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라는 말에 담긴 사랑

우린 독립된 존재이다.

by 자유로운 풀풀

"아니야."라는 말에는 힘이 있다.


남과 상관없이 자신의 뜻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남과 자신의 생각이 다름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나에게는 금기어였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만약 하더라도 받게 될 공격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내뱉어야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고 쏟아내야 하는 말이었다.


이런 나의 태도는 나를 발 빠르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신속하게 "네."라고 대답하고 움직이게 했다.

이런 나의 태도는 나의 두뇌를 비상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일어날 여러 가지의 상황을 재빠르게 굴려보고,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고 실행하게 만들었다.


아니야.


그냥 가볍게 던질 수도 있는 말인데 난 그 말을 던지지 못했다.

허락되지 않는 말이기에 꾸역꾸역 삼켰다.

삼키다 삼키다 차올라 터져 나오는 말은 육중한 분노와 함께 터졌다.

꼭 그렇게 비상한 책임감과 무게감을 두고 던졌다.




이런 태도는 육아에도 걸림돌이 되었다.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받으며 자란 두 딸은 "아니야."를 달고 산다.


두 딸이 나의 말을 대하는 태도는 세 가지다.

거부하거나, 협상하거나, 논리적으로 납득하거나.

'엄마의 말이니까' 자신의 욕구와 다르더라도 참고 그냥 움직이는 법이 잘 없다. (없다고 쓰고 싶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화나 보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고 움직였을 순간들이 많을 테니.)

눈치껏 행동하려는 순간에도 꼭 그렇게 티를 낸다.

'엄마를 위해, 엄마가 피곤하니까 우리가 배려해야지.' 하는 뉘앙스가 팍팍 전해진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면서도, 자신의 욕구와 다르게 움직여야 할 때는 그렇게 싫은 티를 마구 낸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그냥 그냥 넘어가는데, 피로가 겹치는 순간에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보이면 머리에 핀이 나가는 기분이다.


"어디서 버릇없이! 당연히 해야지!"라는 군대식 표현이 앞니를 부딪히고 목구멍으로 들어간다.




요즘따라 "아니야."라는 말을 시원하게 내뱉어보고 싶었다.

아이들 입 밖에서 나오는 그 말을 나도 목이 터져라 외쳐보고 싶었다.


마침, 혼자 운전을 할 일이 생겼다.

운전대를 잡고 고함을 질렀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속이 시원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목이 쉬어라 외치니 눈물이 터졌다.

수십 년을 꾹꾹 눌러 담고 살아온 '착하고 야무진 딸'의 '아니야 song'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더 이상 내지르고 싶지 않은 순간까지 내뱉고 나니 멈춰졌다.

그리고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야'를 허락하자.


가까운 누군가(남편, 아이)가 나의 의견에 반대를 할 때면 극도로 예민해졌다. '내가 얼마나 머리를 굴려서 낸 아이디어인데, 어떻게 싫다고 할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며 괘씸함에 치를 떨었다.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을 주체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사랑하는 이에게 거절받는 느낌이었다.


이건 결국, 솔직하게 거부해보지 못한 나의 아픔이고, 투사였다.

그런 솔직하지 못함이 나를 힘들게 했고, 내 주변을 비뚤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저 다를 뿐인데.

그냥 다를 수 있는 건데.

난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스스로에게도 허락하지 못한 '아니야'는 타인에게도 그러한 태도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아니야.'는 '엄마와 다른 존재'라는 외침이다.

남편의 '아니야.'는 '아내와 독립된 존재'라는 읊조림이다.

나의 '아니야.'는 '개인으로 존중받고 싶은 존재'라는 탄식이다.


'아니야.'는 거부가 아니다.

당신과 나는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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