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E Aug 12. 2021

전쟁을 지나서

관산댁

할머니는 동네분들에게 "관산댁"이라고 불리셨는데, 할머니의 친정이 장흥 관산이라서 그렇게 불려진다고 했다.

할머니의 어릴 적은 매우 가난해서, 보릿고개가 아주 슬프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6.25 전쟁을 어릴 때 관통한 세대이시다.

당시의 일을 말씀하시기를, 안 그래도 가난한 집이 전쟁통에 더 가난해졌고, 풀뿌리며 나무 속껍질을 뜯어다가 죽을 끓여 먹었는데,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지금 온갖 풀이름을 다 알고 계시는 게 그때 먹었던 풀들에서 몸소 기억한 이름들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힘들었던 전쟁통에 할머니께 남은 딱 하나의 좋은 기억이 있다.

6.25 전쟁 당시 할머니는 초등학생인 나보다 훨씬 어린아이 일 때였는데, 동네에 군인들이 쳐들어와서 동네 사람들을 데려가셨다고 한다.

어린 할머니는 무서워서 동네 구석에 숨어계셨는데, 어느 젊은 군인이 할머니께 와서 데려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그만두셨단다.

"너는 이쁘니까 안 데려갈게. 여기 꼭꼭 숨어있어야 한다."

라고 말하면서.

할머니는 그때의 기억이 충격이었지만, 이쁘다는 말을 들어서 기분이 좋으셨다면서, 자랑하듯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약혼사진

그렇게 전쟁을 겪고, 나이가 차서 시집을 가는데, 한번 가난은 평생 할머니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오죽했으면 시집가는데 혼수로 소 한 마리를 끌고, 할아버지와 둘이서 하루 꼬박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시댁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대단한 혼수는 아니었지만, 소 한 마리 해주느라 외증조할아버지께서 아주 고생하셨단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는 예쁘다 라는걸 매일 듣고 살았었는데,

할머니의 약혼 당시 사진을 보면 지금의 나랑 똑같이 생겼다.

나는 미의 개념이 거의 없을 때라서, "우리 할머니는 예쁘다"라는 걸 거의 학습하듯이 기억했다.

어른이 되어서 할머니의 옛날 사진을 보면 역시 예쁘시다.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는 세계 최고로 잘생기셨다.

키도 크고

어른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의 공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