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물질과 동기부여
이 글은 스웨덴의 정신과 전문의 '안데르스 한센'의 저서 '인스타 브레인'을 기반으로 작성됐음을 밝힙니다.
우리 뇌는 수렵 채집인의 뇌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다. 원시인의 생존율은 맹수가 날씨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 독성 없는 열매가 어떤 빛깔을 띄는지, 먹이가 될만한 동물이 어떨 때 경계심을 낮추는지와 같은 새로운 지식에 비례했다. 새로운 지식과 생존의 연결이 덜한 현재도 이러한 갈증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안데르스 한센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 평균 2600번가량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3시간 이상 스크린 타임을 가진다고 한다. 하지만 매 순간 중요한 정보를 얻고자 스마트폰을 켜지는 않는다. 진동이 울리면 내심 기대감이 생긴다. "내가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가 몇 개나 붙을까?", "고객사에 보낸 메일의 답장인가?", "택배 도착 알림인가?"
정작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면 시시한 정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진동이 울리면 이내 비슷한 감정이 든다. 이러한 기대감은 어떤 정보일지 모를 불확실성에 있다. 뇌는 예측불허를 사랑하고, 자주 보상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기관이다. 뇌가 스마트폰을 사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음은 예측불허와 관련된 유명한 심리학 실험 중 하나다. 연구자는 원숭이들에게 벨 소리를 들려준 후 달콤한 주스를 주는 실험을 했다. 전후의 도파민 수치를 측정하기 위함이었다. 흥미롭게도 원숭이들은 주스를 마실 때 보다 벨 소리를 들었을 때 도파민 수치가 훨씬 높게 나왔다. 연구자는 이 연구를 통해 도파민이 만족감을 주는 '보상 물질'이 아니라 '동기부여를 위한 물질'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벨 소리를 들려준 뒤 두 번에 한 번꼴로만 주스를 제공했더니 원숭이의 도파민이 가장 높게 측정되었다고 한다.
뇌의 입장에서는 기대감 속에 미래의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그 '길(path)' 자체가 목표인 셈이다. <인스타 브레인, 82p>
우리 뇌 역시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매번 새로운 페이지를 열 때마다 도파민을 분비한다. 안데르스 한센에 따르면 인터넷 페이지 5개 중 1개꼴로 머무르는 시간이 채 4초가 안되며, 10분 이상을 보내는 페이지는 이 중 4%에 불과하다고 한다. 포노 사피엔스는 어쩌면 페이지의 정보보다 '링크'가 주는 연결 그 자체에 만족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실제로 뇌의 보상 추구(reward-seeking) 영역과 정보 추구(information-seeking) 영역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SNS 개발자는 보상 시스템을 자세히 연구해 뇌가 불확실한 결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자주 보상을 해줘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집어 드는 놀라운 순간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지식을 활용한다. "어쩌면 '좋아요'를 하나 더 받았을지도 몰라. 한 번 봐야겠어"는 "포커 한 판만 더! 이번엔 내가 딸 수도 있어!"와 똑같은 메커니즘이다. <인스타 브레인, 86p>
지피는 사용자가 짧은 루핑 애니메이션을 검색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검색 엔진이다. 페이스북은 지피를 무려 4억 달러에 인수했다. 페이스북이 그토록 지피에 눈독 들인 이유가 뭘까.
내가 재직 중인 회사의 사내 메신저는 슬랙이다. GIPHY API를 연동해 채팅창에서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giphy + 단어"를 입력하고 'Send'를 누르면 랜덤 루핑 애니메이션이 호출된다. 만약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셔플을 눌러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계속 호출할 수 있다. <그림 2>는 'happy' 검색 후 셔플로 연속해 얻은 애니메이션들이다. 지피가 셔플을 통해 주는 예측 불가능함은 뇌의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시킨다. 시스템에 계속 불이 켜지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이 계속 공급될 거란 '기대감' 자체가 중요하다. 주스 맛보다 벨소리에 도파민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 원숭이의 작용원리와 비슷하다.
워드 스웨그는 탭 몇 번으로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게 해주는 에디트 앱이다. 직접 촬영한 이미지나, 앱에서 제공하는 템플릿을 선택한 뒤 글자를 입력하면 된다. 얼핏 보면 특별할 게 없는 워드 스웨그는 어떻게 미국 시장에 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을까?
<그림 4는> 워드 스웨그의 에디트 화면이다. 하단을 보면 숫자(1-5) 우측에 주사위 아이콘이 있다. 주사위를 누르면 지피처럼 미리 선택된 폰트 대신 섬광과 함께 새로운 폰트를 호출시킨다. 사용자가 시간을 들여 작성한 문장이 클릭 몇 번으로 변형되어가는 모습은 기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저스틴 로젠스타인은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능을 만든 장본인이다.(팀 협업 프로그램인 Asana의 창업가이기도 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선의를 가지고 개발했지만 자신의 창조물이 생각지 못한 부정적 영향을 주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일반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페이스북과 스냅챗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이 앱들이 헤로인과 맞먹을 정도로 중독성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휴대전화 사용 습관을 바꾸기 위해 부모가 자녀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할 때 설치하는 기능을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설치했다. <인스타 브레인, 87p>
저스틴 로젠스타인이 남긴 유산은 페이스북의 영리한 직원들에 의해 계승 중이다. 영리한 소수는 전 세계 10억 명이 넘는 사용자 경험을 설계한다. 소수가 절대적 다수의 행동 패턴을 조직하는 현재 같은 상황은 과거에는 볼 수 없던 특이한 지형이다. 그들이 설계한 화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많은 시간을 앗아가는 중이다.
구글의 전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는 앞으로 디지털 기술은 인류의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니라, 잘 쓰게 하는 것(Time Well Spent)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이를 받아들여 2018년 1월 페이스북의 디자인 목표를 ‘Time Well Spent’로 지정했다. 2018년 5월 애플과 구글은 ‘Digital Well-being’을 중요한 디자인 의제로 채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디자이너도 시대에 발걸음을 맞출 필요가 있다.
'뇌는 예측불허를 사랑해' 끝.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