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코 19화
얼마나 잤을까.
화들짝놀라 잠에서 깨보니 산실안은 조용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비쥬도 자고
꼬물이들도 다 잠이 든 것 같았다.
시커먼 덩어리들이 몇개 있는 걸 보고 꼬물이나 태반이라
생각했다.
비쥬 먹을것을 챙기려고 부엌으로 나오니
조그만 부엌창으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한 것도 없는데도 마음이 벅찼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새 날이 밝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의미있는 날이다. 새 생명이 어렵게 세상을 나오는데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일조를 한 것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잠을 청했다.
또 얼마를 잤을까. 출근준비하느라 일어난 남편이 날 깨웠다.
"일어나봐. 이게 뭐야? 태반인줄 알고 버릴려고 했는데. ."
눈도 채뜨지 못한채 남편이 가져 온 것을 바라봤다.
화장지 위에 검붉은 덩어리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정신을 차릴려고 눈을 부릅떴다.
자세히 살펴보니 가느다란 실선으로 그어놓은 듯 어떤 형상이 있었다. 과학시간에 보았던, 인체의 신비전 같은 전시장에서 보았던 임신한 여인의 몸속에 들어 있던 태아의 모습.
그것과 흡사할정도로 비슷한 것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비쥬가 얼마나 핥았는지 미라가 된 고양이 태아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깨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얼마나 컸으면 저렇게 예쁜 조각품처럼, 고운 돌처럼 빛이 날까. 태아를 햝는 비쥬의 마음은 어땠을까.
미라가 된 고양이 태아는 두마리였다.
초음파로 뱃속에 세마리가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총 네마리였다. 두마리는 건강히 태어나고 나머지 두마리는 미라가 된채로 태어났다. 외롭게 무지개다리를 안건너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까.
태아를 화장지에 감싸고, 다시 깨끗한 천에 감싸고
예쁜 상자에 함께 담았다.
비쥬는 아기들 냄새가 나는지 상자곁에서 떠날줄 모르고 계속 낑낑거렸다.
새벽 1시 집에서 나왔다.
불법인줄 알았지만 묻어주고 싶었다.
한참을 서성이다 꽃나무가 있는 곳 앞에 왔다. 그리고 그 주변 언저리를 팠다. 혹시나 다른 야생동물이나 산책 나온 강아지가 냄새를 맡고 팔까봐 깊게 파내려갔다.
이 공간에 존재하는 소리는 남편과 나의 흙 파는 서걱서걱 소리 뿐이었다.
구멍을 만들고 상자를 넣고 흙을 덮었다.
고양이 태아는 왜 미라가 되었을까.
혹시 임신인줄 모르고 맞았던 예방접종 때문에? 혹시 모르고 먹은 다른 약들 때문에...?
임신한 걸 알고 약이나 주사를 맞지않았다면 미라가 되는 걸 막을 수 있었을까.
그랬을까....좀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을 주었다면 되지 않았을까....
오늘 하루 꼬물꼬물 거리는 어여쁜 생명들이 태어나고 이 세상에서 숨 한번 쉬어보지 못한 존재들이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한참을 꽃나무 앞에 있었다.
부디 다음 생에는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기를, 꼭 못다핀 꽃을 피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