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소리를 만들다.
“남과 다른 소리를 주세요"
색소폰 전공의 길에 들어서며 드렸던 기도이다.
좋은 소리는 주관적일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안정적이고 편안한 소리가 있다. 그것은 축복이다.
성우의 목소리에서 등급을 느꼈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외화를 더빙하는 목소리와 동네 마을버스 광고에서 들리는 성우의 목소리 차이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고급스럽지 못하다고 등급이 낮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개성이 있는 목소리의 경우 등급을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목소리 속에서 느껴지는 차이는 존재한다.
깊이와 품격 그리고 조금 더 고급스럽다고 느껴지는 목소리처럼 색소폰도 소리에서 격의 차이가 존재한다.
색소폰 연주자는 남다른 좋은 소리를 갈망한다. 타고나게 좋은 음색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노력을 통해서 그것을 얻는다. 무엇보다 좋은 소리의 샘플이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큰 복이라고 말한다. 잘 배우고, 잘 듣고, 추구하는 소리를 따라서 연주하면서 자신만의 품격 있는 색소폰 소리가 만들어진다.
30년 넘는 세월을 색소폰과 함께했다. 좋은 소리를 얻었는지 묻는다면 겸손하게 "아직 멀었습니다"라고 말해야겠지만, 솔직한 심정은 "내 얻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남다른 소리에 대한 갈망과 기도가 있었고, 그 부분만큼은 응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좋은 리듬과 안정적인 무대를 완성하는 자신감을 주십사 기도드리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
소리가 곧 그 사람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
그 사람의 성격과 품성 등등 많은 것이 소리를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리듬은 깊은 마음 가짐이다. 이런 말도 있다. 역시 동의한다. 안정적인 심박수와 리듬은 매우 밀접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칠면 리듬도 많이 흔들린다. 가끔 심약한 사람이 리듬도 불안하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마지막으로 무대에서의 배포라고 말하는 자신감은 타고나는 경향이 있다. 아주 무식하거나 충분히 훈련이 되어있지 않고서 무대가 편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우리는 타고나게 무대가 쉬워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조금 단순한 경우가 많다.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러운 부분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곧 소리라면 굳이 소리를 디자인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더 좋은 소리를 추구하는 것은 연주자의 소명이다. 품격이 다른 소리의 디자인을 통해서 결국 자신의 품격을 높이는 노력이 된다.
색소폰을 전공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생각하고, 꾸준히 연습하고, 무대와 연주를 즐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 색소폰 전공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떤 틀에 소리를 가두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프랑스 재즈 색소포니스트 '미셀 쉐레'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당신의 소리에 재즈가 들어 있어요"라고 했다. 묘하게도 그 말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으로 나도 모르게 재즈 연주자의 음색을 상상하면서 색소폰 연주를 하게 된다.
현대 자동차의 제네시스의 디자이너가 제네시스라는 브랜드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 '서울'을 담았다는 글을 보았다. 샤넬 파리, 구찌 이탈리아, 버버리 런던처럼 제네시스 서울을 생각했다고 한다.
색소폰 소리에 무엇을 디자인해서 넣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