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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감 Dec 13. 2022

우리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사업 콘텐츠가 확대됨에 따라 추가 채용이 반드시 필요했던 때, 채용 프로세스에서 내가 가장 공을 들인 생각은 '우리 회사에 지원한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할까?'였다. 지원한 사람들이 좋은 경험을 해야 그로부터 만들어진 알맹이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건덕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회사 내부적으로는 충원이 필요했지만 지원자 수는 적었고, 하물며 조금이라도 있던 지원자들마저도 절반 이상이 인터뷰에 참가하지 않고 있었다. 


인터뷰 일정을 잡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내가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 어떤 어조로 이야기하는지, 얼마나 친절하게 반응하는지 등 다양한 요소가 지원자들로 하여금 기업의 첫인상을 결정짓게 한다고 믿었다. 한때 구직자였던 나 또한 그렇게 첫인상을 결정지었기에 내가 생각한 대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상당한 수준으로 친절하기로 했다. 괜찮은 사람을 우리 회사에 조금이라도 더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지원자 친화적 관점에 몰두하는 것이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 태도와 행동에 정답은 없었다. 물론 친절한 모습은 적당한 수준의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 영향을 미쳤겠으나, 모든 건 개개인마다 다른 '감정의 영역'에 있었다. 아무리 친절하다고 해서 지원자들이 반드시 인터뷰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었고 사전에 정해놓은 멘트를 기계적으로 읊는다고 해서 매번 노쇼(No-Show)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유명한 감독이 만든 영화 한 편에도 좋고 나쁜 평가가 잔뜩 어우러지는 것처럼 채용 프로세스의 부산물 또한 그랬다. 우리 회사에서는 서류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AI 역량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인력 풀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으로, '인공지능 역량 검사가 절차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여 인터뷰에 참석하는 지원자들의 비율이 적어진다'는 가정을 한 상태로 A/B 테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가설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확신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역량 검사 절차를 안내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했을 때 인터뷰에 최종적으로 참석한 지원자 비율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역량 검사 절차가 없을 때 비교적 허수 지원자가 많았고, 최종적으로 인터뷰에 참가한 비율로만 봐서는 두 경우 사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150명의 데이터가 '표본 대표성을 갖추기에 충분한 모집군인가?'라는 질문에 긍정으로 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렇담 무엇을 문제 삼아야 할까? 추상을 구체화하기 위해선 질문을 해야 했다.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면 나만의 골자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대답이 필요했다. "나는 어떤 태도로 일에 임해야 하는가?"


생각해낼 수 있는 건 '지원자 경험 우선'과 '내부 직원 경험 우선'의 2가지 관점이었다. 전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지원자에게 하나부터 열까지를 맞추겠다는 관점이고 후자는 인터뷰에 참가하는 내부 직원들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둘 중 어떤 관점을 택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친절함은 기본 사항이다.


 지원자 경험 우선 관점  지원자 상황 우선 고려  직원 경험 영향  내부 불만족 확산 가능성


두 관점 사이에서의 가장 큰 쟁점은 '일정'이었다. 위의 경우처럼 퇴근 예정 시간 이후에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등 계속해서 지원자를 최대한 배려하고자 한다면 되려 인터뷰에 참가하는 내부 직원들의 개인 일정을 배려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일방적으로 무조건 일과시간 내에만 가능하다는 태도를 취하면 '시간 안 되는 사람은 휴가를 쓰든 어떻게든 시간을 내라'와 말하는 것과 같고 그것도 아니라면 '안 와도 된다'는 뉘앙스와 같다. 어느 한쪽만 생각할 수 없는 나의 입장에선 두 관점을 적절히 섞는 것이 중요했다. 


여담으로 이런 고민에 관해서는 이미 대책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팅'이나 '나인하이어' 같은 채용 관리 솔루션이 널리 쓰이고 있고, 이들은 지원자들이 카카오톡을 통해 일정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기업이 인터뷰가 가능한 날짜를 따로 설정하고 있으니 위의 두 가지 관점을 적절히 섞은 셈이다. 무조건 지원자 경험을 제창했던 입사 초기의 나는 요즘 이런 서비스가 많이 나온다며 팀장님을 비롯한 경영진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했으나 당시 기업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채용 솔루션을 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신이라면 그럴 때 어떤 인상을 받나요?"


다시 돌아가서, 더 구체적인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개인적인 설문을 진행했다. 모집군은 재직자/구직자/학생, 마케팅/개발/HR/디자인/기획…, 남성/여성, 20/30/40대 등으로 최대한 다채롭게 구성했다. 설문조사에 대한 응답은 아래와 같았다.


"기업에서 인터뷰 일정을 잡을 때 개인 일정을 배려해준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플러스 요인이다", "복잡할 거 없다. 그 기업에 가고 싶은 만큼 시간을 내려고 할 것이다", "여행으로 기존 일정을 미룬 적이 있는데 감사하게도 이해해줬던 담당자가 있었다. 그때 면접을 엄청 열심히 본 기억이 난다", "이 날짜 아니면 안 된다고 딱 잘라서 말하는 회사는 안 가는 게 낫다. 최소한의 배려는 필요하다", "늦은 시간까지 면접 일정을 잡아주는 회사면 아무래도 야근이 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사 담당자는 기업의 얼굴이니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 "지나치게 친절하면 묘한 이질감이 든다", "배려해줘도 안 올 사람은 안 온다", "친절한 담당자가 있는 회사에 채용됐는데 실제로 회사 분위기도 따뜻하고 좋다", "반차 휴가라도 아끼게 해 주면 너무 감사하다", "너무 나한테만 맞추겠다고 하면 '이렇게까지 사람이 급한가?'하고 먼저 의심하게 된다. 그러면 합격한다 해도 엄청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대로 천차만별이었다. 어느 하나 정형화된 것이 없었다.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수도 없이 다양했다. 사람이라는 것이 경험의 복합체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하면 단 하나의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는 건 당연하고도 당연했다. 역시 단단한 심지가 필요했다.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팀장님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일정을 미리 살피긴 하지만… 지금까지 너무 내 멋대로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원자와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고 자리에 돌아왔을 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생각이 난 길로 곧장 인터뷰 담당자로 들어가시는 팀장님께 여쭤봤다. 


"이력서랑 포트폴리오를 보다 보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죠. '이 사람은 한번 시간 내서라도 만나 보고 싶다'라고. 비어 있는 포지션에 대해 채용이 급한 순간이 있기도 하고요. 그럴 땐 제 시간을 할애해서 지원자를 보기도 해요. 대부분 재직자들이 그런 경우인데,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부담되긴 하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질문했는지 눈치를 챈 것 같은 팀장님의 대답은 지금까지의 나를 반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 생각은 언제나 들어맞을 수 없다. 간혹 적중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때 내린 판단 또한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전체적인 모습을 가늠하는 모양새와 유사했다. 


함께 일하는 것의 의미는 서로의 생각을 원만히 주고받으며 더 나은 결과를 내고자 하는 것에 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일수록 긴밀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나는 지원자에게 연락을 취하기 전에 팀장님들께 결정을 내린 이유와 가능한 일정을 적극적으로 묻고, 결정을 내린 담당자는 어째서 지원자가 보고 싶고 본인들이 가능한 일정을 이야기해야 한다. 채용 단계마다 코멘트를 달아야 해서 팀장님들에게 일을 얹어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지울 수 없지만 지원자와 내부 직원의 경험을 모두 챙기기 위해서는 담당자들 간에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아야 일의 효율을 높이고, 일에 대한 가치관이 확실하더라도 계속해서 변하는 상황에 맞도록 융통성 있게 행동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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