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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gnotant Mar 31. 2022

나는 왜 10년 동안 매일같이 그만두고 싶었을까

퇴사를 꿈꾸는 간호사의 일상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사회생활을 한지 만 10년이 되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지겹도록 그만두기를 결심했고 또 포기했었다. 포기한 이유는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경제적인 이유가 팔 할이었고, 나머지는 딱히 그만둔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겹도록 이 직업을 그만두려 했지만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내가 그만두고 싶었던 문제에 대해 곰곰이 그리고 끝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늘 생각의 중간쯤에서 다른 노선, 또 다른 노선으로 이어져 결국 ‘다음에 뭐 먹지.’ 같이 흐지부지 끝났었다. 이 또한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직업이 싫은 이유가 과연 뭘까.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집단의 문제일 수도 있다. 모든 걸 내 문제로 치부하기도 싫지만 그렇다고 내 문제가 하나도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시작부터 적자면 아픈 사람을 보기 때문에 간호사가 싫은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보니까 힘들겠어.”라고 이야기한다. 아픈 사람을 보는 건 힘든 일, 즉 퇴사의 이유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게 이 직업을 하면서 유일하게 얻는 기쁨이다. “고마워요.” “ 선생님도 고생이시네요.” 한마디는 언제 들어도 가슴 한켠을 따뜻하게 만든다.


다시 돌아와 나는 왜 10년간 단 한해도 빠지지 않고 그만두고 싶었을까. 개인적인 성향과 내가 느낀 이 집단의 특징을 써보면서 고민해 보고자 한다. 나의 업무적인 성향은 한 업무에 적응하기까지 6개월 정도, 상대적으로 긴 적응기간이 필요하고 단순 암기로 머릿속에 업무를 도식화할 수 없는 사람이다.  개인적인 성향으로는 타인에게 피해 주는걸 극도로 싫어하고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나에게 모진 그런 성격.


그러면 이 집단의 특징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이 집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군대보다 더 한 군기.’ ‘태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타인의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한다는 그럴싸한 구실은, 어쩌면 타인을 환자로 만들어 이 직업군을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직업에 대한 어긋난 사랑을 숨기기 위한 변명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하게 한다.


‘태움’을 생각하다 보니 잠시 옛날 옛적 나의 신규 시절인 10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나는 그 해 모 대학병원에 거의 200명 가까이 되는 인원 속에 한 명으로 입사했다. 부서에 몇 명이 배치가 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한 명이 퇴사하고 석 달이 지났을 때쯤 또 누군가가 퇴사하고, 그러면 200명 중 누군가가 또 채워지고 채워졌다. 새로운 신규가 오면 또 같은 업무를 가르치고 나가면 또 가르쳤을 거다. 그래서 힘들었을 거라는 걸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 신규로 입사한 우리는 출근시간 40분 정도 일찍 출근해야 하고 쉬는 날이면 배우러 나간다는 이유로 출근했어야 했다. 옆에 있는 내 동기는 폭언으로 한 달 사이에 10kg가 빠지고 나는 오후 출근 일 때는 새벽 1시 이전에 집에 간 적이 없었다. 매 번 선배들이 먹을 음식을 사들고 출근해야 했고, 신규 재롱잔치라는 이유로 쫄쫄이를 입고 춤을 췄어야 했으며 밸런타인데이 때 사온 파리바게트 초콜릿은 싸구려 초콜릿이라며 한소리를 들었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고 또 똑같이 200명 가까운 인원을 뽑았다. 일 년 전 뽑은 200명은 다 어디로 간 걸까. 10년 전 일이다. 과연 아직도 이렇게 하는 곳이 있을까.


