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정치적 올바름, 밥은 신념보다 강하다.
논란의 영화 뮬란을 봤다. 뮬란은 과거 보수적이었던 디즈니가 PC 정책을 통해 르네상스를 만들어낸 90년대 말에 등장한 디즈니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여성캐릭터 중 하나이다. 최근 더욱 진일보한 디즈니의 PC 정책의 흐름에서 뮬란은 충분히 다시 제작해 볼만한 캐릭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뮬란은 개봉 전부터 큰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의 엔딩크래딧에 담긴 신장위구르 자치구 정부기관에 대한 감사표시와 유역비의 홍콩 경찰지지 발언이 그 이유이다. 중화사상에 희생된 두 지역의 아픔에 대해 무시하는 영화 내외의 문제는 급기야 영화 보이콧 사태까지 몰고 갔다.
영화는 과거 만화에 비해 한껏 진일보한 여성주의 영화를 표방한다. 주인공 뮬란의 적수로 여성 캐릭터를 배치하고 이들이 서로 대결하고 공감하는 장면을 통해 남성중심 사회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는 여성의 처지를 원작보다 더욱 밀도있게 그려내었다. 디즈니가 과거의 유산인 수동적 여성상과 철저한 단절을 표방했던 애니메이션 ‘뮬란’이 개봉된 이후 변화한 시대만큼 더욱 진일보한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원작의 캐릭터들이 많이 변형되었다는 점과 뮤지컬적 요소를 모두 배제한 것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이런 요소 때문에 뮬란이 던지려는 메시지가 더욱 잘 부각되었다고 생각한다. 구성과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역시 제국주의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뮬란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충성, 용기, 진실”이다. 이중 “충성”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문제적으로 느껴진다. 유역비의 발언, 신장 위구르에 대한 문제가 없었다면 그냥 시대적 배경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 두 가지 문제와 황제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저 문구가 복합작용을 일으키며 중화사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중국의 제국주의가 자연스럽게 연상이 된다. 사실 디즈니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엄청난 시장인 중국의 눈치를 많이 본 것으로 알려져있다. 무슈 캐릭터를 없앤 이유도 중국에서 신성시되는 용을 희화해서 그리는 것이 중국인의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아서였다고 감독이 밝힌 바가 있다. 디즈니가 추구하는 PC 정책이라는 것이 사실 실제 디즈니의 신념이라기보다 시장이 원하기 때문이라는 일각의 생각을 실사판 “뮬란”이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젠더 정치 문제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했는지 모르겠지만, 더 큰 문제일 수 있는 소수민족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해버린 영화. 뮬란의 정치적 올바름이 반쪽짜리로 느껴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