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을 존중하는 교사이고 싶다
빈 교실을 쓸다가, 단상
책상을 밀어 반듯하게 줄을 맞췄다. 뒤로 밀어두어도 언제 뒤로 갔냐는 듯 아이들의 책상은 앞으로 쏠린다.
책상이 옮겨진 빈자리에 종이 조각이 떨어져 있다. 빗자루를 가져와 교실 바닥 쓰레기를 모았다. 이 책상 저 책상 옮겨 다니며 바닥 쓰레기를 쓸다가 몽당연필 한 자루를 보았다.
연필에 붙은 이름 스티커를 확인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필의 주인공은 우리 반 똑순이다. 똑순이가 웬일로 연필을 떨어뜨리고 갔나 의문이 들었다. 자기 물건은 꼭꼭 챙기는 아이인데 말이다.
연필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다시 바닥을 쓸었다. 구석에서 개인용 빗자루 세트를 마주쳤다. 이름을 확인하고 웃음이 나왔다. 색연필을 서랍에 넣어두고도 없어졌다며 찾아달라는 남자 아이다. 빗자루는 왜 찾지 않았을까 생각하다, 이틀 동안 아이들은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현타가 왔다.
묵묵히 교실 뒤편을 쓸었다. 아이들이 떠난 빈 교실은 꽤 넓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을 웃고 화낸다.
아이들 생각이 났다. 아홉 살인 우리 반 아이들은 때론 아홉 살 같다가도 때론 여섯 살 같다. 아홉 살이라고 형, 누나로 봐주기엔 아직 어린 구석이 참 많다. 말랑말랑한 점토처럼 이렇게 변했다, 저렇게 자랐다 하는 게 아이들이다.
때론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지금의 모습대로 자라면 세상 큰일 날 것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1의 데시벨로 이야기해도 될 것은 10의 강도로 이야기해 아이들을 놀라게 만들 때도 있다.
아이들은 자란다. 지금의 면모들은 한 달이 지나면 싹 씻어버린다. 친구 관계가 걱정되었던 친구는 '이거 하자.'며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더하기가 걱정되었던 아무개는 '선생님 이것 맞죠?' 하며 자신 있게 학습지를 들이민다. 뭐든 잘해 낼 것만 같던 녀석은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겠어요.'라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어느 뇌과학자가 두뇌의 어떤 영역은 서른 살이 되어서야 다 성장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사춘기도 아니고, 성인으로 취급받는 20대도 성장 중이라니 말이다.
곧 수긍했다. 불안했던 20대 초반과 지금의 나는 정말 다르다. 내 기준은 또렷해지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아주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조금이나마 너른 마음으로 수용하고 있다.
지금은 사회인이 된 아이들을 떠올려본다. 까탈스럽고, 불같이 화를 내고, 숨죽여 울던 그 아이들이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사회 구성원으로 바른 역할을 감당해내고 있다.
하루를 되짚는다. 아홉 살 아이들을 떠올린다. 아이들은 다 큰 어른으로 대한 건 아니었나, 아이들을 너무 어린아이로 대한 건 아니었나 생각한다.
완벽하기도 서투르기도 한 아이들.
그 아이들을 보이는 그대로 존중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개별적인 아이에게 상황에 맞는 도움을 주는 교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