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들기 전, 두 아이 사이에 누워 종종 묻는다. 난 아이의 하루에선 뭐가 재밌었는지, 어떤 게 아쉬웠는지가 궁금하다. 좋았던 것은 다음에 또 같이 하고 싶고, 아쉽거나 속상했던 일들은 툭툭 털고 새롭게 해 보려는 마음이 들어서다. 아이들은 어떤 날은 재밌었던 것을, 또 어떤 날은 나에게 속상했던 것들을 털어놓는다. 묻고 대답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의 시선이 나의 것과 다름에 놀랄 때도 있다.
연이와 은이는 후회가 없다. 후회가 없다고 적고 보니 '후회'의 뜻이 좀 막막해졌다.
후회 :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
무언가 의미가 좀 아쉽다.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들을 반성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행동을 했을 때는 사과하고, 다음엔 조심하는 아이들이다. 그럼, '이전'과 잘못'은 뭘까?
이전 : 기준이 되는 때를 포함하여 그보다 앞
잘못 : 옳지 못하게 한 일
종합해보면, 후회란
기준이 되는 때를 포함하여 그보다 앞에 옳지 못하게 한 일을 깨치고 뉘우친다
라는 말이다.
이렇게 뜻을 확실하게 알고 나니, 내 아이들은 후회를 했다. 언제? 일이 일어난 직후, 즉각적으로.
나는 후회를 한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많다. 주로 후회를 하는 일들은 가까이는 일주일 전부터, 멀게는 10여 년도 지난 일들이다. "그때 만약 그 남자애를 계속 만났다면-"으로 시작되는 시시콜콜한 연애담에서 "그때 공부 좀 더 할걸."로 끝나는 신세한탄에 이르기까지. 후회의 순간은 다양하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도 많다. 과거를 곱씹으며 오지 않을 핑크빛 미래를 상상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다르다. 일주일 전도 옛날이고, 1년 전도 옛날이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시간 개념이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 애들은 세상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사는구나"라며 착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들은 현재에 충실할 뿐이었다. 지금 침대에 누워 엄마와 함께 속삭이는 시간이 행복하고, 지금 놀이터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그네에 몸을 맡기는 시간이 즐거운 거다.
아이에게 후회란? 나의 행동이 타인과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음을 인지하고, 다음에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배워나가는 것이다. 딱 거기까지다. 알았으니 행동하려 노력하면 되는 거고, 실수하면 양해를 구하고 다시 나아가면 되는 거였다. 아이들은 후회할만한 순간을 하루 이상 가져가지 않는다. 하루도 길다,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현재에 충실하며, 후회의 순간을 길게 가져가지 않는 아이들.
후회는 한다, 그 순간에만.
난 이 말이 왠지 무책임해 보였다.
"후회를 한다면서 그 순간에만 한다고? 양심도 없지. 후회할 일을 만들지를 말아야지. 후회할 거리를 만들었으면 무릎 꿇고 사죄하고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그 순간에만 후회를 하면 어쩌라는 거지?"
완벽하지 않을 바에야 시작도 해선 안 되는 것이었고,
완벽하지 않은 나는 참으로 부족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난 늘 괴로웠고,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트랙 위에 서 있는 듯했다.
후회를 곱씹지 않고, 새 날을 살아내는 아이들을 본다.
후회는 그 순간에만 하면 되는 거였다. 일어난 일에서 잘 되지 않은 부분을 파악하고, 개선할 점을 찾았으면 된 거다. 메모지에 적어 냉장고에 붙여놓든, 폰 한 귀퉁이에 위젯으로 설정하든 노력하면 그만이었다.
우린 완벽을 꿈꾼다. 그래야만 나의 마침표가 찍어지고, 풍요가 오는 거라 착각한다.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을 붙든다. 지금껏 나는 그런 패턴으로 살아왔다.
이젠 뒤집는다.
마침표는 언제 찍힐지 모른다. 완벽은 없다. 어느 정도가 완벽한지 나 조차도 모른다. 결과는 늘 예상 밖이다.
그러니, 나는 한다. 어제 했던 실수를 오늘 반복하더라도, 후회의 순간은 짧게 가져간다. 자책하는 시간을 확 줄이고, 마음을 다독이며 다음에는 어떤 행동을 할지 메모지에 적는다. 자꾸 잊어버린다. 그럼 또 적는다. 생각하고, 적고, 읽기를 반복하다 보면 10번 중 1번은 실수를 멈출 때가 있다. 그럼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