집단의 문제에 대해 다시 이어서 써보자면, 4년간 학교에서 공부만 하던 일반인을 8시간 동안 몇십 명의 환자를 혼자 볼 수 있는 간호사로 만들기에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보통 조금 큰 대학병원에서는 1:1로 프리셉터라는 짝지를 붙여주지만 그마저도 한 두 달, 그 이후에는 몇십 명의 환자를 혼자 봐야 한다. 신입이기 때문에 환자가 ‘3’ 정도만 아프고 10년 차 간호사가 근무하기 때문에 환자가 ‘10’ 정도로 아프지 않다. 사고는 늘 터지고 환자는 늘 아프고 경력 석 달 간호사나 오 년 차 간호사나 업무의 강도는 똑같다. 석 달 된 간호사가 8시간 동안 해놓은 업무는 구멍도 많고 실수도 많다. 그러면 그 뒤 출근한 간호사가 오롯이 다 구멍을 채워야 한다. 늦은 보고에 대한 욕도, 늦은 일처리에 대한 욕도 신입 뒤 간호사가 다 듣는다. 신입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당사자 근무의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플러스알파다.  난 이게 가장 근본적인 간호사 집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시작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앞서 적었던 내 개인적인 성향과 집단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며 적어보면 첫 몇 년간의 퇴사 이유는 ‘내 한몫 다 못하고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 때문이었다. (10년 차인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3교대 근무 특성상 내 업무, 네 업무 나눠진 게 없고 자신의 능력만큼 일처리를 좀 더 많이, 잘하고 갈 수 있는 부분인데 신규일 때는 반의 반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지금도 신경 쓴다고 하지만 사람인지라 빠지는 부분이 있다. 누군가가 나의 구멍을 발견하고 한숨 쉬며 일처리를 하는 상상을 하면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 타인에게는 관대한 편이라 내 앞 근무자가 빠진 게 있다면 ‘이거 빠졌다고 사람 죽는 것도 아닌데’ 하며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러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1. 내 성향상 남한테 피해 주는 거 너무 싫다.  2. 누적된 데이터 상 ‘사람 죽는 것도 아닌데.’하며 넘어가는 사람은 몇 없다. 3. 일 못하는 애로 낙인찍히는 거 소름 끼친다. 그렇지만 태생이 꼼꼼한 성격이 못되어 늘 빠트리는 게 있었고 다음날 출근할 때면 내가 어떤 걸 빠뜨리고 퇴근해서 남이 채워 줬을까 하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그렇다. 어느 정도 이 집단에 적응하고 나서 새롭게 생긴 퇴사의 욕구는 너무 남에게 관심이 많고 그걸 말하고 다니길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인데, 이건 성비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된 문제인 건지 아니면 어느 집단이나 다 똑같은 건지 겪어보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입사 첫날 자리에 앉혀놓고 하는 수많은 질문은

- 아버지 직업 (기혼일 경우 남편 직업)

- 집( 기혼일 경우 아파트 인지 빌라인지 듣고 자가인지 전세인지 누구 명의 이은 지 묻는다.)

- 가족 관계

위의 질문을 기본으로 시작해서 집 수저 개수까지 물어보는 수준(비유다.)까지 가는데 일주일만 지나면 말 한마디 안 해본 다른 사람들도 내 정보를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 소문이 난다. 그리고 이상하게 소문만 그 이야기로 수다의 꽃을 피운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수다판에서 더욱 이상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소수의 삐뚠 시선을 가진 사람들 입에서는 예의 바르면 착한척하는 애, 칭찬하면 사회생활하는 애, 조용하면 사회생활 못하는 애로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기 시작해 또다시 수다판에 오른다. 수다판에는 주제가 떨어질 일이 없다. 없으면 만들어 올리면 그뿐이다. “ 요즘 걔 봤어?~” 시작이다.


위에 적은 이유를 제외하고도 소소하게 많은 일들이 가득했던 10년은 올해 결국 나를 인간 심리를 공부하는 심리상담대학원으로 가게 만들었다.


저 인간들은 도대체 왜 저런 걸까.

그리고 나에게 왜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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