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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Apr 30. 2022

목표 도달 시점을 조절하는 육아

아이를 뱃속에 품기 전, 육아서를 읽었다.

어떤 책을 고를지 몰라 베스트셀러에서 고른 그 책. 그 책을 통해 책육아, 엄마표 영어라는 획기적인 단어를 알았다. 중고책만 사 주어도 되고, 비싼 학원이 아니라 책으로 영어와 기타 공부를 마스터할 수 있는 방법에 열광했다. 게다가 그런 방법으로 성공한 자녀들은 3-4살에 한글을 읽고, 5-7살에 스스로 줄글 책을 읽었다고 했다. 수학은 학습지를 따로 할 필요도 없이 수학동화, 수학책만으로 해낸다는 이야기에 수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반짝였다.

모든 아이는 영재로 태어남이 확실하니, 책만 읽어주면 저절로 한글을 떼고, 저절로 책을 잡고 읽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지 못하는 다른 엄마들은 뭔가 방법이 잘못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나도 책을 좋아하기에, 책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알기에, 책만 읽으면 당연히 순리대로 흘러갈 일이라 생각했다. 3살 된 아이를 키우는 이웃집 엄마에게 그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며 '00 엄마도 아이 책 많이 읽어줘요.'라는 섣부른 조언까지 했다.


내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기까지 한글에는 관심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했다. 아이들이 한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책을 더 열심히 읽어주지 않아서, 생활 속에서 많이 노출하지 않아서, 한글 놀이를 해 주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한글에 1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을 보며 자책의 구렁텅이로 빠진 날들이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


두 아이가 여섯 살이 되었다. 이제 받침 없는 글자를 더듬더듬 읽어가는 아이들. '공주, 엄마'같은 가장 좋아하는 글자는 자신 있게 읽는 아이들. 1부터 10까지를 읽고 쓸 줄 아는 아이들.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 되는 사실을 손가락으로 확인하는 아이들. 엄마인 나는 이 모든 것을 3년 전에 계획했는데, 아이들은 3년이 지난 여섯 살이 되어서 천천히 해 내고 있다. 엄마인 나는 초등 2학년 과정을 어떻게 가르칠까 머리를 굴리는데, 아이들은 공주의 드레스를 어떻게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린다.




난 목표지향적이고 실행이 빠른 사람이다. 이런 성향이 학업이나 직장의 성취도에선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계획하여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기 좋은 결과를 내는 것. 아이를 낳기 전 20년간 살아온 방식이다.


칭찬받고 결과도 훌륭했던 이 방식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는 최악이었다. 양육은 기다림의 연속이었고, 인내의 전당이었다. 뒤집기를 하지 않는 아이를 강제로 뒤집을 수도 없다. 걷지 않으려는 아이를 억지로 걷게 할 수 없다. 말하기가 늦는 아이를 억지로 말하게 할 수 없다. 한글에 관심이 없는 아이를 억지로 한글 공부를 시킬 수 없다.


엄마인 내가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어 계획적으로 실천해본다 한들, 아이의 몸과 마음은 아이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움직이기를, 아이가 좋아하기를, 아이가 관심을 가지기를. 결국 마지막 선택권은 아이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육아의 방법이라면 방법이었다.


모든 일에 때가 있고, 열매가 익는 데는 시간이 필요함을 두 아이를 기르며 온 몸으로 체험하는 중이다. 책장에는 리더스북과 챕터북을 소개하는 영어책이 쌓여있고, 읽기 독립의 과정을 상세히 안내해주는 학습서가 쌓여있다. 눈도장만 찍고 고개를 돌린다. '언젠가 저 책의 내용을 실천하는 날이 올 거야.' 전속력으로 달리려는 마음에 브레이크를 건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카더라로 세워둔 양육 목표 도달 시점'을 아이와 부모에게 맞게 조절해가는 과정이다.

들은 대로 되지 않고, 아는 대로 되지 않는 부모와 아이가 만들어내는 그들만의 하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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