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E Jul 15. 2021

할머니의 공포

이렇게라도 있어줘서 고마워요


할머니가 여든이 되셨을 무렵부터 할머니의 건강상태는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정신은 초롱초롱했지만, 무릎이 너무 안 좋아지셔서 무릎 수술을 했는데, 무리하게 짚고 일어나시다가 어깨 관절이 안 좋아지시더니, 누워서 일어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에 누군가가 일으켜드려야 했다.

오죽 아프셨으면 새벽에 화장실 가고 싶으실까 이불을 말아 허리에 대고 앉아서 주무셨다고 한다.

급기야 허리까지 압박골절로 일어나지도 못하기 시작하셨다.

뼈가 약해지시면서 할머니의 무게를 못 이기고 허리 척추뼈가 내려앉은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의 와상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화장실도 못 가서 식구들이 받아내었고, 자식들이 대소변을 받는 것이 할머니는 수치심과 두려워하던 일이 왔다는 생각에 점점 우울해지셨다.

대소변을 참으시고, 혹시나 화장실이 가고 싶을까 물도 안 드시고 참으셨다.


연세도 있으시지만 혈압약도 드시는지라 할머니의 수술을 해줄 병원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많은 병원에서 할머니의 수술을 거부했다.

그러다 겨우 한 군데 수술 날짜를 잡고, 허리 수술 먼저 시작했다.

난 금요일에 퇴근하고 할머니의 병원에 면회를 갔었는데, 할머니께서 나를 보시더니 엉엉 우시는 거다.

너무 놀라서 왜 우시느냐, 무슨 일 있냐 어디가 아프냐 물었는데, 할머니의 대답에 머리에 망치를 한방 쾅 하니 맞은 것 같았다.

"나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줄 알았어.. 너네가 나 버린 줄 알았어"

할머니의 공포를 알았다.

할머니 허리 아파서 수술한 거다, 며칠 있다가 퇴원할 것이다 라며 할머니를 안심시켜 드리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좀체 믿지 않으셨다.

요양병원에 대한 할머니의 두려움은 컸고, 수술을 위한 일반병원이라는 생각은 못하신 채 아픈 몸이 짐이라는 생각에 결국 버려졌구나 라는 생각까지 하신 것이다.

수술을 한 병원에서 퇴원 후, 재활을 위해 전문시설이 갖춰진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그곳에서 할머니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아픈 고모가 같이 입원하면서 간병을 하셨는데, 할머니는 물 한 모금도 못 넘기시고 노인용 단백질 음료라도 넘겨야 하는데 그조차도 못 넘기시는 것이다.

고모 말씀으로는 그때 할머니 상태가 너무 안 좋아지셔서 곧 돌아가실 것 같았더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환자 보호자분이 오이 고추를 몇 개씩 나눠주셨다.

할머니는 건강하셨을 때 풋고추를 좋아하셨는데, 시원하고 깔끔한 맛의 음식들을 선호하셨다.

옆에서 고모가 할머니가 평소에 좋아하시던 거니 혹시나 하고 작은 크기로 톡 분질러서 입에 넣어드렸는데, 그건 조곤조곤 씹으시더니 삼키시는 거다!

할머니는 그렇게 고추 한 개를 다 드셨다.

옆에서 그간 할머니의 상태를 지켜보셨던 다른 환자분이나 보호자분들은, 어이구야 어머니 이거는 드시네! 하시면서 나눠 받은 오이 고추를 모두 할머니께 쥐어 드렸다.

마치 자신들의 어머니 인양 할머니가 음식을 넘기시는걸 다행이라며 공감해주셨고, 이제 건강해지시겠다 하시며 기뻐해 주셨다.

뒤 할머니는 점점 음식을 받아들이셨고, 일어서지는 못하셨지만 그렇게 퇴원하셨다.


그 뒤로도 할머니는 계속 누워계셨고, 식구들은 돌아가면서 할머니의 간병을 하며 할머니의 병을 낫게 해 줄 병원과 방법을 찾은 지 몇 달째,

고모에게 전화가 한통 왔다.

갑자기 할머니의 상태가 안 좋아지셨단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할머니가 말을 어눌하게 하시고, 간단한 단어조차 기억을 못 하시는 것이다.

자기 전에 분명 할머니와 도란도란 즐겁게 얘기하고 잤는데, 일어나 보니 할머니가 말을 못 한다.

성대가 아닌 이마로 소리를 내는 듯한, 평소와는 약간 다른 격양된 목소리.

바로 병원 예약을 잡고 MRI, CT 등 검사를 했지만, 순탄치는 않았다.

시끄러운 MRI 촬영과 관에 갇힌듯한 검사기구에 할머니가 놀라서 계속 움직이면서 내보내 달라고 하시는 통에 검사조차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번, 며칠의 텀을 둬 가면서 시도한 끝에, 겨우 검사를 마쳤다.

치매가 아니길 바랬다.

나을 수 있는, 치료할 방법이라도 있는 다른 무엇이길 바랬다

며칠이 지났을까. 다시 한번 고모에게 전화가 온다.

뇌출혈, 뇌경색이 모두 있다고 한다.

하룻밤 새에 일어난 일이 너무 당혹스러웠지만, 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셨다"라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뇌출혈은 골든타임을 놓치면 사망률이 아주 높은 질병이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어쩌면 패륜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할머니가 살아계신다 라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뻤다.

터진 뇌혈관이 중요한 곳이었으면 생명이 위험했다.

할머니는 그곳을 비켜가서 살아남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 뒤로 할머니는 치매를 얻었지만, 생명도 같이 얻었고, 우리 가족의 간병 생활도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낑깡이 왜 귤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