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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깍공방 Sep 09. 2024

딸깍공방 비긴즈

만드는 일의 즐거움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나 그렇듯 방학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겠지만, 방학 숙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 거다. 개학이 며칠 안 남았을 때야 부랴부랴 날씨를 떠올리며 한 달 치 일기를 몰아 쓰거나, 방학을 충분히 즐겼던 과거의 나를 탓하며 몇 가지 숙제는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미리미리 해두었던 꽤 좋아했던 숙제도 있었다. 우리 학교는 일기 쓰기나 방학 숙제 교재를 풀게 하는 것 외에도 자유도가 높은 숙제를 하나씩 내주었다. 하고 싶은 것을 정해 결과물을 가져오면 되는 숙제였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정해서 해내면 되는 숙제라니, 그때는 이렇게 날로 먹어도 되나 싶었다.


내 자유 숙제는 항상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중 하나가 ‘우유팩으로 로봇 만들기’였다. 그리고 ‘우유팩 로봇’은 나의 첫 만들기의 기억이다. 팔다리가 움직이거나 합체를 하는 거창한 로봇은 아니었다. 우유팩 10개 정도를 이어 붙여 팔다리를 만들고, 색종이를 붙여 꾸민 50cm 정도 되는 로봇이었는데, 당시의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내가 창조한 가장 커다랗고 근사한 녀석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내가 우유팩을 재료로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로봇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실제로 구현해 냈다는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꽤 놀랍다. 디테일한 설계는 없었지만 머릿속에 완성된 모습을 그려내고, 그 모델을 구상한 뒤 부족한 우유팩을 모아 재료를 마련하고, 풀과 테이프, 가위를 이용해 자르고 붙여서 마침내 로봇을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엇을 만들지 떠올리는 과정도 즐거웠고, 구상한 모델을 그대로 구현해 내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설계 과정은 하얀 도화지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설렘이 있었고,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미완성의 빈칸을 채워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만들고자 하는 모델이 매력적일수록 그걸 구현하는 과정이 더 즐거웠다. 다 완성되었을 때의 뿌듯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우유팩 로봇을 완성하고 느꼈던 벅참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우유팩을 이어 붙이던 그때의 마음이 이어졌는지 지금도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어 무언가 만들고 있다. 3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으니 아직도 우유팩 로봇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기에, 회사라는 커다란 조직의 일부로 서비스를 만든다. 그러다 문뜩 떠오른다. 아직도 마음 한 켠에 어릴적 느꼈던 우유 로봇 만드는 즐거움이 남아 있는가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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