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채워지고 있다
며칠간 힘이 없다. 잠을 자도, 더 졸리기만 했다. 해야 할 일은 많은 것 같은데 머릿속이 멍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졸음이 쏟아진다.
조금이라도 피로를 쫓아보려 30분간 요가를 했다. 노곤해진 몸이 더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하다. 몸의 감각이 더 살아난다.
요가매트를 접어 제자리에 올려두며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일까.
며칠간 강하게 추진해온 일들 때문에 피로가 덮친 걸까. 해야 하는 일들에 짓눌려서일까. 힘이 나는 일이 없어서일까.
당장 드러나는 결과가 없으니까.
이거였다.
이러저러한 일들을 추진하고 실행해나갔다. 그 무엇 때문도 아닌 나의 욕구만을 좇아 움직였다. 몇 달, 혹은 몇 주간 마음을 쏟아 넣었다.
거기까지였다. 마음을 쏟아 넣었지만 딱히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만하면 나올 법도 하지 않을 만큼 열정을 부어놓고선, 그래도 좀 뭔가가 드러났으면 하는 욕심이 슬그머니 비집고 올라왔다.
난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독서실(요즘은 스터디 카페라고 하지)에 공부하러 갈 때 문제집 10권을 챙겨가는 아이가 나였다. 공부할 책이 두 권이라도, 마음이 어찌 될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끌리는 것은 다 챙겨갔다.
지금도 그렇다.
한 대야에 물을 붓기보다, 여러 대야에 물을 나누어 붓는다. 하나만 먼저 부어주면 하나라도 먼저 찰 텐데, 여러 개의 대야를 줄지어 세워놓고 컵의 물을 나눈다.
성향이 이렇다 보니 당장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는다.
계속 돌아가며 붓는다고 해도 언제 어디에서 다 채워질지 모른다.
새는 대야에선 끝까지 채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말 커다란 대야에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일이다.
당장의 결과만 본다면 지금 나는 허튼짓 중이다.
하지만, 한 달 전의 나와 비교해본다면 지금 나는 몇 걸음을 내디뎠다.
새로운 대야를 마련했다.
기존의 대야를 좀 더 넓은 것으로 바꾸었다.
바닥이 깨져 물이 새던 대야를 보수했다.
물은 채워지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 결론이 날지는 모른다.
중요한 사실은 '나는 여전히 물을 채우고 있다.'이며, '이 행위는 삶을 지속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어떤 물을 채울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채울 것인가.
어떤 대야를 준비할 것인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 모든 과정이 삶이고, 나는 그것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한 바가지씩 부어도 좋고, 한 방울씩 흘려도 좋다.
잘못 채워서 한 컵을 퍼 내어도 좋고, 대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 바꾸어도 좋다.
작은 그림으로 바라볼 때면 당장에 일희일비할 테지만,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한 가지 단면에 치우쳐 나를 할퀴지 말자.
어떻게든 물을 채운, 채워보려 애쓴, 채우다 쉬고 있는 나를 쓰다듬어주자.
애썼어. 수고했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