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각, 《기후정의》, 2021

기후를 읽다

by 이재형
저자 : 한재각
제목 : 기후정의
출판사 : 한티재
발간일 : 2001년 2월 27일 (초판 1쇄)



모든 국가가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


기후변화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서인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등장하는 문구입니다. 이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전 인류가 지켜야 할 대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에 ‘공동’의 책임을 지지만, 국가별 책임의 정도는 서로 다르다는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 문구 때문에 기후변화 협상은 종종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선진국들은 ‘모든 국가’에 방점을 두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함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반면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은 ‘차별화된 책임’에 방점을 두며, 산업혁명 이후 선진국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심화되었으므로 선진국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문구는 국가 간 관계뿐 아니라, 세대 간, 계층 간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앞선 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발생했다면, 앞선 세대가 더 많은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소득 계층이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고소득자가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가, 세대, 계층 사이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불평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균형을 맞출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바로 기후 정의(climate justice)입니다. 그러나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넓은 집에 살다가 좁은 집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말처럼,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 온 사람들에게 단순히 “이제는 적게 배출하라”고만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기후 정의’라는 원칙 자체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만, 그 세부적인 방법론에 있어서는 정파와 계파, 세대와 계층 사이에서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선진국들은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녹색기후기금(GCF, Green Climate Fund)과 ‘손실과 피해’ 기금(Loss and Damage)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기금 조성 자체가 아니라, 선진국들이 실질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일입니다. 그마저도 선진국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기금 출연을 미루거나 충분히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떠한 길로 가야 할까요?

우리는 정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정답대로 가려 하지 않을 뿐입니다.


기후변화협약 협상장에서 ‘연체된 지불’ 푯말을 들고 서 있는

가나의 10대 활동가 나케야트 드라마니 샘(Nakeeyat Dramani Sam)



9p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적은 기후위기 자체에 있지 않다. 우리 앞의 가장 강력한 적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지 못하리라는 비관적 무기력이다.


12p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불평등이 더욱 가중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불평등도 함께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24p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의 정도는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 현 세대보다 미래 세대, 그리고 기성세대 보다 청소년 세대에게 더욱 가혹할 것이다. 그리고 현 세대일지라도, 지구상의 모든 국가와 사람들에게 동일하지도 않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더 취약하며 더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국가와 사람들이 따로 있다.

불행하게도 그 피해와 고통의 크기는 온실가스 배출 책임의 크기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고 있는 국가와 사람들이 기후변화 가장 취약하며 더 큰 피해를 겪고 있다.


35~37p : 생존형 배출

인도 과학환경센터(CSE)의 과학자들(은) … 부국의 ‘사치성 배출’과 빈국의 ‘생존형 배출’을 구별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논쟁은 기후변화 책임의 규명이 생각보다 자명한 일이 아니라 과학 논쟁 속에 있을 수 있다는 점과 함께, 그 과학 논쟁 역시도 기후정의의 눈으로 살펴보고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39p : 기후부채(climate debt)

지금까지 선진산업국들이 대기 중에 배출하고 축적해 온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례하여 개발도상국에 갚아야 할 부채를 지고 있으며, 그것을 갚으라는 주장이다.


45p

국제 기후정의 운동은 단일한 전략적 방침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매년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 협상에 대한 개입, 화석연료 추출 산업에 대한 저항, 그리고 기업들이 주도하는 ‘잘못된 해결책’에 대한 비판이라는 세 개의 활동 방향을 가지고 있다.


54p

기후정의 운동이 과거 사회적 평등을 추구했던 사회운동과 차이를 가진다면, ‘성장의 한계’에 대해 명확히 이해한다는 점이다. 기후부정의를 바로잡는 일은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해 왔던 성장주의와 결별하는 일이기도 하다.


94~95p

2017년에 태어난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탄소 예산은 43톤뿐으로 1950년생 사람이 평생 사용한 평균 탄소예산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이전 세대가 한정된 예산을 펑펑 써 댔기 때문에 청소년 세대들은 1.5도 목표를 지키고자 한다면 매우 적은 1인당 탄소예산으로 평생을 살 수밖에 없다.


107p

파리 협약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중국 등을 포함하여 개발도상국들도 감축 의무를 진다는 점을 명시하면서, ‘차별화된 책임’보다 ‘공동의 책임’ 쪽에 더 무게를 싣게 되었다.


109p

2002년에 발리에서 세계 각국의 활동가들이 모여서 기후정의 원칙을 선언한 것부터 따지자면, 국제 협정문에 ‘기후정의’가 언급되기까지 13년이나 걸린 셈이다.


128p

두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탈동조화(decoupling)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탈성장(de-growth)의 길이다. 탈동조화의 길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 혹은 미련을 놓치 못한 채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일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 탈성장의 길은 한정된 지구 생태계 안에서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며 성장을 포기해야만 목표로 하는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141p

전 세계 소득의 52%를 차지하는 상위 10%의 부자들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49%를 배출하고 있다.


171p

기후정의의 관점과 논의는 기후변화를 야기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으며 그 피해는 누가 보고 있는가라는 간명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195p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우리의 삶이 의존하고 있는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완전히 탈탄소화하는 것이다. 그와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마련되어 있고 이를 실현하려는 구체적인 노력도 진행되고 있으며, 또 일부 진전도 있다. 그러나 너무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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