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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감 Dec 13. 2022

이곳을 떠나지 말아 주세요

제가 당신을 이해해요




팀장님은 내게 퇴사자 인터뷰를 진행해 보라고 했다. 본인과 껄끄러운 일이 있는 사람이라, 몇 시간을 마주하고 앉아 있어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와 함께였다. 인터뷰 상대는 내가 HR팀에 새로 합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조건 없이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던 개발자였다. 나는 제법 긴장한 상태로 노트북을 들고 건물 안에 위치한 카페로 향했다. 내가 입사한 지 5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그는 나와 이야기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다. 가뜩이나 불편한 마음인데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퇴사를 결심한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팔짱을 견고하게 걸어 잠근 그는 30분이 넘도록 침묵을 이어나갔다. 아는 것도 없고 불편한 감정이 깔려 있더라도 어쨌든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노트북을 덮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책상 위에 두 손을 올렸다. 그리고선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 지원한 이유, 기대했던 것, 취미 그리고 개인 성향을 잠자코 듣고 있던 그는 조금씩 내 이야기에 코멘트를 달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외로운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도 자기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의 모습 같았다. 주르륵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작은 공감에도 탄력을 받았다. 그렇게 그는 혼자 1시간이 넘도록 그간 있었던 일을 읊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은 "말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였다. 인터뷰를 마치고서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팀장님은 개발자의 사뭇 밝아진 표정을 보고서는 본인이 갖추지 못한 역량이 있는 것 같다며 나더러 조직을 떠나는 사람들을 잘 배웅해 주는 역할을 맡으라고 했다.




다들 힘든 구석이 있었겠죠


그 일이 있은 후로도 퇴사자들은 꾸준히 있었다. 대부분 근속연수가 6개월 이내로 짧은 편이었다. 그들은 회사 자체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서 들은 바에 의하면 이유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지각색이었다. 날이 갈수록 사람이 중요해지는 요즘 시대에서, 게다가 작은 조직에서 퇴사율이 이렇게나 높다는 건 좋지 않은 신호였다. 이 악순환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 중요한 과업처럼 느껴졌다. 


우리 조직에서 가장 부족했던 건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달랐다. 같은, 혹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달랐다. 연애도 상대방을 알아가는 데 온 힘을 쏟느라 바쁜데 하물며 회사의 경우에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 간 살아온 사람 여럿이 한 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뭉쳐 있으니 그 사이에서 사소한 마찰이 생기는 건 분명 불가피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마음으로 품는 것 또한 상당한 정신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임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지쳐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상대방의 마음보다 자신들의 마음을 챙기는 것이 우선인 것처럼 보였다. 


다들 누군가가 자기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해서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들에게는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인터뷰 12 프로젝트


"우리 모두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팀장님에게 '인터뷰 12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인 인터뷰 콘텐츠를 제안했다. 입사한 지 1, 3, 6, 10, 12개월 차에 진행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규 입사자들의 조기 이탈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잦은 퇴사로 인한 낮은 평균 근속기간을 이전보다 높게 만들어내고 싶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생각을 표출하지 못한 채 마음으로만 되새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직원들로 하여금 자신을 언제 어디서나 바라봐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프로젝트의 목적을 들은 팀장님은 권한을 줄 테니 한번 주도적으로 해보라고 했다. 


시행 개월에도 각각의 이유는 있었다. 1개월에는 조직 적응 수준을, 3개월에는 조직 생활 애로사항을, 6개월에는 업무와 관계 문제를, 10개월에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가장 이직이 잦은 시점인 1년 차에 지금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깊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매 회 차마다 그 이야기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건 없었지만, 이 설계는 최근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생애주기에 맞춘 결과였다.


인터뷰 질문은 철저하게 개인화하고자 했다. 자기소개서나 인사기록 카드에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를 엮어보는 게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었다. 또, 조직 적응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그에 대한 질문도 몇 가지 준비하려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대해서 면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과 함께 상대방으로 하여금 배려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다. 




해 보니 어떠셨어요?


입사 한 지 이제 막 1개월이 됐던 첫 번째 인터뷰이(interviewee)는 어딘가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혹시 걱정하는 부분이라도 있으세요? 제가 속단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초조해 보이셔서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이리저리 잰걸음으로 움직이던 그는 "지금 수습기간이잖아요. 불안해서요."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정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던 그는 이 시간을 수습 기간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였다. 잘 해내야겠다는 내 입장만 생각한 나머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당황한 어조로 그런 목적은 절대 아니라고, 입사 1개월을 맞아서 조직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고, 또 채용 프로세스에서 좋았던 것과 불편했던 점에 대해 피드백을 받아서 더 나은 프로세스를 구축하려고 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다음부터 이런 일은 없어야 했다. 그 뒤에 진행된 회 차부터는 시작하기 전에, 시작할 때, 마칠 때 모두 상대를 안심시키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 같아도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라며 유대를 형성한다든가, 나 이외에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던 사람에게 "목적 자체가 당신을 위해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지울 수 있다"라고 한 뒤 실제로 없앤 걸 보여주기도 했다. 후자의 면담자는 저 말을 주고받고 나서부터 나에게 부쩍 신뢰감을 느꼈다고 했다.

 

다른 것도 중요했지만 가장 핵심은 '대상자가 이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생각이 막힘 없이 흐르게 하기 위해선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괜찮은 대상이 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곳곳에 산재한 불안 요소를 지워나가며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게 중요했다. 심리적인 기반이 잘 다져져야만 입이 트이게 되고, 그로부터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대화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공감과 경청은 그다음의 문제였다.




만병에 효능이 있는 건 아닐 테지만


다행스럽게도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로 퇴사율은 이전 기간에 대비해서 굉장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신규 입사자들 중에서는 아직까지도 조직 이탈의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다양한 요인이 적용된 결과겠지만 '내가 의도한 것이 지금의 모습에 조금은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눈물을 흘린 직원도 있었다. 입사하고서 일하느라 바빠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도 많이 없었다고 고백했던 그녀는 자기의 사정에 맞춰 만들어진 질문 리스트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이내 눈물을 한참 동안 떨어트렸다. 회사를 몇 군데 다녀봤지만 어디에도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주려는 사람은 없었다는 말과 함께였다. 당시 이직을 고려 중이었던 그녀는 그 사건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됐고, 그 후로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고민이 있으면 먼저 다가와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하고 묻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생각과 의욕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험치와 기술 수준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으로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직원들에게 명쾌한 답을 내려주지 못했다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 처음 의도했던 대로 언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신뢰가 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만드는 데는 성공하더라도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조언해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저한테 뭐가 필요할까요?"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아무래도 지금의 내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을 테지만 좋은 마음으로 임했던 것이기에 매번 아쉬운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 조직에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쁜 영향은 안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아쉬웠던 부분은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것이다. 나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 있어서 상당히 값진 기회로 다가갈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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