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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Dec 15. 2020

[저스트 톡] 달리기: 희망과 절망에 관하여

영국의 문화 기호학자인 스튜어트 홀은 ‘텍스트는 지배적이거나 선호되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말을 하였다. 수용자는 자신의 경험, 배경, 환경 등을 바탕으로 동일한 텍스트를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이었던 SES의 달리기는 원래 윤상의 곡으로 수많은 수능 준비생들에게 위로를 건네던 곡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경쟁, 눈물나게 힘들어도 언젠가는 그 끝이 있고 그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그들에게 눈물나게 힘든 경쟁은 수능, 입시이고 언젠가는 그 끝이 있다는 것은 대입의 순간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끝난뒤엔 지겨울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가사는 대입과 동시에 주어지는 자유로 해석되며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전달된다. 한때 힘들게 대입을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가사는 가벼운 멜로디, SES의 순수한 이미지 등과 복합적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희망적인 노래로 읽힌다.


그러나 원작자인 윤상은 이 노래가 희망적인 노래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 노래의 가사를 잘 들여다보면 희망적인 노래라기보다는 체념조의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생의 경쟁에서 밀려난 루저가 이 세상을 등지며 읊조리는 탄식... 그것이 '달리기'라는 경쾌한 노래 뒤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이다. 노래 말미에 반복되는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라는 가사는 희망이 아닌 체념으로 읽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면 원작자 윤상의 말을 참고해 조금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보자.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된 인생이라는 달리기, 남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지만 성과는 그만큼 나오지 않는다. 결국 달리기는 힘에 부치고 지겨울 만큼 오래 쉴 수 있는 인생의 끝을 선택한다.


이 노래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은 희망이 절망으로 뒤바뀌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 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동반자살의 러쉬와 88만원 세대들의 아픔.. 순수한 이미지를 가진 아이돌스타 SES의 발랄한 노래가 최근의 사회적인 이슈와 복합적인 화학 작용을 일으키면 노래의 역설적 느낌이 극적으로 분출된다.  


음악이 주는 역설적인 감정은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희망과 절망의 사이에서 이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 주어진 텍스트가 절망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희망으로 바꿔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자신이듯이 주어진 상황이 절망적이라도 그것을 희망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우리 자신이다. 억울하고 힘들고 이 세상이 다 적으로 둘러싸인 것 같더라도 이를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세상은 충분히 살만한 곳이다. 이 세상과 지금 나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 노래는 결국 희망도 절망도 아닌 선택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희망을 선택하느냐 절망을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이다. 텍스트가 지배적이거나 선호되는 의미로 해석되듯이 상황 또한 지배적이거나 선호되는 의미로 해석되기 마련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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