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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Mar 28. 2022

체계화된 중산층과 생존형에 가까운 서민층

[얼어붙은 여자]를 읽다가

중산층과 서민층은 무엇이 다를까.


나의 유년시절은 중산층보다 서민층에 가깝다.

빈곤은 아니지만 중산층이라기에는 모자란 그 어느 지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며, 당장 일주일 뒤 생활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경제상황.

자녀들은 하고 싶은 공부보다 생존을 위한 직업에 먼저 관심을 두게 되는 주변 환경.

빈곤에서 벗어난 듯 하지만, 때로는 빈곤한 하루가 덮치는 것.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중산층이기를 희망했다.

'공부 좀 하는 딸'은 그들에겐 희망의 불꽃이었다.

그들은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자신들을 연료로 태웠다.

그 덕에 나는 중산층이 아닐까 하는 착각 속에서 살았다.

아니, 사회에서 우리 집의 경제와 문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고 살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런 여자들은 죽을 때까지 대단히 체계적으로 행동한다.


[얼어붙은 여자]의 첫 장이다.

죽을 때까지 체계적으로 행동하는 여성들.

내 엄마는 중산층 여성의 모습을 하고서 체계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경제형편은 서민이었기에 객관적인 중산층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교육을 딸에게 시켰다.

그녀의 열망은 딸에게로 전해졌다.

그녀의 딸인 나는 '체계적인 중산층 여성의 삶'을 꿈꾸면서, '중산층 이상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진취적인 태도'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난 알 수 없었다.

이 두 가지가 얼마나 모순적인 것인지.


결혼 전에는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더 뛰어나야 했다.

결혼 후에는 체계적인 중산층을 유지하기 위한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현모양처 & 능력 있는 여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낼 수 있었다.

시댁에서 인형처럼 웃고, 희극배우처럼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일 년에 몇 번이니 감당해낼 수 있었다.

'체계적인 중산층 여성의 삶'에 걸맞은 태도를 연기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몇 시간만 버티면, 하루만 견뎌내면 능력 있고 유능한 커리어우먼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아이가 태어난 후, 모든 역할을 감당해내기가 어려웠다.

체계적인 중산층 성의 삶에는 '다정하고 충실한 엄마'가 우선이었다.

'일 잘하는 워킹맘'은 선택사항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가 어릴수록 더했다.


나의 양육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중산층 여성의 삶'과 '자아실현에 힘쓰는 현대인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을 위한 것이 되었다.




[얼어붙은 여자]를 1/3 정도 읽었다.


쓰고 싶은 말은 많지만, 체계적인 중산층 여성의 삶을 꿈꾸는 워킹맘이 감당해야 할 역할을 수행해내느라 시간이 부족하다.


집으로 출근하기 전 15분간 써 내려가는 글.

며칠간 가슴을 콕콕 쑤시던 통증이 조금은 풀리는 듯하다.

이렇게라도 나를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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