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널(Funnel)과 해적 지표(AARRR)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과거 UI/UX 디자이너라고 불리던 시절보다 훨씬 더 비즈니스에 가까워졌다. 이는 디자인의 시장 반응을 수치화할 수 있는 기술 발전의 영향이 크다. 불과 몇 해전만 해도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의 감이었다. 변화는 눈 깜짝할 새 진행됐다.
데이터는 디자인의 확실한 근거가 된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데이터는 단지 실마리를 제공할 뿐이다. 디자이너는 숫자 더미에 불과한 데이터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더 나은 해결방안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실무에서 디자이너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종류는 크게 '정성적 데이터'와 '정량적 데이터'가 있다. 상황에 따라 달리 활용하기 때문에 차이를 명확히 알면 실무에 도움이 된다.
‘정량’은 수치화시킬 수 있는 측정 가능한 데이터 전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나이, 키, 몸무게 등이 있다. 학창 시절의 등급, 백분위 점수, 표준점수, 석차 등도 여기 해당한다. 직장인이라면 근태(출석, 결석, 지각), 매출실적률, 생산실적률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가 디자인할 때는 주로 회원가입수, 상품수, 탈퇴율, 공유율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정성’은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데이터를 말로 설명하고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질적(Qualitative)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쉬운 예로 학창 시절 선생님께 받는 다음과 같은 소견서를 떠올릴 수 있다. 'A라는 학생은 솔선수범하여 친구들과 교우 관계가 좋고, 미술에 관심이 많아 예술 대학 준비를 충실히 했다.'
실무를 대표하는 정성적 데이터로는 리뷰를 들 수 있다. 리뷰는 수치화시킬 수 없는 감상들로 가득하다. 디자이너는 말 더미에서 반짝이는 맥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만큼 이성적으로 뭔가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디자인의 실제 성적표를 받아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유입률이 높을 거라 예상했던 페이지가 가장 저조하다거나, 배너 광고의 A/B 테스트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시안 클릭률이 가장 높다거나 하는 일들이다. 이런 일들은 거의 매일 같이 일어난다.
오랫동안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사용자들 행동에서 유사한 패턴이 포착된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패턴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디자인을 수정한다. 그리고 시장에 내보낸다. 재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회고한다. 다시 가설을 세운다. 이 과정을 지겹도록 반복한다. 가설과 시장 사이가 줄어든다면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데이터 기반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핵심 성과 지표(KPI : Key Performance Indicator)가 필요하다. KPI는 보통 비즈니스 차원에서 결정된다. 산업별, 기업별, 부서별로 다르다. 대부분 측정 가능하고, 현실적이며, 미래 지향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규 가입률을 10% 이상 높인다'라고 KPI를 설정해보자. KPI가 생긴다면 각 파트별로 목표에 대한 스펙트럼이 좁아진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면 회원 가입 페이지를 검토하고 개선점을 찾을 것이다. 가입 유도를 위해 쿠폰 같은 보상체계를 어디에 녹일지 고려한다. 마케터는 잠재 사용자 풀(User Pools)을 리서치할 것이고, 그들에 맞는 채널 전략을 세울 것이다. 엔지니어는 갑자기 증가할 수 있는 트래픽에도 서버가 문제없을지 검토한다.
사용자는 보통 서비스 접속 후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 단계를 거친다. 이를 ‘시간 흐름'에 따라 구분해 놓은 것을 퍼널(Funnel)이라고 부른다. 퍼널을 분석하는 이유는 구간별 데이터를 보고, 어느 시점에 사용자 이탈이 몰리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보통 사용자는 프로덕트에 머무는 빈도가 뒤로 갈수록 줄어든다. 그 모습이 마치 역삼각형 깔때기와 닮아 퍼널이라고 부른다. 퍼널은 구글 애널리틱스나 앰플리튜드 같은 툴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해적 지표란 미국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500 Startups의 창립자 데이브 맥클루어(Dave McClure)가 개발한 분석 프레임 워크이다. 퍼널이 '시간 흐름'에 집중돼있는데 반해, 해적 지표는 사용자의 구체적 행동에 초점 맞춰져 있다. 즉, 사용자가 서비스에 어떻게 이득을 가져다줬는지 분석한다. 디자이너는 퍼널과 해적 지표를 활용해 더 나은 가설을 세울 수 있다. 해적 지표는 아래 다섯 단계로 나뉜다.
Acquisition : 신규 사용자가 얼마나, 어떻게 우리 서비스에 방문하고 있는가?(DAU, MAU)
Activation : 서비스를 이용 시 이탈하거나 혹은 잘 사용하고 있는가?(Bounce Rate, Avg.PV, Avg.Duration, Signup)
Retention : 꾸준하게 우리 서비스를 재사용하고 있는가?(Retention Rate)
Referral : 우리 서비스가 어디에 얼마나 공유되고 있는가? 혹은 사용자 스스로 공유하는가?(Share Rate)
Revenue : 서비스가 존속되기 위한 수익모델이 있는가?(Conversion Rate)
데이브 맥클루어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지 조언한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80%는 기존 기능 최적화에 힘을 싣고, 20%만 새로운 기능 개발에 투자하라고 권한다. 그 후 A/B테스트를 시행하고 반복한다. 그러면 서비스는 분명 개선될 것이라고 전한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디자인의 시장 결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디자인 팀장이나 아트디렉터 개인의 감이 중요했다. 이는 워터폴 프로세스를 지탱하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 데이터 없이 소비자를 추적하기란 불가능하다. 시장은 역동적이고 또 빠르게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디자이너들의 회사 내 위계를 붕괴시켜버렸다. 데이터 앞에서 팀장과 막내는 동일하다. 단지 누가 더 나은 해석을 내놓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디자이너가 데이터에 관심 가지면 보이는 것들' (끝)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