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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감 Jan 17. 2023

당신은 나만큼 이해하고 있지 않다

하나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차 휴가 산정 방법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예정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그들은 회의실에 미리 모여 각자 이번 해에 몇 개의 휴가를 쓸 수 있는지 열띤 토론을 벌이는 중이었다. 곧 연말이 다가오니, 다들 휴가 계획을 세우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신입사원들의 안색은 여느 때보다 빛났다.


칠판에 몇 가지 도형을 그리고 교육에 참여한 직원들의 경우를 직접적인 예로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산정 기준은 입사일 기준과 회계연도 기준이 있고, 회계연도 기준 산정 방법을 택하고 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고, 두 기준 사이에서 발생하는 개수 차이는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 최대한 간결하게 이야기하고자 했다. 초반부엔 작은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연신 끄덕이던 그들은 갈수록 갸우뚱하는 빈도를 높였고, 후반부에 가서는 각자가 지참한 노트에 무언가를 계산하느라 바빠 보였다. 궁금한 건 많지만 막상 물어보려니 망설여지는 눈빛이었다. 편하게 질문하라는 권유는 속으로 이루어지는 셈에 자주 가로막혔다. 설명은 순조롭게 했지만 대단히 중요한 게 빠진 기분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일어나는 이유. 상대방은 나만큼 이 내용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부재한 탓이었다.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이해시킨다는 것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이식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물며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그 내용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면 그 가능성은 0에 수렴된다.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를 흘러가듯이 듣고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각자의 역할이 어느 정도 나뉜 조직에서는 공통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다른 부서와 반드시 협업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각자가 품고 있는 생각을 공유하고, 지식을 나누는 일은 당연히 불가피하다. 이 모든 게 매일 일사천리로 진행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만, 심지어 그 일은 어렵기까지 하다.


지금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팀장님은 내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몇 번이고 말해도 이해를 못 해요. 이렇게 알려줘도 매번 처음 듣는다는 듯이 말한다니까요?" 매번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서 전달하는데도 왜 자기는 안 알려줬냐며 성을 내는 몇몇 직원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무엇인가에 질려버린 듯한 뉘앙스를 풍기던 그는 내게 직원 교육 업무를 일임했다. '어떤 중요한 부분이 들어맞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요?'하고 묻는 내게 너도 한번 겪어보라며 대답을 대신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설명해 줬으면 이해하는 게 맞지. 이거 한번 봐봐요. 어려운 내용 아니잖아요?" 객관적으로, '처음 접한 사람들'이 '단번에 모든 걸' 이해하기는 다소 어려운 내용이었다. 교육 담당자는 충분히 이해하고 자료를 만들었을 테니. 간극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으려면, 말하는 사람이 '잘' 이야기해야 했다.




이야기를 '잘' 한다는 의미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자주 접하는 입장으로서, 미약하게나마 깨달은 '좋은 의사소통'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침은 아래와 같다.


1. 전문 용어를 쉬운 단어로 교체하기

언어로서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다. 동종 업계 또는 유사 직군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단어는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허들처럼 다가온다. 영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풍조도 한몫한다. 나의 경우엔 얼라인(Align), R&R(Roles and Responsibilities), 킥오프(Kick-off)가 대표적이었다.


2.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간결하게 하기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일목요연하게 해야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건 언제 어디서나 들어맞을 수 있는 논리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듣는 사람은 지친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같은 말이 반복된다.


3. 내 시선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떤 일을 하다 보면 그 속에 매몰되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한쪽에서만 바라보고 있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내용적으로도 다르지 않다. 한 곳에 매몰되면 내가 아는 내용에 한해서 풀어내기 마련이다. 작업이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제삼자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 이 내용을 보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이해하기 쉬운 내용인지, 충분히 설명되었는지 객관적으로 따져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4. 듣는 사람은 모를 수 있다는 사실 염두하기

대부분의 갈등은 상대도 나만큼 이해하고 있다는 오해 때문에 발생한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개념에서 결론으로 이어지기까지 나와 같이 생각할 수는 없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생각에도 차이는 분명 있다. 우리는 각자 개념을 정의하는 방식도 다르다. 추상적이어서 다르고, 구체적이어서 다르기도 하다. 그래서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고, 더 많이 배려해야 한다.




같은 생각으로 가는 길


어디서 듣기를, 똑똑한 사람은 아는 지식을 무한정으로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지식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간단하게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의사소통의 물곬을 깊게 파내기 위해서는 '앎'과 '알지 못함'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좁혀나가야 한다. 알기 쉽게 전달했는지,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연차 휴가 산정 방법 교육을 마치면서 나는 그들에게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지, 충분히 이해했는지, 설명이 복잡하거나 어렵진 않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겠는지, 이것 말고도 다른 궁금한 내용은 없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중반부터 설명이 어려워졌다며 긴가민가하던 한 직원은 말로 천천히 정리해 보다가 이내 완전히 이해한 표정을 지었고, 다른 직원은 지금 밖에 나가서 다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며 자신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내용이 복잡해졌던 건 잘 설명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깔끔한 설명으로 한 번에 이해시킬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의 영향도 있었다. 대책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다.


알아야 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면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해 주는 게 내 몫이다. 설령 내 지식과 기술이 완전하지 않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을 완전히 잠식시킬 수 없을지언정, 나는 잘했는데 저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며 남을 탓하는 건 결단코 없을 일이다. 직원들은 누릴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 서로 알고 있는 것이 달라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은 되도록이면 없어야 한다. 직원들은 회의실로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한층 밝은 표정을 했다. 나는 그들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이후에도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아는 한에서 최대한 설명드릴 거고, 모르는 내용이라면 찾아서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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