넛지에는 자동/숙고 시스템과 관련된 흥미로운 퀴즈가 나온다. 저자는 우수한 대학생들을 상대로 아래 세 질문에 각각 떠오르는 생각을 답하게 했다. 혹시 여유가 된다면 읽으시는 분도 함께 퀴즈를 풀어보면 좋을 것 같다.


1) 야구방망이와 야구공을 합친 가격은 1달러 10센트이다. 방망이의 가격이 야구공의 가격보다 1달러 더 비싸다. 그렇다면 야구공의 가격은 얼마인가?

2) 5대의 기계로 5개의 장치를 만드는 데에는 5분이 걸린다. 그렇다면 100대의 기계로 100개의 장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인가?

3) 어느 호수에 커다란 수련 잎들이 떠 있다. 매일 이 수련 잎들이 차지하는 너비는 두 배로 늘어난다. 수련 잎들이 전체 호수를 덮는데 48일이 걸린다면 호수의 절반을 덮는 데에는 얼마나 걸리겠는가?


사실 이 세 문제는 자동 시스템으로는 풀 수 없다. 실험에 참가한 우수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써낸 답은 다음과 같다. ‘10센트, 100분, 24일.’

하지만 이 대답은 우리 속 파충류가 말한 것이다.

정답은 5센트, 5분, 47일이다.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사실 삶의 선택 대부분을 숙고 시스템에 맡기면 우리는 더 신중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뇌는 효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만약 매 순간 숙고 시스템을 호출했다간 금세 방전돼 녹초가 되고 말 것이다.

    리처드 탈러에 따르면 이러한 뇌의 특성상, 선택의 기로에 서면 자동 시스템이 우선순위로 등장한다. 숙고 시스템은 우리가 의식을 해야 겨우 불러낼 수 있다. 설사 불러냈다고 해도 느리다. 이를 심리학자들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고 표현한다. 주변의 이성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대개 숙고 시스템과 사이가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일관성보다 명료성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디자이너는 이러한 인간 특성을 참고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 즉, 고민하지 않아도 될 부분은 자동 시스템이 처리하게 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프로덕트 내에서 숙고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고 선택의 경제성을 원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아래 두 아이콘은 같은 집을 표현한 것이지만 복잡성에서 차이가 난다. 만약 사용자가 좌측 아이콘을 인터페이스상에서 만난다면 우측보다 고민 비용이 더 발생할 것이다. 이 작은 시간은 사용자 이탈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 디자이너들은 보통 아이콘을 그릴 때 일관성(Context)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명료성(Clarity)이다.


아이콘의 명료성


명료성이 떨어질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아래는 VSCO라는 포토 에디팅 앱의 하단 내비게이션이다. 왼쪽부터 피드, 검색, 촬영, 프로필, 친구 목록 등을 나타낸다. 이 디자인 목록은 관습에서 벗어나 있으며 과도한 메타포를 사용했다. 이는 고스란히 사용자 ‘고민 비용’으로 돌아간다. 이 경우 아이콘의 조형성이 좋아도 나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VSCO 하단 내비게이션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기술이 아닌 사람에 관한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인간의 복잡한 태생적 한계를 헤아리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충류 설득하기'(끝)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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