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긴급 휴원, 아이들과 함께 일상을 유지하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by 자유로운 풀풀

어린이집 긴급 휴원으로 두 딸과 24시간 함께 하는 중이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참 귀하면서도, 참 힘겹다. '내 마음껏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다.


내 마음껏 청소기를 밀고 싶고, 내 마음껏 물걸레질을 하고 싶다.

내 마음껏 듣고 싶은 강의를 듣고 싶고, 내 마음껏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다.

내 마음껏 샤워를 하고 싶고, 내 마음껏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고 싶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내 마음껏 하는 시간'에 끊김이 생긴다.

뭘 좀 하려고 하면, '엄마!'를 외친다. 집중하고 있다 싶으면, '으앙!' 울음이 터진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어떤 일이 터지고, 엄마를 요청하는 아이들.

때론 부름에 응하기도 하고, 때론 거절하기도 하지만 '철저한 무시'를 할 수 없다. 무시 아닌 무시를 한다고 해도 진행되던 생각의 흐름이 끊기기에 '마음껏' 하고 싶은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다.

(지금 이 글도 언제 흐름이 끊길지 모른다. 하하)


시끄럽다며 청소기를 얼른 꺼 달라는 아이들의 원성을 한 귀로 흘리며 청소기를 밀었다.

하루 종일 두 아이와 북닥거리면 바닥에는 정체모를 가루들과 종이들이 나뒹군다.

발로 밀쳐두고, 집어 들어 어딘가에 올려두며 청소기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손길이 바쁘다.


다행히 아이들이 잘 놀아주기에, 오래간만에 물걸레질을 할까 싶었다.

걸레에 물을 적셔 물걸레 청소기에 부착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물걸레를 이리저리 미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 방 밀고, 거실도 다 밀고 싶은데. 물걸레 속도가 왜 이렇게 느리지?"


급기야 로봇 물걸레 청소기를 구입하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나의 손이 닿지 않아도 저절로 바닥에 윤이 나도록 도와주는 물걸레 청소기를 갖고 싶어 졌다.


왜?
나는 지금 마음이 바쁘니까.
내 마음껏 하고 싶은 일들이 물걸레질 말고도 쌓여있으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까짓 바닥 물걸레질이야 한 달 내내 하지 않아도 남편과 아이들을 모를 텐데.

이건 오직 내 기분의 상쾌함때문인데.


무언가를 내 마음껏 해냈다는 기쁨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갈증과도 같다.

청소기로 바닥을 밀어내고, 물걸레로 윤이 나게 닦아낸다고 해도 그다음 집안일은 눈에 들어온다.

쌓여있는 철 지난 옷들, 정리하지 못한 장난감들, 쌓여있는 설거지거리.

하나하나 처리해 나간다 해도 박제동물이 아닌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다니며 무언가를 흐트러놓을 것이고 다시 내 감정에는 불쾌함이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방 한 칸, 아니 1평만 잘 닦아내어도 기분이 좋을 수 있다.

깨끗하게 씻겨진 머그잔에 따뜻한 물을 따라 한 모금만 마셔도 편안함이 밀려올 수 있다.

이 방 저 방을 분주하게 옮겨 다니다가 창문 밖으로 펼쳐진 새파란 하늘에 꽉 조여진 마음의 벨트가 탁 풀릴 수 있다.


어떤 일을 완벽하게 다 채우지 않아도,
내 마음은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완벽함'이라는 신기루를 붙잡기 위해 내달렸을지도 모른다.

이것만 하면, 이것만 더 하면, 조금만 더 하면.

크게는 인생의 성공에 대해서, 작게는 하루의 완성에 대해서.


완성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고, 무언가를 끝내면 편안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점들의 연속적인 연결이 직선이 되는 것처럼, 순간들의 연속이 삶이다.

완성은 없고, 끝도 없다.


지금 여기의 충만함, 상쾌함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도달할 수 없는 거기를 향해 내달리기보다, 잘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내가 되기를.


덧.

이 글 또한 흐름이 몇 번이고 끊겼다. 발레 연습을 하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노트북을 내주었다. 조금은 불편한 블루투스 키보드와 스마트폰으로 타이핑을 하면서, 입으로는 "발레 동작 너무 이뻐.'를 외친다.


퇴고는 없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 또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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