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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 Mar 20. 2020

알베르 까뮈 <페스트>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0)  평행세계가 있을까 할 정도로 1947년 가상의 도시 오랑과 코로나 시대의 2020년이 닮아서 놀랐다.

1) 2020년에도 여전히 인간은 물건을 사재기하고, 가짜 뉴스를 믿고 또 그것을 퍼뜨리고, 어떤 신념에 대한 맹신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2) 일반적으로 경제경영서, 인문학처럼 팩트 기반의 글들은 해외서적도 그나마 읽을만한데, 번역된 해외문학은 왠지 와 닿음이 덜해서 전반적인 스토리만 읽어나갔는데, 감히 평가할 수준은 못되자만 독자로써 김화영 님이 번역한 '페스트'는 알베르 카뮈의 문체까지 느껴질 정도로 잘 번역되었단 생각.

사람들은 여전히 개인적인 관심사를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그 질병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은 자기들의 습관을 방해하거나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해서 특히 민감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애도 태우고 화도 내고했지만, 그런 것이 결코 페스트와 맞설 수 있는 감정은 되지 못했다. 예를 들어서, 그들의 최초의 반응은 행정 당국에 대한 비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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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페스트가 여러분에게 관여하게 된 것을 반성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 설교가 우리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예시 판사 보통 씨는 의사 리유에게 자기는 파늘루 신부의 논조를 '전혀 흠잡을 데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명백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설교는 그때까지 막연했던 어떤 생각. 즉 자기들은 미지의 어떤 죄악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감금 상태를 선고받았다는 생각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생활을 계속해 가며 그 유폐 생활에 적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그때 부터 오로지 그 감옥에서 탈출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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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카페에서 '양질의 술은 세균을 죽인다'라는 광고문을 써 붙이자, 알코올이 전염병을 예방해 준다는 것이 세간에 이미 상식처럼 여겨져 오던 차라,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하게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다. 매일 밤 2시쯤 되면 카페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당히 많은 주정꾼들이 거리거리를 가득 매우면서 서로 낙관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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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와 침묵 속에서, 시민들의 겁에 질린 마음에는 그렇잖아도 모든 것이 더욱 심각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하늘의 빛깔이나 흙의 냄새가, 처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느껴졌다. 모두들 날이 더워지면 전염병이 더 기승을 부린다는 것을 아는지라 두려워하는 중인데, 어느새 여름이 정말 자리 잡는 것을 누가 봐도 다 알 수 있었다. 저녁 하늘을 나는 명매기 울음소리도 도시의 머리 위에서 더욱 가냘프게만 들렸다. 그것은 우리 고장에서 지평선이 멀어지는 6월의 황혼과는 이미 어울리지 않는 울음소리였다. 시장의 꽃들도 이제는 봉오리가 맺힌 상태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벌써 활짝 다 피어 버려서 아침에 팔리고 나면 먼지가 켜켜이 앉은 보도 위에 그 꽃잎들이 수북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봄은 앉은 보도 위에 그 꽃잎들이 수북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봄은 이미 기진해 버렸고, 가는 곳마다 지천으로 피어난 수천 가지 꽃들 속에서 마음껏 무르익었다가, 이제는 페스트와 더위라는 이중의 압력에 차차로 짓눌려 오그라들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모든 시민들에게 있어서 그 여름 하늘은 그리고 먼지와 권태에 물들어 뿌옇게 변해 가는 그 거리거리는, 시의 분위기를 매일 무겁게 만들고 있는 백여구의 시체들 못지않게 무시무시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줄기차게 내리쬐는 태양, 졸음과 휴가의 맛이 깃드는 그 시간도 이제는 더 이상 전처럼 물과 육체의 향연을 즐기도록 권유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그것들은 밀폐된 침묵의 도시에서 공허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행복한 계절들의 그 구릿빛 같은 광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페스트가 스며든 태양이 모든 빛깔의 광채를 꺼버렸으며, 모든 기쁨을 쫒아 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그 병마가 가져온 엄청난 변혁중 하나였다. 모든 시민들은 대개 즐거운 기분으로 여름을 맞이하곤 했다. 그때가 되면 도시가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리면서 젊은이들을 해변으로 쏟아 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이번 여름에는 가까운 바다로의 접근이 금지되고 육체는 이미 기쁨을 누릴 권리가 없었다. 그러한 조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역시 타루가 그 당시 우리들의 생활에 대한 이미지를 충실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그는 물론 페스트의 전반적인 진행과정을 더듬어 보면서 그 병의 첫 고비는, 라디오에서 사망자 수가 매주 몇백이라는 식으로 보도하지 않고 하루에 92명, 107명, 120명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시점이 계기였다고 지적한다. ‘신문과 당국은 페스트에 관해서 더할 수 없이 교묘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 그들은 130이 910에 비해서 훨씬 적은 수라는 점에서 페스트보다 몇 점 더 앞지른 것이라고 상상하는 모양이다. 그는 또한 전염병이 보여주는 비장한, 또는 연극 비슷한 면면도 소개한다. 일례를 들면, 덧문을 닫은 채 인기척이 없는 어떤 동네에서 갑자기 머리 위로 창문을 열어젖히고 큰 소리로 두 번 고함을 지르고 나서는 짙은 그늘에 잠긴 방의 덧문을 다시 닫아걸고 말았다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 같은 것이다. 그리고 또 딴 데서는 박하 정제가 약국에서 동이 났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혹시 걸릴지도 모르는 전염병의 예방에 좋다고 해서 그것을 사 가지고 빨아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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