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로운 풀풀 Mar 15. 2022

별 것 아닌 미라클 모닝

미라클 모닝이 대유행이다.

너도나도 새벽 5시, 새벽 4시 기상을 하며 부지런쟁이 인증이다.

미라클 모닝만 꾸준히 해도 노는 판이 달라지다는 간증이 즐비하다.

SNS에는 인증글이 도배되고, 인터넷 서점에는 '000 모닝'이라는 각종 신간들이 진열된다.

이것만 하면 세상이 달라질 것 같다.


미라클 모닝을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유료 챌린지 방이라도 참여해야 하나 갈등을 하고 있을 때쯤, 무료 챌린지방을 발견하고 신청했다.

결과는?

뭐, 핸드폰 알람만 열심히 울린 것으로.


자책했다.

난 뭐가 문제일까. 남들 다 일어나는데 대체 왜 못 일어나는 것인가. 잠드는 시간이 문제인가? 의지가 부족한가? 게으른 인간인가?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흘렀다.

그 사이 하루의 큰 틀이 완전히 변했다.

늦어도 6시에 일어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은 5시 30분에 일어났다.


5시 10분부터 울린 알람을 끄며 생각했다.


난 왜 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려고 하는 것인가.


별 뜻 없었다.

너무 피곤해서 아이들과 함께 곯아떨어졌고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협박하며 22시에 불을 껐고)

전 날 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 못해 아쉬움이 클 뿐이었다.


'더 자고 싶은 마음'과 '어떤 일을 하고 싶은 마음' 중
후자가 아주 조금 더 컸을 뿐이다.


신문을 읽고 싶었고, 책을 좀 더 읽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기에는 5시 30분도 부족하다.

4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편히 씻고, 스트레칭도 하고, 신문 읽고, 책도 좀 읽는 두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내가 4시 30분에 일어나는 날이 올까?

'어떤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넘어설 때 일어나겠지.

거기에 '부지런하다,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간다, 인생이 바뀐다'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최근 들어 내가 6시 전에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이전에 내가 8시, 9시, 10시에 일어났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도 되는 상황이니까."


사실 이 두 가지 이유의 뉘앙스도 좀 거슬린다.

이미 마음속에 6시 전의 기상은 힘든 것, 8시 이후의 기상은 느슨한 것이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각에 아주 큰 의미부여를 하는 오랜 관습이 뼈까지 사무쳐 있나 보다.




미라클 모닝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바지런함, 적극적인 삶의 태도가 참 멋졌다.

그들을 따라 해 보려 내 몸을 일으키니 눈도 제대로 뜨기 어려웠다.

그런 나를 자책하고 미워했다.


요즘 나는 얕은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다.

남들보다 부지런해서? 적극적이어서?

타인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지 모르지만, 나의 이유는 간단하다.

'그 시간이 아니면 도무지 짬이 나지 않으니까.'


미라클 모닝은 상황에 따라 필요해지면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내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큰 의미부여는 새벽녘 이불의 무게를 더 가중시킬 뿐이다.


미라클 모닝, 별 것 아니네.





매거진의 이전글 6년 만의 첫 출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