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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Dec 15. 2020

 [시네마 톡] 배트맨 리턴즈(배트맨 2)

동화적 상상력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양면성


지금까지 배트맨 단독 시리즈는 총 7편이 만들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7작품이 모두 감독의 색깔이 여지없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1,2편은 팀 버튼의 동화적 상상력이, 3,4는 조엘 슈마허의 장사꾼 기질이, 프리퀼인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극사실주의가 잘 담겨져있다. 이 작품들 중 최고는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시리즈들이지만 배트맨 시리즈의 실사화를 시작한 팀 버튼의 두 번째 시리즈인 배트맨 리턴즈도 상당히 좋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팀 버튼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 있으며 동시에 배트맨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배트맨은 분명 다른 영웅 캐릭터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이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비현실적 히어로인 반면 배트맨은 그가 단지 백만장자일 뿐 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가 히어로가 된 것은 다른 캐릭터들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 악인에게 희생된 부모님에 대한 증오심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 때문이다. 또 그들이 시뻘건 대낮에 원색의 옷을 입고 뉴욕시 한가운데를 누비는 반면 배트맨은 칙칙한 검정색 옷을 입고 고담시라는 가상의 도시의 밤거리를 헤맨다. 우울한 느낌이 가득한 배트맨은 분명 다른 히어로에게서 발견 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가 마음을 여는 상대는 오로지 집사인 알프레드뿐이다. 배트맨은 그 누구와도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하며 고독하게 도시를 지키는 우울한 히어로인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고담시는 그의 내면처럼 어둡다. 고담시는 부정과 부패가 가득찬 탐욕의 도시를 의미한다. 따라서 영화속 고담시의 이미지는 사이버 펑크계열의 영화에서 주로 보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녹아있다. 하지만 팀 버튼은 이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자신만의 동화적 감성을 접목시킴으로 인해 동화적 느낌의 기괴한 디스토피아를 만들어 낸다.


배트맨 리턴즈가 특별한 이유는 독특한 이미지의 고담시에 그치지 않는다. 팀 버튼은 배트맨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고민인 이중성을 영화 전반에 깔아놓는다. 이중적 정체성을 가진 박쥐가 배트맨의 태생적 동물이라는 것은 그가 이중적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이 숙명임을 이야기한다. 브루스 웨인은 영화 전반에 걸쳐 가면 쓴 자신의 모습을 지겨워한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써야하는 것이 그이다. 이중적 정체성은 비단 배트맨에게 그치지 않고 악인에게서도 나타난다. 악인을 펭귄 인간으로 설정한 것은 펭귄도 박쥐와 마찬가지로 정체성이 모호한 동물이라는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악당 펭귄맨은 인간의 몸속에서 태어났지만 펭귄과 같은 외모로 부모에게 버려지는 비운의 캐릭터다. 그는 인간과 펭귄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인간으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악행을 저지르는 불쌍한 캐릭터인 것이다. 결국 그는 배트맨과 같은 불행한 과거를 안고 정체성을 고민하는 똑같은 캐릭터이다.


배트맨 리턴즈에는 또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캣우먼인데 이 캐릭터는 스핀 오프로 제작까지 됐을 정도로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안티 히어로이다.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던 셀리나 카일은 회사에 치명적인 기밀을 알게 되며 사장이던 맥스 슈렉에게 비참히 살해된다.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고양이에 의해 환생한 그녀는 이전의 수동적 여성의 이미지를 버리고 남성에 대한 증오를 간직한 팜므파탈적 캐릭터로 거듭나게 된다. 그녀의 탄생은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부르스 웨인(배트맨)을 따라 동화속 공주님처럼 사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할 일을 하고야 마는 그녀의 모습은 능동적이고 적극적 여성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캣우먼이 배트맨 리턴즈에서 갖는 의미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 또한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이중성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는데 단단히 일조를 하고 있다. 그녀 또한 가면속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캐릭터이다. 이는 배트맨과의 관계를 통해 극대화 된다. 영화의 중반부 부르스의 집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셀리나는 그와 달콤한 키스를 나누며 사랑을 확인 한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장면에서 둘은 가면을 쓰고 서로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댄다. 두 개의 페르소나와 두 개의 관계는 영화가 나타내고자 하는 이중성이라는 명제를 조금 더 명확히 해주고 있다. 또 재미있는 장면으로는 가면무도회 시퀀스가 있다. 이 시퀀스는 가면이라는 주제를 조금 더 명확히 드러낸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는 곳에서 유일하게 가면을 쓰지 않고 가면이 지겹다고 이야기하던 두 사람은 이내 서로의 정체를 알아버린다. 이중적 관계가 하나로 모아지는 장면이다. 이제 싸울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할 것인가? 가면 속의 관계와 가면 밖의 관계 사이에서 둘은 혼란스러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배트맨이 캣우먼에게 던지는 말이 있다. “우리는 똑같아. 무서운 양면성” 영화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이중적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배트맨, 캣우먼, 펭귄맨, 뿐만이 아니라 물리적 가면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이중적인 맥스 슈렉까지... 결국 그들은 이중적 모습을 하고 이중적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배트맨 리턴즈에서는 우리들의 또 다른 가면을 볼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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