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면접의 기억
어떤 개발자에게도 첫 번째 면접은 있다. 나 역시도 첫 번째 면접을 경험했다. 아주 잔뜩 긴장한 채로 면접실에 들어서서는 면접관 분들의 질문에 답했다. 다행히도 대부분 미리 준비했던 예상 질문이었다. '서버와 클라이언트가 어떻게 HTTP 통신을 하는지', '객체지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프로젝트 해보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달달 외워뒀던 답변을 무리 없이 해내고서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다. 면접 시간이 끝나가고 마지막 질문이었다. “왜 개발자가 되려고 하시나요?”
그 질문은 자기소개서에도 적혀있었을 텐데 굳이 물어본 저 면접관은 내 자기소개서를 안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자소서에 있는 내용이니 조금 더 마음 편히, 준비해 갔던 내용을 성실히 대답했다.
"사람들이 사용하고 가치를 느끼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보람 차고 즐겁습니다. 언제까지나 즐겁게 개발하고 싶습니다". 따로 준비해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진심이었기에 면접 중에 했던 대답 중에 제일 쉬운 대답이었다.
내가 신입이던 시절은 아직 사람들이 인문학에 기대가 컸던 시기였다. 2011년 3월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2 제품 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입니다.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해 왔지요.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애플이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기술을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사실은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합니다.”
사람들은 '인문학'과 'IT 기술'의 융합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사용자 가치와 경험이 서비스 경쟁력을 결정짓고, 인간과 사회에 가치가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에게는 기회였다. 사실 스티브 잡스의 말은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회가 융합형 인재를 원하고 있으니 문과 출신이지만 개발을 공부한 나야말로 이 시대에 적합한 인재가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도 전공이 인문학인데 개발할 때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겼고. 스티브 잡스가 말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이라는 것은 잘 몰라도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는 서비스를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이 즐겁다면 그게 바로 융합형 인재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면접 결과는 나쁘지 않았는지, 난 이름만 대면 아는 IT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신입 개발자에게 맡겨지는 일은 대단치 않았다. 기존 API에 파라미터를 몇 개 추가한다던가, 외부 요구사항에 맞게 라이브러리를 버전업 하거나, 장애 알림이 울리면 원인을 확인하고 대응했고, 배포 프로세스를 개선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기보다는 기존 시스템을 유지보수하고 개선하는 작업이었다.
대단치 않은 일이라도 난 개발 자체가 즐거웠다. 클린코드니, 함수형 프로그래밍이니, MSA니 기술적으로 배울 것들이 많았고 애자일, 스크럼, 회고와 같이 팀워크와 프로젝트 관리도 흥미로웠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내가 뭐든 만들어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배우는 일은 재미있었고 배운 것을 적용하고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는 작업만으로도 개발이라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서비스의 커다란 변화가 아닐지라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유용한 무언가를 만드는데 참여한다는 건 만족스럽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개발은 면접 볼 때 얘기했던 내 상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새로운 기능 개발을 하며 유연한 구조를 위해 고민해 볼 수 있겠지만, 창의적인 설계나 코드는 오히려 독이 될 때가 많다. 회사라는 커다란 시스템에서 톱니바퀴가 되어서 왜 만들어야 하는지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일정에만 맞춰 일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일정 내에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일이다. 사용자에 대해 고민하거나 내가 개발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알아보는 것은 나의 역할이 아니다. 개발자의 삶은 자유롭고 도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개발을 직업으로 삼아 회사에서 일하면서 큰 조직에서만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지만 대신 개발의 즐거움을 많이 잃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들 설계하고 구현하며 느낄 수 있는 기쁨과 누군가 내가 만든 것을 감사히 여기고 사용한다는 보람과 뿌듯함 말이다. 내가 '일조' 했다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