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일들은 쌓여있지만, 6년의 휴직 후 폭풍 같던 적응기가 어느 정도는 지나갔다. 직장에서의 삶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니, 육아와 살림이라는 일상에서도 정돈이 필요해졌다. 만 5년간 살아왔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탱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먼저, 살림에 도움이 필요했다. 출퇴근 전 짧은 시간을 활용해 생존에 필요한 살림을 처리해야 했다. 남편에게 더 많은 집안일이 분담되었다. 반찬은 일주일 한 번 친정엄마의 도움이 절실했다(우리 집 30km 이내에 반찬가게가 없다). 대형마트 밀키트에 의존한 식단으로 연명하고 있다.
육아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모든 활동을 엄마표로 진행했고, 일주일 2, 3회는 나들이를 나갔고, 자고 싶은 시간에 잠들던 방식은 더 이상 안되었다. 잠들기 전 평온한 미소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이를 위해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기타 다른 활동들은 모두 멈췄다. 주 2, 3회 나들이는 월 2, 3회 나들이로 변경되었다. 9시가 넘으면 잠자리 독서를 시작하고, 10시에는 불을 끄는 리듬을 만들었다. 매일 하던 엄마표 활동들은 일주일 한 번도 못하더라도, 엄마의 에너지가 될 때 하나씩 해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했다.
눈 뜨고, 눈을 감는 하루는 변함없지만, 하루를 대하는 생각과 태도가 달라졌다.
겨우 적응했던 엄마, 아내의 하루였다.
이제 직업인의 시간이 추가가 되니 모든 것은 리셋, 원하지 않은 재정비의 시간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다.
외롭다.
확신이 필요하다.
이미 충분하다는 사랑의 말들이 절실하다.
이 길을 먼저 가 본 멘토, 선배들의 인정과 격려가 목마르다.
'너라면 잘할 거야.'같은 격려가 아니라,
'이런이런 점들이 참 고민스러운데, 그래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잘 가고 있어. 조금만 지나면 또 편안해지는 날이 오더라.'같은 실질적인 조언이 필요하다.
너무 막막했던 걸까.
요 며칠간은 심리상담과 자조집단이 그리웠다.
그런 곳에서만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 들을 수 있는 위안, 몸으로 부딪히는 따스한 분위기가 생각났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이 어려움을 통과해버리고 싶은 나의 마지막 연약함 한 조각을 마주한다.
그리고 말해준다.
세상에 널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너야. 너의 약함 또한 너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는 시간인가 봐. 시간은 흐를 거고, 넌 조금 더 유연하게 넓어져있겠지. 널, 축복해.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