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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감 Nov 25. 2023

세찬 칼날비 사이에서

기업의 생존, 그리고 구조조정




'스타트업계 여기저기서 비명', '스타트업 대다수 투자길 막혀 상시 구조조정 단행', '데스밸리를 직격으로 맞이한 대한민국 스타트업계 시장', '2023년 상반기 투자 반토막', '구조조정 한파 몰아친 강남' 


2023년 초부터 경제 불황이라는 이름 아래에 대한민국 스타트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한때 투자 호황을 이뤘던 내부 시장은 어느새 혈로가 막혀 그 잠재력을 원활히 내뿜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많은 상황에 제반 하여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회사가 사라지기도 하고, 경영자들은 그간의 성장을 함께 일궈내 왔던 구성원들을 어쩔 수 없이 내보내야 하는, 고육지책을 단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도 다른 곳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23년 11월, 나의 두 번째 직장은 얼마간 개선되는 모양새 없이 지속되어 왔던 적자를 타파하고 사업 방향 전환과 함께 재무적인 안정을 꾀하고자 전체 구성원의 약 20%를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뼈 아픈 결정의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결인 '경영상의 이유'였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었던 동료가 하루아침에 구조조정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은 꽤나 가혹한 일이었다. 또, 인사 업무에 몸을 담고 있는 내가 해야 하는 일 중에 한 부분이라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처음엔 그리 쉽지만은 않은 문제였다.




인생 첫 구조조정을 겪으며


어쨌든 일은 일로서 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불현듯 들어서는 감정을 천천히 접어 두어야만 했다. 그것이 해내야 하는 위치에 놓인 자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였다. 무거운 생각과 함께, 결정이 어땠고 전달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나는 '잘' 해내야 했다. 결정된 사안을 행하는 데 있어서 예정되어 있는 방법보다 괜찮은 방향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기약 없이 길어져만 갔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분명한 목표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누군가의 에어백을 자처하는 것'을 주 목표로 삼았다. 조직 내부의 상황과, 지금의 내가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다방면으로 따져 봤을 때 그것이 최선일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언행과 사후 조치로 인해서 급작스러운 통보로 비롯된 불편한 감정이 최대한 사그라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에는 이 모든 것이 일로서 일컬어지기 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상대방을 배려했으면 하는 마음이 기저에 놓여 있었다.


마땅한 분노 표출 대상을 찾지 못했던 몇몇 이들은 우리 HR팀을 향해 날이 선 비방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이라면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또 다른 몇몇은 이토록 불편한 소식을 전달드리게 되어 회사를 대신하여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라는 우리의 말에 '본인들이 결정한 것이 아닌데 왜 고개를 숙이시느냐',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가 내키지 않음에도 이 모든 상황을 직접 겪어야 하는 당신들이 고생스럽다 생각된다'며 되려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한 곱절의 소란이 있고 난 뒤에


불편한 시간을 겪으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조직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구성원들 간에 소통이 얼마나 잘 되는가'라는 것이다. 조직에서의 소통이라 함은, 조직이 현재 마주한 상황을 공유함으로써 의사결정에 대한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고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기조 하에 '소통이 잘 되는 조직'은 업무적으로나 처우적으로나 구성원들 사이에서의 혼란이 적어서 본인이 맡은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가지 수가 여유로운 유기체라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직 문제를 다룬 어느 논문에 의하면 대한민국 직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90%는 구성원들 사이에서의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이 원인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간 살아온 인격체들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모여 있는 곳이 조직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경험한 게 다르고 주고받는 표현 방식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리 놀라운 수치라고도 볼 수 없지는 않을까. 


일과 인간 본연의 감정, 이루고 싶었던 것과 해야만 했던 것, 욕심과 한계 사이에서 부대끼는 시간은 결국 흘렀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분명한 지난 시간은 나를 세차게 흔들어 놓았지만 그만큼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결정에 따라 쉴 새 없이 변하는 조직의 변화무쌍함과 구성원 개개인의 갖는 영향력을 피부로 느끼게, 훗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려하고 또 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함으로써 내가 비약적으로나마 성장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인사팀은 회사 편이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비단 이번 경우뿐만이 아니고, 특히나 이전 직장에서 해당 부서 담당자들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받아 좋지 못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로서는 특정 목적을 갖고 의사결정을 단행한 회사의 입장도, 그 결정을 맞이하는 직원들의 입장도 모두 이해되고 공감하는 바이다. 어찌 보면 등을 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집단은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 있든지 간에 결국 사람이 주체라는 자명한 사실만을 공통점으로 갖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어느 한 집단의 편에 서서 일방적으로 소통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인사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 보겠다고 결심했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어느 상황이나 감정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해치는 경우 없이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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