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아픈가]를 읽으며
[감정 자본주의]로 에바 일루즈의 매력에 빠졌다.
연이어 펼쳐 든 [사랑은 왜 아픈가].
556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라 겁먹었지만, 프롤로그 중반까지 읽은 아직은 수월하게 읽고 있다.
오히려 얇은 [감정 자본주의]가 더 버거웠다. 흑.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나의 신념체계는 기독교였다.
약간 의아한 부분, 모순되는 지점을 알았지만 눈을 감고 '순종'했다.
그러다 심리학을 만났고, 자기 계발과 연결하여 다양한 분야의 영적인 책들까지 읽게 되면서 '기독교 사상'은 뿌리부터 깨졌다.
심리학이 새로운 종교로 자리 잡고 나아가던 중, 다시 그 한계에 부딪혔고 방황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사회학', 에바 일루즈.
솔직히 사회학이 무엇인지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무지한 인간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사회를 논할 시간이 어딨냐며 정치에도 눈을 닫고 살았다.
가족 돌봄에 집중하여 온 몸을 던지고 살았다.
어느 순간 눈을 들어보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의 상황에 놓였다.
원하던 삶과 살아내는 삶이 달랐다.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려니 심리학에서 걸리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 생각만 깊어졌다.
살아내는 대로 살아가려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감정은 격해졌다.
'좀 살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집어 든 에바 일루즈의 책들.
[감정 자본주의]를 스피디하게 읽어 넘기고(이해했는지는 묻지 마오),
덜덜 떨며 집어 든 [사랑은 왜 아픈가]의 프롤로그에서 '나를 만났다'.
사실 처음부터 사회학의 과제는
종교의 몰락 이후
인생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좋을까 하는
물음의 답을 찾는 것이었다.
사랑은 왜 아픈가 / 에바 일루즈 / 프롤로그 중에서
이건 나의 지금이 아닌가.
기독교와 심리학이라는 종교가 무너지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에 대한 답을 입체적으로 읽어내고 싶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학'이었던 것이다.
'사회학'만이 정답이라는 것이 아니다.
종교가 전부였던 중세시대가 지금의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읽어지듯,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금을 미래의 관점, 구조적인 관점, 사유의 시선으로 읽어내려는 시도이다.
기대된다.
지금의 나를 읽어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사랑은 왜 아픈가]
천천히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