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일출을 베란다에서 볼 수 있는 신혼 첫 집에서도 1월 1일은 늦잠을 잤다. 연말 시상식에선 어떤 공연이 펼쳐질까 기대하며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뿐, 어제 해가 오늘 다시 뜰뿐, 별다른 뜻을 둘 이유가 없었다. 새해가 다가온다고 해서 색다른 일이 펼쳐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작년보다 더 과중한 업무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가정경제가 확 펴질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내가 맡고 있는 어려움들을 기적처럼 해결해 줄 리 없었다.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에, 마무리되는 연말도 그저 그런 하루하루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좀 바뀌었다.
올해는 결산을 하고 싶어 졌다.
왜일까?
갑자기 왜 평생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한 해 결산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은 걸까?
이만하면 충분히 괜찮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이 이유였다.
이만하면 충분히 괜찮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냥 괜찮았어가 아니라 이유를 조목조목 읊어가며, '이러하니 충분히 괜찮았어.'라고 적고 싶었다.
그럼 나는, 올해 정말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아주 잘해 낸 것일까?
나는 원래 열심히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어떤 방향으로든 매년 열정적으로 살았다. 올해만 특별히 그런 것이라 할 순 없다.
그럼, 지금까지와 달리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향한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난 늘 부족해.'를 외쳤다. 이만하면 됐어가 아니라, 이만하면 더 해야지를 읊조렸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변했다.
지금의 나는 '충분하다, 괜찮다, 나아지고 있다.'를 되뇌고자 노력한다. 이 정도면 꽤 괜찮다고 격려하고 있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만 이걸 조금만 더.'라는 말이 슬며시 올라온다. 이전이라면 나를 향한 자기 검열의 말들이 사실인양 받아들였을 테지만, 이젠 아니다. '이만하면 충분해'라는 말로 스며드는 자기 검열을 걷어차버린다. 나란 사람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임을 내가 아니까. 이보다 더 한 자기 검열은 자기 사랑이 아니라 자기 학대임을 아니까.
연말이다.
계획했지만 해내지 못한 일, 계획한 대로 잘 이루어진 일, 계획보다 더 잘 된 일, 그냥 이루어진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