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리더스 포럼 제주 2022>의 공식 행사와 공식 출장을 마쳤습니다. 출장은 끝났으나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 하루 제주도에 더 머물렀습니다.
제주도 한라산에는 구상나무(Abies koreana E.H. Wilson)라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구상나무는 한라산 해발 1,400m 이상에서 자라며, 한라산에는 약 800만 평의 면적에 구상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구상나무의 학명에 koreana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의 고유생물입니다.구상나무는 1907년도에 프랑스의 신부님들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특히나 구상나무는 기존의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가문비나무(Picea jezoensis) 보다 키는 작고, 잎이 견고하고, 가지와 가지 사이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에 개량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나무가 되었습니다.
구상나무가 해발 1,400m 이상에서 자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구상나무는 서늘한 곳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라산이 따뜻해짐에 따라 구상나무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상나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씨앗(종자)을 좀 더 해발이 높은 곳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속도는 지구온난화의 속도보다는 상당히 느립니다.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4년 동안 1만 3,957그루 정도 고사했다고 합니다. 구상나무의 분포 면적도 2017년 683ha에서 2021년 606ha로 32ha 정도 줄었다고 합니다.
한라산 곳곳에는 죽은 구상나무 고사목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상나무의 고사목 비율은 윗세오름 일대가 가장 많다고 하여 이제야 눈으로 확인하러 갔습니다.
제가 간 코스는 영실-윗세오름-남벽분기점-윗세오름-어리목 코스입니다. 두 코스를 보기 위해 제주 시내에서 240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영실매표소 정거장에서 버스를 하차한 후 히치하이킹을 통해 등산로 시작점으로 이동했습니다. 만약 영실매표소 정거장에서 걸어서 등산로 시작점으로 이동한다면 30~40분 정도의 시간이 추가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코스는 5시간 정도 걸렸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 시간 정도 산행 후 해발 1,600m 고지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는 구상나무 군락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슬픈 증거인 구상나무 고사목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한라산 단풍과 대조되는 구상나무 고사목이 더욱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여길 지나치며 아무런 생각이 없이 갈 수 있으나, 지구온난화로 인해 힘없는 나무가 서식처를 잃어가는 현장이라고 알리고 싶었습니다.
반면에 해발 고도 1,700m 정도 올라가면 그나마 다른 풍경이 나옵니다. 좀 더 서늘한 곳으로 자신의 씨앗을 보내는 것에 성공한 구상나무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해발 1,700m에 있는 구상나무 잎의 색은 1,600m에 있는 나무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어린 나무라 그럴 수도 있으나, 자신이 좋아하는 서늘한 환경에서 자라기에 이들을 이렇게 푸르게 만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하지만 우리가 지구온난화 완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들도 해발 1,600m에 있는 구상나무들과 같은 미래가 기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