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vs 화풀이 vs 훈육 (feat. 양치질)
"할 거면 하고, 안 할 거면 하지 마!"
연이의 울음이 터졌다.
"엄마 미워! 엄마 나빠!"
문 밖에서 연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난 안방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난 무엇을 놓친 걸까? 생각이 멈췄다. 어떤 논리도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다. 나는 화가 났다. 짜증이 났다. 내 말대로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아이에게 꿀밤을 콱 먹이고 싶었다.
요즘 들어 부쩍 아이의 밀당이 심해졌다.
"엄마, 가위바위보 해서 내가 이기면 양치질 안 하고, 엄마가 이기면 음~"
욕실 문에 기대 서서 칫솔을 들고 있는 나를 보며 내기를 걸질 않나,
"오~ 음~"
입을 크게 벌리라고 하는데도 칫솔도 안 들어갈 만큼 입술을 오므려 벌리질 않나,
"음아 음아 음아~"
칫솔질을 하는 도중에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지를 않나.
양치질을 하는 몇 분 동안 나의 혈압은 수직상승을 한다. 아이의 양치질을 마무리하고 나면, 어깨에 묵직한 담이 내려온다. 거울에 비친 내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른다.
1시간 전에도 딱 그랬다.
칫솔을 들고 서 있는데, 연이가 들어오질 않는 거다. 문 앞에 서서 가위바위보를 하자며 내기를 건다. 양치질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는 마지못해 세면대 앞에 섰다. 엄마가 도와줄 건지, 본인이 할 건지를 묻자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답하지 않으면 엄마가 도와주는 거라고 했더니 입을 겨우 벌린다. 칫솔을 넣어 이를 닦고 있는 중, 아이의 고개가 오른쪽 45도 아래로 기운다.
"고개 똑바로, 입 바로 벌려."
아이가 고개를 더 푹 숙인다. 실눈을 뜨고 나를 본다. 엄마가 화가 난 것 같으면 입을 똑바로 벌리고 얼른 끝내든지, 혼자 하고 싶으면 자기가 할 거라고 말을 하면 될 것을 끝까지 내 눈치를 살핀다. 난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마!"
안방 문 밖에서 엄마 보란 듯이 울고 있는 아이를 외면했다.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입을 벌리는 순간, 내 속의 말들이 화살이 되어 아이에게 날아갈 것이 뻔했다. 육아서에서 그리도 하지 말라는 비난, 판단, 평가, 단정 짓기 등으로 아이를 망부석으로 만들어버릴 기세였다. 이런 순간에는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다.
나의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으니 아이의 마음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의 아이는 이랬다.
양치질도 똑바로 하지 않는 불성실한 아이.
엄마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고집불통.
제 기분만 생각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망나니.
내 시선이 그러하니, 튀어나오는 해결책이야 뻔하다.
당장 달려가서 칫솔을 들고 억지로 양치를 시켜버리자.
엄마 말을 들어야 한다고, 널 위한 거라고 윽박을 지르자.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아이는 미움받게 된다고 협박을 하자.
나의 본능은 다급하게 외쳤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얼른 행동을 취해.
이 방법들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즉각 실행하지 않으면 네 아이는 망가질 거야.
지금 여기서 엄마의 권위를 세우지 않으면 버릇없는 아이로 손가락질받게 될 거야.
아이는 도움이 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세요.
머릿속에 섬광이 지나갔다.
아이는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몸이나 마음이 불편했던 거다. 어쩌면 더 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다. 입 안에 닿는 칫솔모의 감각이 싫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이는 엄마를 화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닌 거다. 아이는 이중적인 감정에 혼돈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안 할 거면 하지 마!"라는 말에 담긴 엄마의 진실(꼭 해야 하는 건데 왜 안 하는 거야!)을 아이는 안다. 엄마와 주파수가 틀어졌다.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가 필요하지만, 자기의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너무나도 미워지고 무서워졌다. 울음 말곤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아이는 그랬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울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필요했다. 고함을 지른 것도 나고, 외면한 것도 나였다. 감정에 휩싸여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훌쩍이는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나를 보는 아이. 손을 내밀자 아이가 와락 품에 안겼다. 작고 가벼운 아이가 내 품에서 어깨를 들썩인다. 아이를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내 팔을 만지작거리며 화제를 전환시키려는 아이에게 말했다.
"연아, 무서웠지? 엄마가 화가 나서 많이 무서웠어, 그치. 엄마가 미안해."
아이가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나를 본다.
"엄마, 벌써 네 번째야. 또 그러면 이렇게 많이 많이야. 이제는 그러지 마."
아이의 얼굴이 맑아졌다.
"그래, 알겠어. 엄마가 조심할게. 우리 양치질하자."
스스로 양치질을 하는 연이를 바라봤다. 제법 야무진 손길로 입안 구석구석을 닦아낸다. 눈빛에 뿌듯함이 어린다. 깨끗하게 잘하노라고 칭찬을 하고 세면대를 정리했다. 침대에 누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아. 양치질을 혼자 하고 싶으면 혼자 하고 싶다고 말해줘. 엄마가 도와줬으면 할 때는 도와달라고 하면 돼."
잔소리, 훈육, 화풀이는 한 끝 차이다.
내가 한 것은 훈육일까? 모르겠다.
시작은 '양치질을 해야 한다'는 잔소리였고, 중간은 '왜 말을 듣지 않느냐'는 화풀이였으며, 마무리는 '다음엔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에게 잠들기 전 양치질은 당연하기에 아이에게 이러저러한 군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이 '당연한 것'을 잘 조율하기 위한 '원활한 의사소통'을 원했다.
아이는 불편한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연습하는 중이다. 울음이나 웅얼거리는 짜증, 화가 아니라 명확한 문장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매일 배워간다. "싫어요, 안돼요."의 중요한 의사표현에서부터 "좋아요, 기뻐요. 화가 나요, 슬퍼요."의 감정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어휘와 표현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어른도 자신의 감정을 몰라 우왕좌왕할 때가 많다. 자신이 어떠한지 명확하게 파악되더라도, 사회적 통념에 따라 자신의 것들을 회피하거나 억누르기도 한다. 오히려 이런 면에선 아이가 어른보다 자신과 타인을 더 잘 파악하기도 한다. 다만 그 감각들이 정제되지 않게 표현되기에 사회적 질서로 무장한 어른의 눈에는 '문제 행동,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비칠 뿐이다. 아이는 제 속도로 배우는 중이다.
아이에게는 도움이 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음을 기억한다.
아이는 사회적 소통을 배워가는 중임을 기억한다.
잔소리가 튀어나오려는 입을 닫아야지.
화풀이가 터져나오는 목구멍을 막아야지.
과정은 험난했지만, 마무리는 깔끔하다.
고로, 오늘도 사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